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읽은 성장소설 - 성장소설은 왠지 읽고나면 기분 좋고 왠지 나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고 감정 이입 이빠 - 이 시켜놓고 내가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곤 하는데 요 책에 나오는 성인식을 하고 있는 아이들은 왠지 나이만 아이이고 생각하는 건 나보다도 한수 위인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의 생각을 따라가다보니 지금의 나보다 더 어른스럽기도 하고 또 생각을 많이 하는구나, 싶은 것이 왠지 부끄러워지는 기분 책은 단편으로 이루어진 다섯 가지 이야기로 각기 다른 등장인물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야기들이 대체적으로 한 흐름을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특히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 시골에 가서 귀여운 오리와 닭을 키우는 이야기가 나오는 <암탉>과 대통령도 주목하고 전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조류독감 파동으로 인한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는 <욕짱 할머니와 얼짱 손녀>가 그러하다. 나는 특히 이 두가지 이야기에서 등장인물이 바라보는 오리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암탉>에서의 오리는 그들 가족에게는 이웃 사촌(이라고 하기엔 무색하지만)들이 아무리 마음에 안들어해도 그래도 함께 살아가고 싶었던. 심지어 이 아이들 모두 데리고 이사를 고려할 정도로 가족만큼이나 소중한 존재였다. 반면에 <욕짱 할머니와 얼짱 손녀>에서 손녀 필분에게 오리는 할머니의 못된 집착의 산물로밖에는. 자신을 온 동네방네 사람들이 다 귀찮게 하고 죄인취급하게 만드는 조류독감 걸릴 가능성이 농후한 유해한 것으로밖에는 취급되지 않는다. 시선이 이렇다보니 같은 종의 동물이라고 할지라도 두 작품에서는 주인공 소녀들에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는 게 재미있다. ---------------------------------------------------------------- <암탁>에서 예분의 눈에 비친 오리 나는 오리를 보고 있으면 평화로움이 무엇인지 말하고 싶어졌다. 희극배우 같은 오리. 온갖 알 수 없는 감정들을 숨기고서 뛰뚱 뛰뚱 걸을 때 보면 세상에서 가장 웃긴 동물들임을 알 수 있다. 가끔씩 고양이한테 쫓겨 한두 마리가 계곡으로 날아가면 나머지 오리들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찾아나섰다. 그 의리에 나는 감동했다. 사람들도 오리처럼 왕따를 시키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무척 부러워했다. (p.107) <욕짱 할머니와 얼짱 손녀>에서 필분의 눈에 비친 오리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귀여운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저 동물. 단춧구멍만 한 눈으로 늘 인간의 눈치를 살피고, 혹부리영감처럼 부리 위에 솟아 오른 돌기는 징그럽고, 느릿느릿 걸어가다가도 낯선 사람을 보면 부리를 땅에 닿도록 내리깔고는 무섭게 돌진했다. 그때는 할머니조차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꼴통이다. 왕꼴통이다. (p.143) ----------------------------------------------------------------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가장 처음에 있던 책의 제목이기도 한 <성인식>. 그 이야기 속에 나오는 어머니의 자식을 생각하는 사랑이라든지, 아니면 가족처럼 지내던 개를 내 몸을 위해 내 손으로 죽여야 하는 주인공 시우의 상황도 인상적이긴 했지만, 역시 힘만 세고 무식한 꼴통이라고 생각하던 진만이 처해있는 상황과 자신의 지금 모습을 비교해보면서 이러저러한 생각에 잠기던 모습을 보고있으려니까 참 - 세상에서 최악의 상황이란 건 상대적인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소중한 것과 이별을 하는 것. 그리고 그 아픔과 힘든 과정을 나 혼자서 스스로 감내하는 것. 그리고 왕따라고 하는 것에서 벗어나 나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새롭게 시작해내는 것. 아 그리고 마지막에 <먼 나라 이야기>가 나는 왜 제목이 이런가 했더니 주인공 남자애가 예전에 좋아했던 수인이라는 애가 미국산 소고기 파동과 관련해서 수업을 거부하고 촛불 시위에라도 참가해야 되는거 아니냐고 말하는데, 사실 그건 정말 먼 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는 것. 지금 이 곳에서는 정말 소고기라 는 것이 미국산 소고기 파동이 아니라, 우리집 축사에 있는 소, 침통한 집안 분위기. 그것만으로도 감당해내기 벅찼던 것이다. 아. 성장소설이라고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쉬엄쉬엄 보기에는 약간 어렵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글 속에 있는 매개체라든지 복선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밑줄 쭉 그어놓고 중학교때 보던 참고서처럼 설명글이라도 달려있으면 더 재미있게 봤을 듯 싶다. (어째 나는, 점점 더 게을러지는 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