거듭된 존속 살해사건은 신화가 되었고, 비극의 주인공이었던젊은 통치자는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민중은 그를 통치자인 동시에보헤미아의 전사로 기억했다. 보헤미아의 기독교 세계 편입이 완료된 후 통치자 웬체슬라스는 성 바츨라프가 되었다. - P207
그의 얼굴이 동전에 새겨졌고 행적은 역사서에 올랐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보헤미아민족주의가 본격 형성된 후스전쟁과 30년전쟁의 포연 속에서 그는‘보헤미아의 수호성인‘이라는 아이콘이 되었다. 그리고 20세기에는국립 박물관 앞 광장 가장 높은 곳에 기마상으로 부활했다.체코 사람들은 성 바츨라프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를 주인공 - P209
카렐 4세가 실제적 국가 창설자라면 성 바츨라프는 정신적 국가 창설자이다. 생일이 확실치 않아서 사망한 날을 정신적인 국경일로 삼았다. - P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