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광부와 간호원들을 담보물로 잡기는 했어도 박정희가 이끄는 한국 정부에 최초로 차관을 해준 것이 서독이었다. 그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박정희가 정치적 이유로 미국을 찾아간 것 이외에 외국을 최초로 방문한 것이 서독일 정도로 두 나라 정부 사이는 화기애애했다. 그런데 동베를린 사건으로 서독 모르게 많은 사람들을 납치해 가 양국 정부 관계는 험악해지고 말았다. 서독 정부의 강력한 요구로 박정희는 사형 선고를 내린 사람들까지 다 풀어주었다. 그러나 양국 관계는 그전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서독 정부는 한국 경제에 냉담해졌고, 그런 상태에서 박정희는 3선개헌을 거쳐 유신으로 치달아가는 독재 특급열차를 몰아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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