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윤경 소설과의 두 번째 만남!

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초저녁부터 읽기 시작한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다 넘기고서 덮을 무렵엔

스산한 바람이 불고 달이 흐린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새벽이었다.

작가의 前作 <나.....의 아름다운 ......정원>에서처럼

이번에도 작품 속에 몰입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 나오는 데에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작가는 항상 독자로 하여금 책을 덮기 전, 작품 속의 인물들을 하나하나 돌아보고 나오게 하니까 말이다.

전 작품에서는 할머니의 외로움을, 그리고 어쩔 수 없어하는 아버지의 갈등을 이해해 보라고 동구를 통해 우리에게 넌지시 일깨워 주었었다.

이번에도 할아버지가 왜 그렇게 가문의 위상을 세우려 하는데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가를,  그리고 해월당 어머니가 남몰래 얼마나 가슴앓이를 하며 외로움으로, 연민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던가를 주인공 상룡을 통해 우리에게 돌아보게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마치 이문열 소설 <금시조>의 마지막 장면에서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원혼만이 깃들었던 효계당이 훨훨 불타오르는 순간, 자신을 내던졌던 상룡의 할아버지도 진정으로 자기 완성을 한 것이 아니었을까.

지금까지도 깊이 뿌리박혀 내려오는 특유의 명문가 종손이라는 의식.  종가의 대를 잇기 위한 과정에서 저질러진 숱한 패악과 패륜들,  그 위대한(?) 가문의 영광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희생을 당하여왔던가.  그 원혼들이 내뿜은 입김인 듯, 이어지는 비운의 여인들....갓 태어난 딸아이의 가슴뼈를 짓밟히고서 자진해버린 소산할매,  한 번도 여자의 몸이 되어보지 못한 채 고독히 안채를 떠나가야 했던 해월당 윤씨.   그리고 모든 것을 다 걸고서 사랑을 하고 결국은 모든 것을 다 빼앗길 수밖에 없었던 정실이....   

가문에 대한 그 지독한 집착과 광기에서 스스로 괴로울 수밖에 없었던 상룡의 할아버지가 마지막에 선택한 분신의 길은 (자신이 원해서이든 아니든) 자신이 믿었던 우주를 스스로 무너뜨림과 동시에 그 여인들의 한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려는 解怨相生의 처절한 몸부림이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그야말로 자기 완성이 아니겠는가. 비록 작가가 그렇게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심윤경 소설에 내가 반하는 이유 중 또 하나는 바로, 이 세상에는 꼭 존재할 것 같지 않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성상을  한번씩 그려낸다는 것이다. 

전작에서 동구의 삶의 등불이 되어주었던 박영은 선생님을 아직도 난 잊을 수 없다.  난독증인 동구가 떠듬떠듬 글을 읽고 쓰기까지 애정어린 눈물로, 혹은 살짝 귀를 잡아당기며 속삭여주는 귓속말로 동구의 능력을 일깨워주고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르쳐 준, 너무나 아름다웠던 인물.

이번 작품에서는 상룡의 친모인 '서 영'이 등장한다.  그녀의 매혹적인 모습은 작가가 과연 누구를 모델로 그려낸 것인지 의문이 갈 만큼  독자를 사로잡는다.  그녀가 경영하는 호텔의 쵸코렛가게 "쵸코렛 루나티크"란 상호도 이 작품 전체의 '달'의 이미지,  음산하지만 언제나 촉촉한 기운으로 젖어있는 여성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뛰어난 설정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의 마지막 대목 - 화염에 휩싸인 효계당으로 몸을 던지려던 주인공의 손을 잡아 끌려는 소산할매와 해월당 어머니와 정실의 푸른 도깨비불. 하지만 강한 흡입력으로 그 도깨비불을 끌어당겼던 만월은 인간의 집착이 얼마나 허망한가를 차갑게 비웃음과 동시에 남성중심주의 전통에 대한 여성들의 신랄한 풍자가 아니었을지.

... 언젠가 작가의 홈페이지에서 안동 여행 사진 몇 장을 본 적이 있다.

그저 단순한 여행이 아닌, 이 작품 집필을 위한 답사 차원의 방문이었겠다고 생각하니, 다시 한번 작가의 거침없는 필력과 노력과 투철함에 머리를 숙이게 된다.  오랜만에 접하게 된 옛 문헌인 내간과의 만남도 작가가 일일이 주석을 달아가며 신경을 써주었기에 읽는 데에 그리 어려움은 없었다.  정작 국문학을 전공했다는 나를 부끄럽게 만든 이 작품.

다시 이 새벽에 한번 더 읽어야겠다.

옥인동 골목을 거닐며.....

