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의 대중심리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3
빌헬름 라이히 지음, 황선길 옮김 / 그린비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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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라이히'가 1930년대에 발흥한 유럽 파시즘을 분석한
이 책은, 생각보다 '잘' 읽혔다.
내용이 생각 외로 쉽기도 했고, 번역도 깔끔한 편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머리 속을 스친 것은,
임지현 교수의 주장으로 잘 알려진 '대중독재'라는 개념이었다.
파시즘을 유발한 원인은 결국 이를 승인 또는 암묵적으로 지지한
대중들에게 있다는 주장이다.
'일상의 파시즘'과 결합하면서 상당히 한국 지식계를
시끄럽게 만들기도 했던 그런 개념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개념은 <파시즘의 대중심리>에서
상당히 많이 빌려왔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 책의 주장은,
'어릴 때 성이 억압된 대중들이 파시즘을 형성하는 성격을
만들게 되었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너무 단순한 주장이다.
여기에 '가족과 종교계 등의 성적 억압으로 인해
대중들은 그 성적 억압을 내면화했고, 그 내면화로 인해
극우 파시즘을 용인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형성했다'
는 게 더 정확한 주장일 것이다.


결국 히틀러와 무솔리니 같은 독재자가 파시즘을
만든 게 아니라,
대중들 스스로 파시즘을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사실 이 책의 한계도 읽으면서 바로 눈에 들어온다.
'성적 억압에 의한 보수화' 등은 잘 설명한 듯 하지만,
왜 성적 억압이 바로 보수화로 연결되는지 사실은
그게 잘 설명이 되지 않고 있다.
그냥 '성적 억압은 보수 내지는 파시즘으로 연결된다'는
명제가 되풀이될 뿐이기 때문에 아쉽다. 

하지만 그래도 책을 읽으면서 반가웠던 것은,
대중독재론의 원재료를 확인했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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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용후기 - J. 스콧 버거슨의
스콧 버거슨 지음, 안종설 옮김 / 갤리온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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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꽤 사람들을 자극할만한 책이다.
제목에서부터 그러하니,
<대한민국 사용후기>라고 하는 말초적 제목을 보면
많은 한국인들이 흥분할 것이라 추측된다.

그런데 저자인 '스콧 버거슨'은 원래 지독한
한국문화 사랑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맥시멈 코리아>에서 '자판기 커피'와 '온돌'에 대한 예찬을
아끼지 않았던 바로 그 사람.
그런데 이 책에서는 한국에 대해 살벌한 얘기를 풀어놓는다.

박노자, 강준만 등이 쓴 책에 비해 날카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을 사랑했던 외국(미국)인의 글이라는 게
흥미롭다.
사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한국 문화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품고 있으나 지금의 천박해진 문화에 정나미가 떨어졌을 뿐이다.
그거야 책을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거니와,
사실 나 역시 '강북의 강남화'와 같은 현실 앞에서는
상당히 좌절 내지는 절망 모드로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어쩌랴, 대다수 사람들이 강북의 강남화를
기꺼이 환영하고 있으니.......

더욱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스콧 버거슨과 같이 한국을 사랑했던 사람이
이제는 오히려 일본에 대해 더 애정을 느끼는 듯 하다는 점이다.
이 책을 읽고 스콧 버거슨을 욕하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사실은,
지금 한국의 천박해지는 모습들이
한국을 알고자 하고 한국을 사랑할 마음이 있던 사람들을
내쫓고 있으며 자꾸 우리의 아군들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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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몰락의 내재적 접근 - 정권이란 무엇인가 기파랑 시민강좌 2
이신우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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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파랑'은 매우 특이한 출판사이다.
프랑스의 맑스주의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의 책을 번역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반공 내지는 반좌파 논리의 책을
발간하기도 하니 말이다.

어쨋든 기파랑에서 나온 이 책은 생각보다 잘 읽혔다.
가장 앞부분은 진중권 등 좌파 이론가들에 대해 반박하는 형식인데,
색다른 논파 방법이었다.
우익에서도 이런 논파 방법을 사용하는 걸 보면,
상대방의 글을 뒤집는 방식이 이젠 보편화된 것 같다.

