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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판타지
무라야마 유카 지음, 김성기 옮김 / 문학의문학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남자의 엉덩이는 왜 이렇게 차가운 걸까. 그것만은 체격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똑같다.
...라고 시작하는 이 책은 첫번째 장부터 생각보다 수위 높은 내용으로 나를 당황하게 만들더니
성욕이 강한 중년 여성의 연애생활을 그리고 있는 책이니만큼 내용이 참 적나라하다.
이런 비슷한 내용의 (물론 성욕강한 중년여성의 연애생활을 그리고 있는 것만 비슷)
<불유쾌한 과일>을 작년 이맘때즈음에 봤었는데 오랜만에 야시시한 내용의 책을 보려니까
꽤나 민망하고 움찔움찔하게 된다. 이 책을 보면서 또 나의 의외의 순수성을 발견했지.
주로 출퇴근시간에 책을 보는 내가 책표지는 도저히 못 끼우고 다닐 것 같아서 아예 벗겨내버리고는
하얀 하드보드 표지만 들고다녔지. 양장이 아니었음 어쩔 뻔 했니!
그래도 뭔가 수위는 비슷했지만 <불유쾌한 과일> 볼 때 보다는 좀 더 이야기 흐름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겠더라. 내가 아직 어려서 그런지 원래 성향이 좀 그러그러한 애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약간 수위 높은 책들은 엄청난 흡입력으로 읽어 잡수시긴 하지만, 그렇게 집중해서 본 책임에도
그다지 기억이 남는 내용도, 상황도, 대사도, 인물도 없던데 그나마 이 책은 좀 괜찮은 것 같음.
이야기는 능력있고 그 분야에서 꽤나 인정도 받는 실력있는 작가인 나츠가
어린 시절 권위적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인해 착한아이 컴플렉스라고 해야 하나?
싫어도 좋은척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하기 싫어하고 그저 항상 웃는 모습으로 지내게 되는데
결국은 그렇게 생활하던 10년 남짓 결혼생활도 모두 내버리고 마음 가는대로, 몸 가는대로
변화하고 성장하고 발전(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만)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는 항상 남자.남자.남자.남자가 있다.
남자 1. 남편 쇼고
남들이 보기에는 유능하고 젠틀하고 남자답고 친절하고 일하는 아내를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좋은 남편의 모습을 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은 정말 내가 보기에도 소름끼칠 정도로 이중적이고
독선적이고. 작가인 아내에게 '당신은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라는 식으로 얘기할 적에는
정말 나츠말마따나 폭력을 휘드르지 않아도 무섭고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아무튼 뭔가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이남자 도무지 마음에 드는게
하나도 없었음! 나는 이미 이웃이랑 그 정원에서 싸우는 모습보고는 실망작렬!!!!!!!!!!!!!!!!!!!!
뭔가 남자답고 자기만의 신념이 강한것까지는 좋지만 이렇게나 고집스럽고 독선적인
(외삼촌 장례식 장면에서 그의 고집에 대한 건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 남자는 진짜로 피곤할 듯!
남자 2. 시가와
음 뭐랄까. 이 못된 날라리 영감탱이.
우선 남편에게서의 독립을 이야기하면서 나츠를 인간 그 자체로 존중해주고
나츠의 재능을 높이 사서 칭찬해주고 격려해주고 만신창이가 된 나츠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뭐 그런것 까지는 다 좋았는데. 아 역시 사람은 끝 마무리가 좋아야 해.
아주아주 나중에 시가와를 제대로 못 잊고 있었을 때 오바야시가 예전의 술자리를 떠올리면서
시가와가 나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했던 것에 대해서 얘기할때에는 나도 '끝'이라고 생각했어.
아무튼 뭔가 제대로 된 나쁜남자 스타일이랄까. 잠자리에서나 콧털에서나 야성미 작렬 캬캬캬
남자 3. 이와이
여주인공 나츠와 친구처럼 연애하는, 식물같고 기린같은 이 남자.
개인적으로는 이와이와 나츠의 이 자유로운 연애를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느꼈다.
그 중에 가장 와닿았던 건 역시 남녀의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이라고.
남자 여자가 사귀면서 애정의 정도가 잘 안맞는다는 건 익히 들어 잘 알고있긴 했지만,
역시 이런식의 사례를 보니까 완전 와닿더라.
하지만 또 모든 걸 주고싶어하던 나츠를 밀어내던 이와이의 마음도,
오바야시에게 100% 다 할애하고싶은 나츠의 마음도,
뒤늦게 후회하며 공기처럼 그저 주변에 머물러 있고 싶어하던 이와이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렇게 다 이해가 가기때문에 안맞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휴우
아무튼 이와이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그래도 그렇지. 나에게 100프로 다 하지 않고
상대방에게도 누구하고든지 자유롭게 연애하라고 하는 남자하고는 나는 절대 연애 못할 것 같아.
아무튼 난 소심해서 그런지, 뭐든, 심각하게 비껴나가지않는 정상적인게 좋다!
남자 4. 오바야시
'내가 좋아하는 여자를 도무지 다른 남자와 공유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하는 걸로 보아서는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이 남자의 맘은 잘 모르겠다. 이래서 선수들은 상대하기가 힘들어.
끊임없이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도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는 나츠의 심리를 통해서
여자가 느끼게 되는 성욕이나 관계에 수반되는 진실된 마음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할 수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뭔가 겉만 뻔지르르하고 (책 속의 그 땡중 쇼운같은)
겉멋만 잔뜩 들어가서 으시대는 남자들이 보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책.
책 속의 나츠도 그렇고, 이 책의 작가인 무라야마 유카도 그렇고
뭔가 관능적인 소설을 써보고 싶었던 것 같은데, 관능적이라는 것. 도대체 뭐야 그게.
시가와가 나츠에게 추천했던 그 관능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너무 섹시하기만 하다거나 성적인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관능과 외설의 경계가 중요하다고들 하는데.
아아 난 아직 어리고 순수하고 뭘 잘 몰라서 그런지 뭔가 확확 와닿지가 않네. 쿄쿄쿄
그런의미에서 <불유쾌한 과일>이나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