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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오유란 옮김, 베아트리체 리 그림 / 오래된미래 / 2004년 7월
평점 :
새해를 맞아 부푼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더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폭탄선언을 했다.
“나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어. 곧 회사에 사표 낼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맞벌이 가정도 아니고, 양가 부모님께 물려받을 집 한 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식이 많아 노년을 기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제 겨우 열 살짜리 아들 하나 키우며 근근이 살고 있는데 사표라니…….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조직 생활이 어딘들 힘들지 않을 것이며,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가는데 버티지 못하는 남편이 무능하게 느껴졌다. 내가 더 벌어오라고 성화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남들 다 하나씩은 갖고 있다는 명품백을 사 달라는 것도 아니고, 남편 월급으로 쪼개고 쪼개 부모님 생활비에, 아이 교육비에, 노후 대비까지 하느라 정작 나는 파마 한 번도 맘 놓고 못하는데…….
그러나 정작 남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 낳고 지금까지 남편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나와 내 아이가 편하게 살아왔으니까. 남편에게 이제 고생했으니 좀 쉬면서 인생 제 2막을 설계해 보라고 말해 주고 싶지만 그러기엔 내 능력이 부족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만 끓였다. 마음이 편치 않으니 몸도 덩달아 아파왔다. 이러다 마음의 병이 내 몸 속에 암세포를 심어놓는 건 아닐까 싶을 만큼 매일 매일이 괴로워 책을 펴도 글 한 줄 읽혀지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꾸뻬 씨의 행복 여행』(프랑수아 를로르 / 오유란 옮김 / 오래된미래)을 읽었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소설 속 정신과 의사인 꾸뻬 씨의 입을 통해 행복의 비밀에 대한 23가지 배움을 전하는 책이었다.
주변 지인들은 별 문제없이 행복하게, 날이 갈수록 더 잘 나가는 것 같은데 나는 열심히 살아도 늘 제자리걸음인 것 같고 오히려 사는 게 더 힘들어지는 것만 같아 우울하던 차에 읽어서인지 책이 통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자가 전하는 행복의 비밀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에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책이 읽혀지지 않았나 보다. 읽히지 않는 책을 읽어내는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
그렇게 책을 붙잡고 있는 동안 남편은 아직 사표를 내지 않았고, 나의 고민도 한 고비는 넘긴 듯 싶었다. 그리고 다시 며칠 전 남편이 또 폭탄선언을 했다. 언제 사표를 내든 멀지 않았다며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듯 싶었다. 뭐든 처음이 가장 놀랍고 충격적인 탓인지 이번엔 남편의 얘기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다만 나의 행복과 불행이 남편의 말과 행동에 따라 결정되어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사실 나는 꾸뻬 씨의 진료실을 찾는,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다. 자식들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자 애쓰시느라 자신의 건강과 노후는 팽개친 채 열심히 일만 하다 늙고 병들어 고생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그럼에도 다 큰 자식들은 부모님의 마지막 등골까지 빼 먹는 모습을 보며, 나는 절대 부모님처럼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런데 현실은 점점 부모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 내일에 대한 불안함으로 오늘의 행복마저 느끼지 못하고 있다.
꾸뻬 씨는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한다. 꾸뻬 씨의 친구 뱅쌍처럼 나 역시 행복의 기준을 물질적인 풍요로 설정해 놓고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고 집착하다 보니 정신적인 만족이 주는 행복한 순간들은 무시하며 살았다. 올지 안 올지도 모를 내일의 행복을 위해 늘 오늘의 행복을 저당 잡혀 사는 삶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
나는 지금 당장 행복하고 싶다. 그리고 그 행복은 내게 닥쳐올 어떤 상황,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를 지탱해 줄 그런 행복이길 바란다. 이제 나도 꾸뻬 씨처럼 행복의 비밀을 찾아 여행을 떠나야겠다. ‘현재’라는 도시에서 ‘이 순간’씨를 만나 행복하게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