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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ㅣ 새움 세계문학
버지니아 울프 지음, 여지희 옮김 / 새움 / 2020년 4월
평점 :
버지니아 울프, 유명한 여성 작가라는 것만 알고 많은 분들이 추천하는 좋은 책이 많다는 것만 알았는데. 이 분의 책을 에세이 《자기만의 방》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의 후반부쯤 에 가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에세이집의 오리지널은 사실 버지니아 울프가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낭독한 두 개의 연설문이 시초였고 이것을 출판사(펭귄렌덤하우스)에서 옮겨서 출판(1929년 원제, A room of One’s Own)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버지니아 울프가 나에게 강연하듯, 이야기하듯 말하는 문체에 읽다 보면 익숙해지며 마치 저자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 듯이 빠져들게 되었다.
영국에서 1800년대 후반(1892)에 태어난 버지니아 울프, 그녀가 창작활동을 하며 이 강연을 하던 때는 여성의 선거권과 재산권이 주어진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자신이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바라본 세상의 모습 그리고 강연의 청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들이 정말 인상 깊었다. 지금은 그로부터 시대가 100년은 훨씬 지난 2020년이다. 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정말 성평등의 확산이 여러가지 분야와 면에서 많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데, 그 시절 사람의 뛰어난, 앞서가는 마인드의 버지니아 울프를 볼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글 내용이 낭독 연설문의 시초인 지 몰랐다. 하지만 작가와 대화하는 느낌, 작가의 서재에서 꼽혀있는 책들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편하게 하는 느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저자도 시, 소설, 비문학(에세이) 등 많은 작품활동을 펼친 작가인 만큼 다양한 그시대 그리고 더 과거 시대의 작가 이름과 작품, 활동 내용 등을 많이 언급하였다. 나의 비루한 문학 상식으로는 겨우 세익스피어 정도만 알 뿐이었기에, 그 분들 언급에 대한 이해는 다소 떨어졌지만 너무 좋은 책이었다.
100년 전 여성의 위치와 그 위치에서 남성을 꾸며주고 보조해주는 역할로서의 여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 그리고 창작 활동과 영감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곰곰이 많은 생각을 해 보게 해 준 책이다. 창작의 영감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개인의 천재적인 능력뿐 만 아니라 ‘돈과 자신만의 방’이라는 말.
언급한 여러 유명 작가들 중 세익스피어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한 것 같은데 그래도 내가 어느 정도 아는 작가이기에 참으로 반갑기도 했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덤’ 같은 느낌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실제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전기문을 읽는 느낌이었다), 작품과 연대표까지 함께 부록처럼 실려있다. 내가 읽는 버지니아 울프의 첫 책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친절한 연대표와 작가이야기는 나에게 또 다른 흥미와 재미로 읽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책 속 밑줄 문장들
78p.
이것이 셰익스피어 시대에 여성이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을 가진다면 대략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 것인가에 대해 제가 생각한 것입니다. ~
셰익스피어 같은 천재성은 막노동을 하고 교육을 못 받고 굽실거리는 사람들한테선 태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성 셰익스피어를 상상하고 만들어 낸 이야기가..참 재미있고 칼 같은 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83p.
게다가 이 모든 어려움들을 가속화시키고 더 참기 힘들게 만드는 건 세상의 악명 높은 무관심입니다. 세상은 사람들한테 시를 소설을 역사책을 쓰라고 부탁하지 않습니다.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힘든 점에 대해서 언급하지만 그 후에 언급한 내용이 더 칼 같았다…)
85p.
키이츠와 플로베르와 다른 천재적인 남자들이 너무도 견디기 힘들어했던 세상의 무관심은 여자의 경우, 무관심이 아닌 적대감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168p.
가치를 재는 오락이 즐거울지는 몰라도 그건 진짜 쓸모 없는 직업이고, 측정해서 내려진 판결에 복종하는 것은 정말 비굴한 태도입니다. 여러분이 쓰고 싶은 것을 쓰는 한, 그거면 됐지 다른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대적 약자의 위치에서, 여성으로서 창작활동을 하는 버지니아 울프, 하지만 창작품에 성차별, 사회적 위치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에 기초한 ‘잣대’를 부정하는 모습은 참 공감하고 싶은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