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테오도시우스의 뒤를 이은 것은 장남 아르카디우스(Arcadius)와 차남 호노리우스(Honorius)였다. 아르카디우스는 열여덟 살이었지만, 호노리우스는 겨우 열 살밖에 되지 않았다. 두 아들 이외에 테오도시우스에게는, 4년동안 공동 황제였던 그라티아누스의 이복누이인갈라와 관계해서 낳은 딸이 있었다. 테오도시우스가 죽은 해에 이 황녀는 대여섯 살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 P24

이탈리아의 로마사 연구자인 파리베니의 말을 빌리면, 열여덟 살인 아르카디우스와 열 살밖에 안된 호노리우스는 다음과 같은 인물이었다.
"늘 황궁 안에서 살면서, 민중과는 멀리 떨어진채 어떤 접촉도 없고, 병사들도 자기네 최고사령관이 말을 타고 군대를 지휘하는 모습을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이 제위에 앉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오로지 선제의 아들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 P28

도나우강을 건넜는지에 대해 카시우스 디오의 『로마사』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트라야누스의 『다키아 전쟁기』중에서 남아 있는 것은앞에서도 말했듯이 다음 한 줄뿐이다.
"inde Berzobim, deinde Aizi processimus"
번역하면 "베르조비스로, 그리고 아이지스로 우리는 진군했다"가된다.
베르조비스는 오늘날 루마니아의 레시차라는 게 연구자들의 공통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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