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중반 추방령이내려 잠시 어려움을 겪었지만 프라하의 유대인들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보다 안심하고 살 수 있었다. 게토는 1850년 별도의 행정구역이되었는데 유대인을 너그럽게 대했던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들 요제프2세(재위 1765~1790)를 기리는 뜻에서 ‘요제포프‘라는 이름을 붙였다. - P192
가장 인상 깊은 곳은 ‘신구(舊)시너고그(Staronová synagoga)‘라는예배당이었다. 13세기에 초기 고딕 양식으로 지은 이 시너고그는 유럽에 남아 있는 유대예배당 중에서 제일오래되었다. 여러 차례의화재와 박해 · 추방 · 재개발. 나치 점령 등의 시련을 견디고 살아남았다. 박물관으로 바뀐다른 예배당과 달리 지금도 프라하의 유대인들이 여기서 예배를 본다. - P193
시내 구간 평균 수심은 3미터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낮으며 프라하 남쪽과 북쪽 경계의 수면 고도 차이가 14미터나 되기 때문에 원래는 물살이 빠르다.보와 갑문이 없다면 지금도 그럴 것이다.프라하라는 지명이 ‘여울‘ 또는 ‘급류‘를 가리키는 슬라브 말에서 유래했다는 정보가 옳은 듯했다. - P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