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면장, 아니 백상, 그게 무슨 못된 것이오. 총독부 재산인 국유지를 착복하려고 하다니. 감옥에 갇히지 않고 면직으로 끝난 것을 다행으로 아시오." 아니, 다나카 그놈이! 백종두는 수화기를 떨어뜨리며 픽 쓰러졌다. - P64
"무신 요상헌 소리다냐? 죄진 것이 없는디 총 맞어 죽어?" "하이라, 우리 아부지 죄진 것 하나또 없어라. 즈그가 우리땅 뺏어간게 우리 아부지가 지주총대놈 패대기쳐뿐 것이지라. 우리 아부지가 얼매나 맘씨가 좋고 육자배기 타령도 잘헌다고요." - P69
남자는 할 말을 잃고 아이를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저 어린것이 여간내기가 아니다 싶었다. 그리고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자신은 어린것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자신은 그동안 마누라를 잡아 원수 갚을 생각에만 빠져있었지 왜놈들에게 원수 갚을 생각 같은 것은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작 자신의신세를 망쳐놓은 것은 마누라가 아니라 왜놈들이었던 것이다. - P72
남자는 아이가 묻는 말을 받아 이렇게 얼버무렸다. 마누라가 딴놈과 배가 맞아 도망갔다는 것보다는 한결 나은 말이었던 것이다. 남녀 음양의 관계를 전혀 모르는 아이를 상대로 자신이 당한 일을말한다는 것도 주책스럽고 얼뜬 짓이 아닐 수 없었다. - P73
남자는 온몸에 맥이 빠지는 걸 느끼며 눈을 감았다. 아내의 얼굴이 선하게 떠올랐다. 표나게 예쁘지는 않아도 수더분하게 선한생김이었다. 아내는 그 생김처럼 행실도 얌전한 편이었다. 자신이못살게 굴지만 않았더라도 아내는 딴마음을 먹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 P76
"이, 필시 그런 것이로구마 생도 죽을 적에넌지집얼 찾아든다는디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없제, 근디 마누래넌 못 찾은 것 아니라고?" "긍게로 저 꼬라지가 됐겄제. 참말로 저 나이가 아깝네. 쯧쯧쯧쯧………" "그려, 기맥힐 일이시. 다 시국 잘못 만낸 죄 아니라고."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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