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1980년대를 필운골과 옥인동에서 보냈던 나에게 이 소설은 한 권의 빛바랜, 어느 벽장 깊숙이 숨겨두었던 일기장처럼 다가왔다.

그 서슬퍼렇던 80년대 군부독재정권의 위력을 가까이서 늘 접하며 어린 마음에 뭐가 뭔지도 모른 채 최루탄 가스에 눈물 찔찔 흘리고, 데모한다고 단축수업하면 좋다고 서둘러 집으로 달려왔던 시절을 떠올리며, 나 자신도 잊고있었던, 도대체 영문도 몰랐던 그 시대의 혼란스러움과 부조리를 이렇게 낱낱이, 그러나 잔인하지 않게, 마치 봄 햇볕에 눅눅한 이불을 탁탁 털어 널어 말리듯이 그렇게 들춰내었던 작가의 필력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었다.

동구가 주리 삼촌을 따라가서 마주하게 된 어느 술자리에서 거칠게 쏟아져 나오는, 형들의 술기운어린 시대에 대한 비판, 그리고 뭣도 모르면서 건네주는 소줏잔을 홀짝홀짝 기울이다 급기야는 엉엉 취해서 울던 동구의 멀미나는 듯한 정신적 혼란함. 너무나도 교묘히 표현된, 당시 혼란했던 사회상의 한 단면 아니었을지. 그리고선 바로 5.18이 터지지 않았던가. 광주와 옥인동이 무슨 상관이 있으랴. 하지만, 동구에겐 가장 소중한 사람을 만났던 곳과 잃은 곳이었다. 그 사이엔 짧지만 더없이 아름다웠던 '추억'이 있었던 것이다.

박은영 선생님. 어느덧 내 삶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하게 된 가상의 여인. 동구가 할머니와 엄마 사이에서 괴로워할 때----. 만약에 내 반 학생이 나에게 와서 할머니와 엄마 때문에 미치겠어요,,, 하고 울며 하소연할 때, 나는 뭐라고 했을까. 그저 할머니만 두둔하거나 아니면 엄마 편을 들면서 아이를 더 혼란스럽게, 더 갈등하게 만들었겠지.

그러나 박은영 선생님은 아니었다. 왜 할머니가 그렇게 독해질수 밖에 없었는지, 왜 그렇게 자식과 손주들에게 집착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라고 한다. 그리고 가장 괴로운 사람이 누구일지 생각해 보라고, 그리고 그 괴로운 사람을 위해서 동구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보라고 한다. 우리 주위에 그런 현명하고도 사려깊은 충고를 해줄 사람이 과연 또 있을까.

동구는 담임 선생님을 통해 성자가 되어간다. 순박한 눈을 하고서 주위의 복잡한 사건들을 하나 나름대로 풀어나가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아주 작고 순수한 성자가 되어가는 것이었다. 어쩌면 우리 삶에서도 그러한 분이 필요하지 않을까. 탁월한 분석력과 해박한 지식이 아닌, 그저 마음을 열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는 가르침을 나즈막히 전해줄 수 있는 그런 분...

학기를 마치고서 학생들에게, 학부모님들께 한 줄 한 줄 짧지만 정성들여 메시지를 쓰면서 어느덧 내가 이렇게 자상한(?) 담임으로 바뀌어가는 데엔 역시 알게모르게 박은영 선생님의 그 애정어린 편지의 영향도 컸다. 아니, 나는 박은영 선생님처럼 그렇게 아이에게 가장 소중한 능력을 일깨워주고 꿈을 갖게 만들어줄 정도까진 아직 못 된다. 하지만 박은영 선생님처럼 아이들 한명 한명을 동구 대하듯이 만나야겠다는 어떤 굳은 결심 같은 것은 선다. 소설 속의 인물이 이렇게 내 삶에 영향을 줄 줄은 몰랐다.

오늘도 새벽 공기를 가르며 옥인동 골목을 걷는다. 동구에게 항상 정신적인 안식처가 되어주었던, 꽃과 나비와 푸른 잔디가 아름다웠던 그 정원이 어딘가에 아직도 있지 않을까 기웃거리며 .....

왜 사랑일까??

사랑을 잊은 지구형제들에게
메리 마거릿 무어 외 엮음, 유은영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2년 11월

어쩌면 '사랑'이란 단어가 이 시대에 너무나도 흔하게 쓰인 나머지 이젠 식상해버린 단어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시대에 왜 다시 저자는 '사랑'이란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졌을까.....

