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키투스나 소플리니우스와는 달리 변호사로 일한 경험이 없다. 즉화려한 변론술을 구사하여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웅변가는 아니었다. 그래도 원로원 의원인 소플리니우스가 증언했듯이, "말에 담긴진실감, 강하고 의연한 음성, 위엄에 찬 얼굴, 솔직하고 성실한 눈빛‘으로 누구나 경청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 P56
하지만 집정관의 의미도 달라지고 있었다. 공화정 시대에는 문자 그대로 ‘정무 집행‘의 최고책임자였지만, 제정시대로 넘어온 뒤에는 황제가 집정의 최고책임자가 된다. - P57
집정관에 여러 차례 취임한 황제로는 베스파시아누스가 있었다. 이사람도 아우구스투스로 시작되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가 네로에서 끊긴 뒤에 창설된 ‘플라비우스 왕조‘의 시조라는 점에서는 아우구스투스와 같은 처지에 있었다. - P57
자연재해에 따른 사후 대책에서도 ‘집정관급‘이 담당 책임자로 취임하면, 그것은 단순한 홍수 대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치수 사업이 시행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 P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