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찰을 전하는 아이 푸른숲 역사 동화 1
한윤섭 지음, 백대승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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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야,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갈 곳도 없이 아비를 대신해 서찰을 전하느라 고생이 많았구나! ‘한 사람을 구하고 세상을 구하는 일’에 혼신을 쏟은 너의 갸륵한 마음에 이 땅의 후손으로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구나. 너보다 한참이나 나이를 먹은 나는 세상은커녕 아직 한 사람도 구하지 못한 것 같아 몹시도 부끄럽구나.

어지러운 세상에 실낱 같은 도움이라도 되고자 그 작은 몸으로 먼 길 떠나 고생하는 너의 모습에 하늘도 감동하여 네 노래에 약을 불어 넣었나 보다. 네 노랫소리가 이 땅의 민초들 마음에 힘과 용기를 불어 넣어 다시 살아갈 힘을 주었나 보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나 보다.

아이야, 그렇지만 아직도 이 땅의 민초들은 하루하루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단다. 젊은 시절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고생만 한 노인들에게 남은 건 늙고 병든 몸과 가난하고 외로운 겨울 뿐이란다.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어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고 하루살이 같은 삶을 살며 월, 화, 수, 목, 금, 금, 금인 냥 일하지만 내일을 기약하기가 어렵구나. 서해 바다 한 가운데엔 커다란 배 한 척이 네 또래의 아이들 수 백 명을 집어 삼키고 자식 잃은 부모들은 오늘도 가슴을 움켜 쥐며 울부짖고 있단다. 얼마 전 바다 건너 네팔에서는 지진이 일어나 많은 이들이 죽고 다치기까지 했다는구나.

아이야, 노래를 불러주렴. 약이 되는 네 노랫소리를 이 땅에 들려주렴. 네 노랫소리를 듣고 우리 모두 기운 내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아픈 마음 위로 받고 서로 힘이 되어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노래를 불러 다오. 너의 노래야말로 한 사람을 구하고 세상을 구하는 일인 듯 싶구나.

아이야, 내게도 꿈이 있단다. 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글을 쓰고 싶단다. 너처럼 굳센 책임감과 희생 정신, 따뜻한 마음만 간직한다면 내 글에도 약이 들어가리라 믿어 보마.

아이야, 오늘 밤 이 땅의 모든 이들 꿈 속에 나타나 노래를 불러다오.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에게도, 지진 피해로 고통 받는 네팔의 사람들에게도, 자식 잃고 피눈물 흘리는 부모들에게도, 그리고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너의 노래를 들려다오.

너의 후손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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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지 않겠다 창비청소년문학 15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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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서연 아빠랑 도장 찍고 오는 거야?"
"......"
"에미가 묻잖아, 이년아!"
"이러다 서연이 깨겠다. 승애도 속 시끄럽겠지만 네 에미 생각해서 얘기 좀 하자꾸나."
"네, 할머니."
엄마가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 안주도 없이 한 잔을 따라 마신다. 그 모습을 보고 할머니가 말 없이 밑반찬 몇 가지를 차려 놓으신 후 서연이 방으로 들어가신다. 나도 대충 옷을 갈아 입고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단숨에 들이켰다. 하루 종일 어찌나 후덥지근하던지, 이제야 가슴 속으로 시원한 바람 한 줄기 불어온다.
"그러게 엄마가 말릴 때, 내 말 들었으면 됐잖아. 꽃 같은 네가 풀 같이 살까 봐, 나처럼은 안 살았으면 했는데..."
엄마의 소주 잔 위로 굵은 눈물 방울이 떨어져 내린다.
"열아홉 살짜리 애가 애를 낳았으니, 남들 다 가는 대학도 못 가고 고등학교 중퇴하고 십 년을 건용이만 바라보며 서연이 낳아 여태 키웠는데..."
엄마가 소주 잔을 연거푸 들이킨다.
"건용이 그 놈이 서울에서 대학 다니면서 여자 문제로 너 속 썩일 때, 그 때, 알아봤어야 해. 군대 갔다 와서 취업 준비한다고 요 몇 년 속 안 썩이나 했더니, 이제 취업해서 자리 잡고 너랑 서연이 데리고 잘 살 줄 알았는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꽃 같은 내 딸 데려다 잡초를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딴살림을 차려? 아이고, 하늘도 무심하시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승애 너 낳고 열심히 키운 죄 밖에 없는데, 내가 이런 꼴을 보려고. 아이고."
엄마는 이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감정이 격해져 흐느끼기 시작한다.
"엄마 나 아직 꽃이야. 나 이제 겨우 스물 여덟이라고. 서연이도 이제 열 살이면 세상 물정 다 알 나이고. 우리 모녀 이제부터 시작하면 돼. 그 동안 엄마가 할머니 모시고 우리까지 건사하느라 고생한 거 다 알아. 이제 내가 할게. 나 할 수 있어. 엄마처럼 살진 않을 거야. 그러려고 이혼한 거야. 엄마는 평생 돌아오지 않을 아빠 바라보며 살았지만 난 아냐. 맘 떠난 서연 아빠 붙잡고 평생 못 살아. 누가 알아? 살다 보면 나 좋다는 사람 만날 지..."
"퍽이나! 혹 딸린 네 년 누가 좋다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엄마는 내 말에 적이 안심이 되나 보다. 눈물을 훔치며 엄마가 소주 한 잔을 비우고 김치 한 쪽을 먹는다.
"검정 고시 끝나고 공무원 시험 본다고 엄마가 서연이에 내 뒷바라지까지 해 준 거 이제 다 갚을게. 이제 혼자 깡 소주도 그만 마시고, 술 마시고 싶으면 나랑 좋은 데 가서 같이 마셔요. 내가 돈 벌면 제일 먼저 우리 엄마 시집부터 보내 줄게."
"미친 년."
엄마는 눈을 흘기면서도 입꼬리에 미소가 번진다.
이제 더는 외롭지 않을 거다. 이제 더는 외로움에 치를 떨며 텅 빈 가슴 부여 잡고 새하얗게 밤을 지새우지도,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술잔을 비우지도 않을 거다. 한창 활짝 펴야 할 꽃 송이를 박제 삼아 벽에 걸어 두고 먼지만 쌓인 채 놓아 두는 짓은 이제 더는 하지 않겠다. 시들어도 꽃은 꽃이다. 시들 때 시들더라도 가시 바짝 세우고 향기 잃지 않으며 살리라.
어느 새 엄마가 할미꽃 마냥 내 어깨에 기댄 채 고개 숙여 졸고 있다. 어디서 습한 바람에 꽃냄새가 실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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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 우리시대의 지성 5-016 (구) 문지 스펙트럼 16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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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을 읽지 않을 권리

