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대치가 식사당번조에게 지시하고 있었다. 염상진은 곁눈으로그런 하대치를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입가에다 물었다. 배움은많지 않지만 타고난 머리가 있고, 건강한 몸에 용기까지 지니고 있는 하대치는 어느 모로 보나 소중하고도 충직한 부하였다. 무슨 일을 맡기든 마음 든든했다. - P166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눈을 꼭 감았다. "음마, 음마, 고것이 무신 소리나요? 그랑께, 쫓겨간다 고런 말이제라?" 마누라는 괄괄한 성미그대로 말을 쏟아냈다. "워메, 인자 두 다리 뻗고 권세 누림시롱 살만헌 시상이 왔능갑다 혔등만 열흘이 못 가요 무신 꼴이당가." 마 - P166
이미 과거의 흔적뿐이긴 했지만 고읍들녘의 대지주 집안의 아들 안창민이 사회주의에 경도된 것은 순전히 염상진에 의해서였다. "형님, 용서하십시오. 저는 교단에 서야 되겠습니다. 어머니의 고생을 그만 끝내드려야지요. 형님한테 면목 없는 일이지만, 어쩌겠습니까." - P169
안창민에게 홀로인 어머니가 소중했다면, 염상진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도 결코 그만 못하지 않았다. 그런데 염상진은, 평생을 장사를 하며 아들을 가르쳐 ‘선상님‘ 되기를 고대한 아버지의 간절한소원을 뿌리치고 농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 그래. 사람이 어찌 다 하나같을 수가 있겠는가. 자네는 선생으로, 나는 농부로 최선을 다하세. 뜻이 같으면 결국 닿는 길도 같을 거니까." 염상진은안창민의 교단행을 흔쾌하게 받아들였다. - P170
그는 말년에 망나니 아들로 속을썩일 대로 썩이다가 화병을 얻어 제명을 다 못 살고 죽었다. 그때벌써 아들 안서규는 투전판을 들락거리고 주색에 빠져 재산의 반이상을 날린 상태였다. 안재윤이 죽고 나자 가세는 걷잡을 수 없이기울어졌다. 안서규는 방탕한 생활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어 마침내 전답 거의를 헐값에 팔아치워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 P171
안창민을 노출시키지 않았더라면 그보다 더 완벽한 거점은 없었을 것이다. 배후에 진을 쳐두어야 했던 것인데…………. 염상진은 다시 진득한 한숨을내쉬며 담배를 꺼냈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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