이런 의문을 품고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읽어내려가면서, 이 책에서 누차 주려고 했던 깨달음인, 타인에 대한 수용과 자신에 대한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 번 읽었을 때엔 잔잔히 울리는 영혼의 파문이었다면 두 번째 읽었을 때엔 그간 뒤틀렸던 제 자신의 삶을 콕콕 찍어 고쳐주는 듯한 예리함에 가슴이 울렸고, 세 번째 노트에 쓰면서 읽으면서는 제 자신의 삶이 이젠 바뀌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생각이 들어오는 것을 그저 조용히 지켜보라는 것. 내가 어떤 방향으로 채널을 맞추고 있느냐에 따라 들어오는 생각이 달라진다는 것, 어떤 감정이 일어날 때, 그것에 대한 반응을 우리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가슴 속의 핑크빛에 주의를 기울여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도록 노력해보라는 것.......

각박하게만 살아갔던 이기적인 저에겐 너무나 지키기 힘든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크게 한숨 돌리고서 이 구절들을 한번 실천해보리라 마음먹는 순간, 그대로 행동으로 옮겨지는 놀라운 이치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정말, 저자가 몇 번이나 깨우쳐주려고 했던, 우리 생명의 어떤 큰 힘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구절들이 다 진리라고 감히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른 믿음을, 다른 신앙을 가지신 분들은 어쩌면 이 책의 내용을 너무 신비적이고 주관적이고 혹은 비성경적이니까 해가 된다고 혹평할 수도 있겠지요. 뉴에이지 운동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구요.

그래서 읽어보라고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번 즈음 자신의 내면을 돌이켜보고 싶을 때, 이 우주가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가를 한번 둘러보고 싶을 때, 타인이 너무나도 미워서 괴로운데, 억지로 기도해도 잘 안 될 때,,,,,

그럴 때에 그저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번 나즈막히 소리내어서 읽어보라고 권하고는 싶습니다. 잔잔한 영혼의 울림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전부가 아닐런지요

입 큰 개구리만큼 좋아하지는....

너는 누구니? ㅣ 하하! 호호! 입체북
키스 포크너 지음, 박현영 옮김 / 미세기 / 2001년 7월

같은 키스 포크너의 글이긴 한데, 그림을 그린 사람이 다르더군요. 어쨌든, 입체북이니까 아이가 흥미를 갖긴 했지만, 아무래도 <입 큰 개구리>만큼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입 큰 개구리>는 이야기가 인과성있게 연결되잖아요? 입 큰 개구리를 먹는 악어 때문에 개구리는 스스로 입을 작게 오무리고는 물 속에 풍덩 빠져드는 이야기 구조. 어린 아기도 내용 전개를 무리없이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런데

<너는 누구니?>는 새끼 동물이 커서 어떻게 어른 동물이 되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비교의 효과를 거두고는 있지만, 그저 여러 동물들을 죽 나열만 해서인지, 아이가 몇몇 인상적인 그림만 보고 나머지는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더군요. 나비와 백조 등등의 그림은 정성들여 그린 티가 나타나는데, 나머지 개구리나 캥거루 등의 그림은 좀 대강 만들어 붙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좀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여러 동물들의 새끼의 모습과 어른의 모습을 비교해서 볼 수 있게 입체적으로 그렸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구요, 잘 찢어지니까 살살 펴서 읽혀주세요 ^ ^

거꾸로 추론하는 능력을 길러줘요

곰 사냥을 떠나자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3
헬린 옥슨버리 그림, 마이클 로젠 글, 공경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4년 6월

어느 리뷰처럼, 같은 문장이 단순하게 반복되어서 아이들이 지루해할 수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똑같은 문장만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면서 차츰 스토리가 전개되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아이들에게는 변화의 과정을 보여줄 수 있으므로 더 흥미를 갖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희 아이도 무척 좋아하거든요. 대신 읽어줄 때 점점 목소리를 크게 조절해서 읽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내용이 점층된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아, 또 하나!
나중에 곰이 나타나자 다시 집으로 거꾸로 돌아오는 장면들이 몇 페이지에 걸쳐서 나오지요? 아이들은 그동안 점점 곰 동굴에 가까디 다가갔던 여정을 거꾸로 되돌려 추론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대신, 지루하지 않게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그려졌던 그림들은 두 페이지에 칸을 작게 분할해서 한꺼번에 쭉 훑어볼 수 있게 하고 있지요. 이 정도면 정말 신경 써서 그린 것 아닌가 합니다.

제가 감동을 받은 것, 그리고 우리 아이가 특히 감탄했던 장면은 맨 마지막 페이지였어요. 곰이요, 달빛을 받으며 파도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동굴로 터벅터벅 걸어서 들어가는 그림이거든요. 곰은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었나봐요. 그런데 모두들 기겁하고 도망가니까 풀이 죽었나본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한편으론 안쓰러운지 모릅니다.

곰도 아주 귀엽게 그려져있어서 저희 아이는 무척 좋아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