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못된 것은 여우나 늑대한테 뜯어먹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녀의 시체는 정말 내다버려졌다. 그런데 그날 밤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치며 처녀의 시체를 업고 가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건 처녀와 남몰래 사랑을 나누어왔던 사내였다. 사내는 남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평장(平葬)을 했다. 그런데 다음 해 봄에 그자리에서 연초록싹이 터올라왔다. 그싹은 차츰자라면서 몸에가시를 달기 시작했다. 사내는 그때서야 그것이 애인의 한스런 혼백이 가시 돋친 나무로 변한 것을 알았다. 아무도 자기 몸을 범하지 못하게 하려고 온몸에 가시를 달고 환생한 애인의 정절에 감복한 사내는 평생을 혼자 살며 그 한을 풀어주기 위해 산지사방에탱자나무 심는 일을 했다는 것이었다. - P244

"참말일 것이네. 즈그 성은 일정 때부텀 공산당 허니라고 미쳐서도망댕기고, 해방이 되니께 더 날치다가 감옥살이허고 또 도망댕기고 허니라고 즈그 엄니헌테 뜨신밥 한 그럭 올릴 돈벌이를 원제했드랑가. 해방되고 이날 이때꺼정 삼시세끼 밥 묵고 사는 것이 다 누구 덕인디 - P252

상상도 못할 두 가지 사건을 벌인 쌍칼 염상구에 대한 소문이 윤색까지 되어 퍼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다 알게 친일을 했던자들이 무슨 명목을 붙여서든지 애국의 탈을 만들어 쓰려고 급급한 판에 염상구 정도의 이력 변조는 아주 양심적(?)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40년에 이르는 일제의 지배를 받는동안 벌교읍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그 근동에서도 일인을 살해한것으로는 염상구가 유일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 P258

1947년에 이르러서는 정치 발판을 굳힌 이승만이 결성한 대동청년단의 지부 실권적인 감찰부장 자리에 앉았다. 그의 이러한 권력지향성은 어찌할 수 없이형 염상진과 대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 P259

아버지의 구박과 편애, 형의자만과 무시 속에서 그나마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다독거림이 있어서였다. 어머니가 아무도 몰래 건네주던 누룽지를받아들고 뒷산 팽나무 아래서 얼마나 목메어 울었던가. 누룽지한 덩어리가 고마워서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형만이 아니라 자신도사랑하고 있다는 어머니의 정이 고마워 목이 메었던 것이다.  - P259

그들 형제가 극적으로 부딪힌 것은 금년 3월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 시행을 발표하고 나서였다. 전국적으로 경찰과 대동청년단에서는 총선거 실시를 위한 전면적 준비작업을 전개했고 이에 맞서 좌익에서는 총선거를 저지하려고 모든 지하조직을 표면화시켜 총력전을 개시했다.  - P261

속이 확 뚫리는 기분이었다. 한갓 주먹패에 지나지 않는 상구놈에게 돈거래로 입막음을 했다는 소문이 날까 두렵고, 상구놈 입만막는다고 해서 한번 등을 돌린 인심이 수습될까 찜찜하던 참이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서로가 필요한 명분과 실효의 방법을 찾는 셈이었다. 정사장은 너털웃음을 웃으면서도, 저놈이 사람 여럿 잡을놈이다. 염상구의 머리 돌아가는 것에 혀를 내둘렀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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