박정희, 전두환 정부로 이어지는 군부독재 시대에 대해서는
저자는 당연히 긍정적인 입장이 강하다.
사실 이 시대에 대한 평가는 매우 복잡할 수 있다.
그나마 '광주사건'이라는 원죄가 강한 전두환 정권은
쉽게 '나쁜 놈'이라고 심판내릴 수 있을 텐데,
박정희 정권은 판단에 있어서 상당한 신중을 요한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예상대로 매우 혹독하다.
물론 나 역시 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매우 좋지 않다.
역대 최악의 정부에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의 입장에 동조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잘 씌어진 책이다.
그리고 상당히 대중적인 글쓰기를 지향했다고 여겨지는데,
좌파에서 이렇게 쉬우면서도 날카롭게 글을 쓰는 사람은
아직 진중권, 그리고 최근의 우석훈 외에는
누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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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스의 문학 - 삶, 그 열림과 생성의 시간 아우또노미아총서 10
조정환 지음 / 갈무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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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환은 상당히 어려운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처음 읽을 때에는 꽤나 어려운 용어들을 사용하는 그의 말 때문에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기가 힘들었지만

두 번째 읽을 때에는(그리고 그의 다른 글들을 참조하면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했다.


그런데 사실 의문이 드는 건,

과연 조정환이 문학 평론가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1920년대의 <카프>도 아니고, 이렇게나

자신의 자율주의적 성향을 쏟아붓는 글들을 문학평론이라고

내놓는 것도 참 우습다.

자율주의적 성향을 내비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문학평론은 뒤로 빠지고 자신의 자율주의 전도에 정신을

쏙 빼놓고 있다.

그나마 그가 하는 얘기는 거의 다 네그리가 하는 얘기를

한국식으로 변종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다보니 문학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건지

아니면 자신이 지지하는 이론을 전파하는 건지

정말 헷갈리게 된다.


김지하를 비판하는 부분도 웃기는 부분인데,

들뢰즈를 감싸는 방식으로 김지하를 공격한다.

나도 김지하를 지지하는 입장은 아니고 오히려 좀 멀리하는 편이나,

네그리에게 영향을 준 들뢰즈 이론에 갇힌 조정환은

들뢰즈의 이론에 기대어서 김지하를 비판할 따름이다.

그러니까 결국 자신은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김지하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들뢰즈를 감싸기 위해 김지하를 비판하는 형식이 되고 말았다.

뭐 조정환이 네그리의 이론을 신봉하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니

(그리고 신봉하는 것 자체를 가지고 뭐라고 할 건 아니고)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도 해 본다.


뭐 어쨋든 괜찮은 문학평론을 기대하고 이 책을 보게 된다면

상당히 실망하게 될 것이다.

유종호, 김현 등의 글쓰기를 기대한 사람은 더욱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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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성찰 - 기업사회로의 변환과 과제 프런티어21 4
김동춘 지음 / 길(도서출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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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책에서 북한을 ‘초민족주의’로 규정했다.

남한의 민족주의를 국가주의로 보는 것과 동시에.

이 부분은 ‘21세기와 한국의 민족주의’라는 제목으로 임지현 교수와 토론한 부분에 나와있다.

미국에 맞서면서 북한의 민족주의를 박정희의 민족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에 있어서 임지현의 주장을 더 경청하게 되는데,

‘발생론적 정당성이 현재를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라는 부분이 그렇다.

김동춘 교수의 북한 민족주의에 대한 주장을 보는 순간 한홍구 교수와 유사점을 느꼈다.

한홍구 교수가 자신의 베스트셀러 <대한민국사>에서 북한 지배체제를 다루는 방식을 보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는 듯 하면서도 상당히 긍정적인 묘사를 하고 있다.

김동춘, 한홍구 모두 ‘발생론적 정당성’으로 인해 북한 지배체제 또는 민족주의를

긍정적인 입장으로 보는 듯 하다.

다만 저자가 마지막 부분에서 ‘일상적 파시즘론’에 대해 표명한 우려에 대해서는

나도 일정 부분 동감한다.


한편 한국이 기업사회로 들어가는 부분에 대해 우려하는 게 앞부분인데,

삼섬을 묘사하는 부분을 볼 때에는 약간 지나치다는 생각도 든다.

핀란드에서 ‘노키아’가 차지하는 위상, 스웨덴에서 ‘발렌베리 가문’이 차지하는 위상과

비교할 때 한국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위상이 절대적으로 높다고 볼 수 있을까?

이러한 설명이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이 노사대타협을 이룬 것과 같은 부분을 언급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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