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대해 바로 그 분야손꼽히는 전문가 (신학자) 인 김세윤 교수는 "복음의 의미를되새기고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하는 것이 바로 신학하는 것"이며,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신학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 P83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인지 아닌지는 내 관심사가 아닙니다. 나의가장 큰 관심사는 내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My concern is not whether God is on our side; my greatest concernis to be on God‘s side, - P106
아울러 한국 교회 안에 ‘세상의 영광과 번영을 암시하는 제국의 이미지로 회중의 마음과 상상력을 사로잡아 세상을 닮아 가게 하는 설교‘가 적지 않다는 박영돈 교수의지적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 P105
미국의 신학자 월터 브루그만은 세계적인 구약신학자이면서 설교를 탁월하게 하기로 유명한 대중 설교자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브루그만에 따르면, 설교자란 "여호와를 핵심 행위자로 상정하는 세계를 다시 상상하게 해 주는위험한 과업을 맡은 사람" 입니다. - P103
"내가 아는 어느 장로가 주일에 여행을 갔어요. 주일성수를 하지 않고 놀러 갔는데, 그만 교통사고가 나서 즉사하고 말았어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고 놀러 가니까그만 하나님이 그 장로를 치신 겁니다. 아멘?" 설교도 충격적이었지만, 모두 아멘으로 응답하는 분위기에 더 경악했습니다. - P101
한국 교회의 손꼽히는 설교자로 알려진 김회권 목사(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는 수년 전 어느 신학대학원신앙사경회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저는 저의 혀를 믿지 못합니다. 설교 중에는 여러 가지 예화가 들어갑니다. 그런 경우에는 빈번히 특정 직업, 지역의 비하 또는 설교자의 독특한 편견이 말씀선포 속에 뒤섞이는 경우가 생깁니다. 유머 구사 과정에서 특정 인물이나 특정 직업군이 들어갑니다. - P100
십대 시절 그는 법적으로 인종차별을 인정하던 미국 남부 조지아주의 근본주의 교회에다녔는데,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설교와 가르침을 줄곧들어야 했습니다. 목회자는 강단에서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적 설교를 했다. 뜻이 모호한 창세기의 구절들을 인용하면서, 흑인은 하나님의저주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식당에서 피부가 검은 종업원들이 엉덩이를 흔들며 식탁 사이를 누비면서 접시를 나르는 모습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 그들은 종노릇은 잘할 수 있지만지도자 역할은 절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P99
그러나 그보다 더 쉽고도 빠른 한 방편은 좋은 신학자들, 좋은 작가들의 책을 가까이하는 일입니다. 권연경, 김근주, 김기석, 김동건, 김세윤, 김회권, 박영돈, 톰 라이트, C. S. 루이스, 알리스터 맥그래스, 존 스토트, 제임스 패커, 미우라 아야코, 박완서, 엘리 위젤, 톨스토이…. 개인적이고주관적으로 나열한 이들 신학자와 작가들은 저를 지금껏바른 신앙의 길을 걷도록 독려하고 이끌어 준 고마운 스승들입니다. - P96
존 스토트는 "신학이 없는 예배는 반드시 우상숭배로변질되고 만다"라고 했습니다.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신학이 복음의 능력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면서, 신학적 성찰을 통해 우리 신앙이 더 깊어지고 개인적인 삶도풍성해질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 P95
여행자가지도를 챙기듯, 신앙인은 신학에 귀를 열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신학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에 대해 아무 개념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잘못된 개념-여러 가지가 뒤섞인 해롭고 낡은 개념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새로운 것인 양 자랑스레 내보이는 개념들의 상당수는 진짜 신학자들이 수세기 전에 이미 검토하여 폐기한 것들입니다.‘ - P94
신학과 신앙은 서로를 돕는다. 신학이 신앙 안에 있을 때 열정을 가진다. 신앙이 신학적 토대를 가지면 흔들리지 않는다. ‘신앙이 없는 신학은 건조해지고, 신학이 없는 신앙은 자기주관성에 빠진다." - P95
