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사소한 구원 - 70대 노교수와 30대 청춘이 주고받은 서른두 통의 편지
라종일.김현진 지음 / 알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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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정기적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모임에 나가지 못하면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책을 쌓아놓고 이것저것 읽으면서도 기록하거나 일기를 쓰지 못했다. 거실 창문으로 보이는 과수원 나무들이 햇살에 뿌옇게 빛나는 걸 보면서 날씨가 이렇게 좋으니 오후엔 산책을 할까 생각하다가도 시간이 되면 쉽게 나가지 못하는 이상한 증상에 시달렸다. 그러다가 사람을 만나면 쓸데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끝도 없이 쏟아냈다. 요즘 들어 나는 중독적 성향이 강하고 자기 조절 능력이 취약하다. 뭔가 시작하면 집중을 하는 게 아니라 그 행위에 매여 옴짝달싹 못하고 갇혀있다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을 만나면 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렇다-계속해서 지껄이고 있다. 너무 비판적인 이야기나 감정적인 이야기를 필터 없이 다 쏟아내면서 나는 위선적인 사람이 아니다, 라며 합리화를 하는데 집에 와서 볼일을 보다가 문뜩 내가 뭔가에 쫒기 듯 살고 있구나 싶다. 사십이 넘어서면서부터 이제껏 내가 추구해왔던 건 지식과 삶의 의미에 대한 갈망을 해소하는 일이었다. 나와 내 주변에 대해 바로 알자, 라는 생각이 십년이 지나자 너무 한쪽으로만 편향된 균형을 잃었다는 위기감이 든다. 변화가 절실히 필요한 시기가 온 것이다. 그간 나를 붙잡아 줄 의미의 중력 같은 게 필요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걸 빨아들이고 해부하고 비판하는 내 자신이 싫어진다. 그런 행위가 어떤 선을 넘어 의미를 해체하고 현실성을 잃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가장 사소한 구원>은 제목에 몹시 끌린 책이다. 또 책이냐고? 그렇지만 어쩌겠냐? 삶에서 못 배우는 아둔함을 책을 읽으면서 어떡하든 깨어 버려야겠으니. 반세기 가량의 나이차가 나는 노교수와 작가의 서른 두 통의 편지글을 접하면서 나는 사소한 것 같지만 깊이 있는 철학적 종교적 지혜를 기대했다. 그건 책의 제목과 표지 때문에도 그랬다. 그런데 책 내용은 생각했던 것보다 현실적이었다. 젊은 작가인 현진은 불우했던 과거의 상처와 비관적인 현실의 무력함 때문에 상처 입은 영혼처럼 보였다. 현진은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로 인해 위축되고 불행했다. 아마도 그녀는 붙잡을 끈이 필요했으리라. 그것이 책이나 종교가 아니라 살아있고 교감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인 것을 이해한다. 풍요롭고 좋은 것에서 빈곤하고 악한 것이 생겨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과 멘토와 상품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요새 느끼는 거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더 그렇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대학에서 운동권이었고 기독교 신자이면서 집값 폭락의 희생자이며 인문학에 열광하지만 쇼핑을 좋아하는 다중적인 인간이다. 가장 사회의 영향을 격하게 받은 자가 아닌가. 너무 많은 것들로 인해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삶의 가치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복잡다단한 생각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 것 같다. 반성은 잠시이고 현실에서는 그 사이클에 푹 빠져 있는 게으름이라니. 책 내용 중에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한 구절이 있다. “어떤 문제이건 그것이 발생한 차원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언젠가 고미숙의 <호모 에로스>에서 읽었던 ‘변화하고 싶으면 삶의 차서와 배치를 바꾸라’는 말이 생각난다. 문제를 느끼기는 하지만 삶의 차서와 배치를 바꿀 열정이 부족하니 번뇌가 생긴다. 열정이 부족하다는 건 아무래도 충분히 깨닫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게다가 나의 게으름도 큰 몫 한다. 이제는 아주 많이 가벼워져야 한다. 고질적인 꼰대의 모습, 수다스러운 중년 아줌마, 탐욕스러운 자기만족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고 나의 심혼은 말해준다. “문제는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크고 작은 상처, 그 상처의 아픔이 아니라 그 아픔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에 있겠지요.” “저는 우선 자신의 상처를 남에게 드러내 보이거나 반대로 장한 일로 추어올려 앞세우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 자기 탐닉은 사람들이 흔히 빠지는 천한 일 중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노교수는 내가 지나쳐버린 작은 실수가 삶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성찰을 준다. 아프니까 괜찮다는 생각은 분명 합리화다. 노교수의 정신세계는 많은 지식이 있음에도 담백하고 섬세하면서도 균형이 잡혀 있다. 잘 기억하고 잘 보존한다.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한 에너지를 훼손하지 않고 미래를 열어놓고 바라본다. 감상적인 긍정이나 비난을 삼가면서도 인생의 소중했던 시간들을 잘 갈무리해서 삶의 동력으로 활용한다. 그간 책으로 읽었던 지식과 경험을 어떻게 하면 내면화하여 나를 성장할 토양으로 만들 것인가. 가장 굵직한 주제는 기본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나에 대한 자긍심과 타인에 대한 자비로운 마음이 기반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글 서두에 “글로 쓰인 것들은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는다”라는 말에 동감한다. 부지런히 글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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