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갑동은 ‘의논하자‘는 말을 결혼 승낙으로 해석하며 소리 없는만만세를 외쳐 부르고 있었다. 더구나 그동안의 성과가 좋아 서독정부에서는 한국에 간호원 1만 7천 명을 더 보내달라고 하고 있어서 그는 한식당이 잘되리라는 서까지 느끼고 있었다. - P167
색안경을 벗을 생각도 하지 않고 한 여자가 시건방진 말투를 던졌다. 두 여자는 미니스커트를 뒤따라 겨울용으로 유행한 판타롱이라는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 바지는 엉덩이 부분은 착 달라붙고, 바짓가랑이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넓어질 뿐만 아니라 그끝은 곧 땅을 휩쓸지경으로 긴, 괴상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 P171
한정임과 최혜경은 화장실을 거쳐서 커피숍으로 따로따로 들어갔다. 조선호텔이 그렇듯이 워커힐도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 외국인 전용으로 지었던 것인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커피숍에는 한국인들로 넘치고 있었다. 시내에서 멀찍하게 떨어진 그곳은 상류사회의 새로운 명소로 등장해있었다. 굽이굽이 흐르는 한강과 멀리 뻗어가는 산세가 어우러진 전망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 P176
세상은 온통 분유 먹이는 유행바람에 휩쓸려 있었다. 서양 것이면무엇이든 최고로 치는 세태 속에 분유 먹이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첫 먹이면 몸매 다 망가지잖아요. 분유 먹이면 애들 더 튼튼해지구요." 이렇게 일거양득이니 당연히 분유를 먹여야 한다는 젊은 주부들의 반응이었다. 그런데 이런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유행에 살살부채질을 해대고 있는 것이 분유회사들이었다. - P185
"우유가 그냥 밥이라면 엄마의 젖은 더없이 좋은 보약입니다." 허미경은 아들 현서가 탐하기 전에 먼저 젖을 내보이곤 했다. 그러면 현서는 그 복스러운 얼굴에 웃음을 벙글벙글 피우며 달려들었다. - P185
검정색 지프가 경찰서 정문에 맺었다. 보초경찰 둘이 거수경례를 올려붙였고, 다른 경찰 하나가 재빨리 지프의 문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의원 각하!" 모자에 금테를 두르고 양쪽 어깨가 좁도록 무궁화 계급장을 요란하게 단 서장이 지프에서 내리는 사람을 향해 경례를 붙였다. "아, 안녕하시오, 이 서장." 차에서 내린 사람은 건성으로 경례를 받는 손짓을 하고는 악수를 청했다. 그는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국회의원 최영찬이었다.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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