잘못된 신학, 왜곡된 신학이 낳는 폐해가 적지 않다하여 신학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아서는 곤란합니다. 어떤 이들은 신학을 현학적이고 실제적이지 않으며 머리만 아픈 학문 정도로 여길지 모릅니다. 이와 달리 C. S. 루이스는 신학을 일종의 ‘경험 과학‘이자 서로 다른 수많은경험을 한데 모아 만들어 낸 아주 실제적인 ‘지도‘로 봅니다. - P93
그러니까 나머지 열 제자 역시 2인자의 자리, 권력자의 최측근이 되고 싶었던 겁니다. 그들이 너무 순수해서 미처 청탁할 생각을 못 해서가 아니라, 야고보와 요한이 자신보다 한발 앞섰기에 화가 났던 거지요. - P91
반쪽복음 sub-gospel이 아니라 반복음 anti-gospel에 가깝다"면서 성경을 번영을 위한 증거도구로 전락시킨다"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 P111
《존 스토트의 설교》에서 존 스토트는 설교를 ‘다리놓기‘에 견주어 설명합니다. 곧 설교란 ‘성경의 세계와 현대 세계 사이의 간극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는 작업‘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누구라도 설교를 하고자 한다면 성경을 연구하는 한편으로 세상에 대한 공부도 해야 할 것입니다. - P116
본래 구절 중 몸통은 떼어 버리고 꼬리만 열심히 혼들어 댄 결과, 설교자와 회중 모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를 ‘중립‘의 뜻을 지닌 몸통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대표적인 성경 구절 오독misreading 이자 오용misusing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 P118
존 스토트는 다르게 얘기합니다. 영적 주제에 집중한다고 이런 주제의 설교를 금하면 하나님이 오직 영적 문제에만 관심이 있으시고 자기 피조물의 안녕에는 관심이 없으신 것처럼 시사하게 됩니다. 영적 문제만 설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을 분리하는 행위입니다. 이는 곧 그리스도인을 현실 세계에서 물러서도록 부추기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며, 종교는 사람들을 마취시켜 현 상태를 묵종하게 만드는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잘 알려진 비판에 근거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 P119
더 이상 ‘독실한 기독교인들의 사회적 범죄와 비리를 나열하고 싶진 않습니다. 그저 묻고 싶습니다. 독실하다는 그들의 신앙은 ‘교회 내부용‘인 걸까요? 교회 밖 세상, 더구나 국가 방위처럼 비할 바 없이 중요한 공공 영역에서 그신앙의 힘은 왜 그토록 무기력하기만 했을까요? 보편적인도덕 기준이나 윤리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 그들 기독교인의 삶과 신앙은 원래부터 각기 분리되어 따로 작동하는 걸까요? 여기서 존 스토트의 ‘온전한 그리스도인 whole Christian‘ 개념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 - P124
엉클 존은 개신교가 ‘개인 영성‘에 지나치게 함몰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했다면서 사회적 양심과 사회의식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던 지도자입니다. - P125
이 책에서 존 스토트는 성경 교리와 하나님 상을 왜곡하거나 축소하여 자신들의 논리에 짜 맞추는 ‘도피주의 신학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 P127
이 ‘도피주의 신학‘은 한국 교회안에 넓고도 깊게 뿌리내리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 교회의 도피주의 신학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서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거나, 공적 역할과 책임을 다하려는 것을 두고 ‘세속적‘, ‘정치적‘이라고 공격하는 경향을 드러냅니다. 이에 대해 존 스토트는, 우리가 "교회 같은 종교적 건물, 예배나 기도 모임 같은 종교적 활동, 그리고 찬송가와 성경 같은 종교적 책들만 하나님의 주관심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너무 종교적으로, 왜소한 분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지적합니다. - P127
성경 묵상은 개인 삶뿐 아니라 직장과사회, 국가, 온 세상사에 관심이 있는 하나님의 마음과 관심에 우리의 마음과 관심을 일치시키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의 생각과 바람에 끼워 맞추는 시간이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마음의 생각과 뜻이 들키게 하는" 시간입니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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