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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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하다.

처음 시작부터 왠지 평범하지만은 않게 시작하는 분위기가 한 장 한 장 넘어갈수록 왠지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싶게 만든다.

 

나는 아직 어렸을 적이긴 하지만 부모님께 여쭤보니 '오대양 사건'이라고 아주 정확하게 기억을 하고 계신 걸 보면

당시에 정말 큰 이슈를 낳긴 낳았던 사건이었던 것 같다. 하긴, 요즘같이 사회가 흉흉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기가막혀서 말이 안나오는 몹쓸 사건들이 출몰하고 있지만 '32인의 집단 자살'이라는 타이틀은

여전히 끔찍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몇십년이 흘러서 지금보다 더 흉흉해진들 이런 사건에 눈 꿈쩍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 들 정도로 당시에는 이보다도 더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을 오대양 사건.

사실, 책을 보기 이전에 이미 이 끔찍하고 처절한 오대양 사건에 대해 기삿거리를 찾아보기도 하고

책에 대한 신문기사를 찾아서 읽어보기도 한 후에 이 책을 접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놀란가슴을 움켜잡고 연신 책을 덮었다 펼쳤다, 할 뻔 했다.

그리고 32인의 자살한 시체를 발견하게 되는 것으로 사건이 시작되지만, 책 속에서는 22인의 주검으로

설명이 되고 있었기에 그에 대한 호기심이 더 일어, 더욱 책에 몰입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

 

'나'의 탄생부터 시작되는 이 소설의 이야기는 점차 화자인 나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하루하루를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처음에 어리고 작은, 연약한 엄마가 나를

낳는 시점부터 시작할 때에는 마치 내 눈 앞에서 산모가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는 듯

눈쌀이 찌푸려지고 나도 모르게 책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더라.

추적추적한 바닥에서 고무장화를 신고 일하는 이모들의 모습과, 그런 여인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에 기가 눌린

삼촌들의 모습들... 그리고 시금치 냄새가 나고 땀내와 온갖 음식물 냄새가 코를 찌르는 듯,

마치 그 현장에 있는 것처럼 모든 걸 여실히 느끼며 책에 몰입할 수 있었다.

 

갈 곳없는 사람들을 모두 내 혈육처럼 받아주고, 또 그들을 챙겨주고 보살펴주면서

점차 커다란 집단이 형성케 된다. 그들은 모두 말 그대로 피가 섞인 '혈육'이라고밖에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자유분방한 성생활.

그저 흘러들어왔다가 흘러나가듯 남자들을 대하고, 그렇게 임신을 해서 낳고, 또 임신을 해서 낳고.

그곳에 모여 있는 여인들은 아무리 많아봐야 30대 초반을 밑돌지만 이미 아이를 몇 명이나 낳았는지 모를 몸이었다.

(실제로 주인공 '나'의 엄마도 24살의 나이로 '나'로 인해, 두번째 출산을 하게 되었던 것.)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면서, 또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갈곳없는 이들을 품안으로 받아주는 어머니의 존재.

마치 옛날 사람들의 (아주아주 머언 옛날) 삶을 보는 것처럼 그 집단생활이  갸우뚱하면서도,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읽다보니, 사실 실제는 그리 자유롭지만은 않았다.

강제적인 규율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것.

그런 규율 속에 무언가가 은폐되어 있는듯, 갑자기 세상 밖으로 나타나게 된, 자살한 수많은 주검들...

사실 그 당시 오대양 사건에서도, 그리고 하성란 작가님의 이 '에이 A'라고 하는 소설에서도

그 주검들이 자살로 인한 것인지, 타살로 인한 것인지는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지 않다.

한둘도 아닌 이 수많은 사람들이 어째서 하루 아침에 주검으로 발견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

책을 읽어보기 전에, 찾아보았던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내게는 안타까움과 씁쓸함을 남겨둔 채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무언가를 쥐어줄 줄 알고 읽었던 소설속에서조차 현실과는 다를바 없는 여운을 남겨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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