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3년 인조가 즉위한 후 후금에 대한 정벌을 계획하면서 국왕의 경호를 위해 개성유수 이귀(李貴, 1557~1633)를 어융사(御使)에 임명하고, 화포군(軍) 260여 명을 선발해 훈련시켰다. 후금 정벌은 실행되지 않았으나이때 모은 군사를 1624년(인조 2) 어영군(御營軍)이라 하고, 이귀를 어영사(御使)에 임명해 국왕의 호위를 담당케 했는데 이것이 어영청 (御營廳)의 출발이다.  - P454

임진왜란 직후 훈련도감을 시작으로 하나둘 생겨난 군영은 당시 정치를주도하던 붕당의 군사적 기반이 됐다. 그리하여 군영을 두고 국가의 공병(쇼兵)이기보다는 각 군영 대장의 사병이라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 P454

1682년(숙종 8) 숙종은 훈련도감의 군사를 줄여 국가 재정에 기여하고, 도성의 경비를 강화한다는 취지하에 훈련도감 소속의 일부 군사와 병조 소속의일부를 차출해 금위영(營)을 설치했다. 금위영은 국왕을 호위하고 수도를 방어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금위영 창설로 비로소 5군영체제가 완성됐다. - P454

 문과의 경우, 3년마다 시행하던 식년시보다 부정기적으로 시행하는 별시가 잦았다. 별시는 식년시에 비해 서울과 경기 지역 유생이 지방 유생보다 유리했는데, 지방에서는 시험 일정이나 시험과목등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과거 급제자가 점차서울과 경기 지역에 편중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 P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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