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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몸값 2 ㅣ 오늘의 일본문학 9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나오키상을 수상했었던 <공중그네>의 작가라는 점에서 1표
안그래도 동계 올림픽에 푹 빠져지냈었는데, 이에 도발하는 듯한 제목에서 1표
얇지않은 두께에 2권 완결인 장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서평글이 쏟아져나오는 데에서 1표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들로 보기 전부터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좋다. 좋다. 좋다.
전쟁 이후 초토화되어 있던 일본이 15년만에 도쿄를 세계에서 손에 꼽을 수 있을만큼의 멋진. 도시로 만들어놓고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유치한다.
도쿄내를 주름잡고 있던 야쿠자들마저 올림픽 기간만큼은 자진해서 산으로 들어가서 자숙의 시간을 보내려고 할 만큼
올림픽이 성황리에 이루어지기를 온국민이 소원하는 이 시점에. 이러한 올림픽을 인질로 삼아, 국가로부터 두둑하게 몸값을 받아내려는
시마자키 구니오. 그가 주인공이다.
도쿄대학교 대학원 경제학도이면서, 뽀얀 피부에 가부키 배우인것같은 곱상한 얼굴에,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학교 다닐적에도 빨갱이는 커녕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했던 그가 왜 갑자기 룸펜프롤레타리아를 외치면서 이러한 반역을 꿈꾸게 되는 것인지.
우선 1권은 그를 잡으려는 형사 오치아이 마사오의 시점과 범인 시마자키 구니오의 시점을 오가며 조금은 느슨하게 전개된다.
곱상하고 얌전하고. 고향인 빈민촌 아키타나 형, 어머니에 대해서는 그다지 크게 관심도 가져오지 않고 공부만 해오던 구니오가 어쩌다가
국가를 상대로 큰 범죄를 저지르려고 하게 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구니오의 작은 단서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며 조금씩 구니오의 실체에 한걸음씩 다가가는 마사오 형사.
또 도쿄올림픽 경비본부 최고 지휘자의 아들 스가 다다시와 구니오를 짝사랑하는 헌책방 딸 요시코가 간간히 등장하며 사건전개에 양념을 친다.
"요컨대 뭘 원하는 거야? 돈인가?"
"아뇨, 평등한 사회입니다."
"평등? 그런 게 어디 있어?" 두목이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까지는 없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실현하려는 것이죠.
우리 고향은 빈농의 시골입니다. 정치권 밖으로 내팽개쳐진 지역이에요.
화려한 도쿄의 100분의 1이라도 좋으니 그 부를 돌려주고 싶은 겁니다."
-p.206(2권)
누구는 머리가 남들보다 조금 좋다는 이유로 좋은 대학을 다니며 머리에 포마드를 바르고 한쪽에는 책, 한쪽에는 여자를 끼고 다니고
누구는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필로폰 없이는 하루 하루를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삶에 찌들어 살고.
온 국민이 염원하는 도쿄올림픽이 다가오면서 하루아침에 도심 곳곳에서는 으리으리한 삐까뻔쩍 빌딩들과 경기장, 모노레일 등이 세워진다.
그리고 그렇게 언제 전쟁이라도 있었냐는듯이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하고 세계의 중심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일본의 다른 한 편에서는
올림픽이 다가올수록 완공을 하기 위해 하루 14시간, 일주일 중 6일이 넘게 아스팔트 위에서 땀흘리며 일하고. 그러다가 죽어가는 노동자들이 있다.
공사판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 누구라도, 삶이 힘들고 지겹고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없지만
이러한 현실이 제대로 된 게 아니라는 건 모두 자각하고 있지만
그러한 그들의 생각들이 현실에 반영될 리가 없다. 그저 하루 온종일 일해서 번 돈을 야쿠자 똘마니들의 노름판에서 뜯기지나 않으면 다행.
하지만 그렇게나마 자각이라도 하고 있으면 다행이지.
빈민촌에서는 같은 일본 땅덩어리에서 도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느끼지도 못한채 여전히 전쟁 이후의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그나마 올림픽 전후기간중에 성화나 마라톤 코스라도 마을을 거쳐서 가게되면 그것만으로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부당하게(어쩌면 부당하다고 말할수도 없을지 모르지만) 죽은 형을 기리고, 고향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어머니와 형수, 조카들을 생각하며
구니오는 하루 하루가 다르게 육체적으로 고될수록 생각은 점점 깊어져서 결과적으로 올림픽의 몸값을 받으려는 범죄에까지 이르게 된다.
원래 범인이 누구든지간에 주인공이 누구냐에 따라서 마음이 한쪽으로 쏠리는 건 사실이지만
이처럼 책 두권을 읽는 내내 범인 구니오에게 마음이 쓰였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의 심리적인 변화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나도 그와 함께 서서 온갖 부와 번영은 독차지하고있는 도쿄를 증오하게 되고
또 그런 부를 아키타와 같은 곳에 나눠줘야 한다고. 곱씹고있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 나는 (헌팅캡 소매치기 무라타가 얘기했던 도쿄대의 우 몰려다니며 데모하는 학생들처럼) 목숨걸고 하는게 아닌
부모밑에서의 어리광에 불과할 정도겠지만;
간간히 서로에게 끈끈한 정을 느끼고 툭툭 내뱉는 장난스런 말 사이에서도 정감이 넘치던 무라타와 구니오가 눈에 선하다.
자칫 어렵고 한쪽으로 크게 치우쳐서 반감을 살 수도 있는 이야기를 특유의 위트와 섭세하고 흡입력있는 인물묘사로 그려내는 오쿠다 히데오의
다른 작품들도 보고 싶다.
<공중그네>의 이라부 센세같은 천방지축 엽기발랄한 캐릭터만 생각하다가 처음 이 책 1권을 읽었을 때의 당황스러움이 점차 신선함으로 바뀌면서
결국엔 나도 모르게 책읽던내내 구니오에게 동화되어 있던 걸 생각하면. 아마도 이미 나는 오쿠다 히데오의 팬이 되어버린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