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삶이 존재한다.6.25라는 큰 전쟁을 겪고 살아낸 사람들의 삶과 2000년대 그 이전의 삶을 전혀 느끼지 못한 젊은 세대의 공존."고생해봐야 잘 산다"는 경험치가 "고생 안 해도 지 밥값은 하고 산다"는 서로 다른 잣대가 같이 존재한다.박완서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그녀는 "천상 작가"구나 싶다. 마음 속 생각들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 쉬워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삶을 따라가보면 단 한 번도 쉬웠던 적은 없다.마흔에 '나목'이라는 글로 등단할 때 문학계에서 염려를 뒀던 것이 평범한 일상의 토로를 글로 풀어낸 것이라 단발마에 그치겠구나 했단다. 그 뒤 여러 작품을 발표했지만, 비슷비슷한 주제를 우려먹는다는 악평도 받았노라 했다.때론 인문학 글을 읽다가 에세이나 시집, 소설을 찾아 읽을 때 박완서 작가의 책을 읽을 때가 있다. 나혼자만의 생각일 수 있지만 어떤 책을 집어 읽어도 박완서 작가만의 느낌은 어느 책에나 있었다. 사뭇 읽기 편하다는 느낌으로도 전달할 수 있지만, 식상한다는 느낌으로도 전해졌다.《기나긴 하루》는 앞서 얘기한 유년시절의 이야기부터 남편과 하나뿐인 아들을 연거푸 먼저 보낸 아픔, 여행으로 보낸 자신만의 허송세월, 글을 통해 자신의 마음 다스리기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런데 그 전에 읽은 책과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다.이 책은 작가의 글을 따라 하나의 공간이 그려졌다. 합성수지로 찍어낸 기와를 얹은 집. 남편과의 추억이 깃든 침대방. 그 집으로 가는 길의 시골이라는 정취가 그대로 드러난 길. 어느 곳으로 눈을 돌려도 고향산천의 그리움이 담긴 공기.얼마나 많은 시간과 하루를 녹여내야 그 그리움이 깃털처럼 느껴질까?하루의 짧음, 하루의 지루함, 하루의 해와 길게 늘어뜨린 석양의 애간장을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작가의 강단있는 문체가 넘사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