2. 건너뛰며 읽을 권리

3.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4. 책을 다시 읽을 권리

5.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6. 보바리즘(상상과 소설 속으로 도피하는 경향)을 누릴 권리

7. 아무데서나 읽을 권리

8.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9. 소리 내서 읽을 권리

10. 읽고 나서 아무 말도 안 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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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지음, 마이클 매커디 판화, 김경온 옮김 / 두레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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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풍요로웠던 자연이 어떻게 황폐한 사막이 되어 갔는지를 보여 주는 환경 그림책 『대머리 사막』(박경진 글 · 그림, 도깨비)인데요, 중국을 여행하고 온 작가가 사막화의 문제점을 몸소 체험하고 아이들에게 자연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 위해 지었다는군요.


사람들이 하나둘 몰려들기 전에는 푸른 들판과 울창한 나무숲과 맑은 시냇물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와 길을 내고 집을 짓고, 말과 들소들을 잡아들여 닥치는 대로 사냥도 하면서 많은 것들이 사라져 갔습니다.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고 땅이 점점 메말라 가자 사람들은 메마른 땅을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메마른 땅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모래사막으로 변했습니다. 낮이면 따가운 땡볕이 이글거리고, 밤이면 차가운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대머리사막으로.

먼 훗날 푸른 들판과 울창한 나무숲과 맑은 시냇물이 되살아나는 날, 그날이 오면 모두들 다시 돌아와 줄까요?


이 책을 읽고 아이에게 『나무를 심은 사람』(장 지오노 지음,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김화영 옮김, 민음사)을 소개해 줬습니다.

대머리사막처럼 폐허가 되어 버려진 마을에 한 양치기 노인이 살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엘제아르 부피에. 그는 그곳에서 나무를 심습니다.

인간들의 이기심과 탐욕으로 파괴된 자연이 한 인간의 집념 어린 노력에 의해 울창한 숲으로 변해가는 이야기를 통해 아이가 절망이 아닌 희망을, 인간의 어두운 측면보다는 꿈을 가진 인간의 위대함을 보기를 바랐습니다.


장 지오노가 탄생시킨 가공의 인물, 엘제아르 부피에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현실 속의 엘제아르 부피에 같은 우체부 슈발이 생각나서 『꿈의 궁전을 만든 우체부 슈발』(글 오카야 코지, 그림 야마네 히데노부, 진선출판사)을 빌려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쯤 전에 프랑스의 오트리브라는 작은 마을에 페르디낭 슈발이라는 우체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차도 오토바이도 없었던 시대에 혼자 돌아다니며 우편물을 배달하던 슈발은 매일 같은 경치만 보며 걷는 것이 지루해서 공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공상’이냐구요? 그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이상한 궁전이나 성채, 탑, 동굴, 정원 등을 상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편 배달을 하던 슈발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돌의 모양이 너무도 재미있어서 그는 돌을 가지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렇게 모으기 시작한 돌이 마침내 마당을 꽉 채웠습니다.

돌멩이를 모아 궁전을 짓겠다는 슈발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미쳤다고 손가락질했습니다. 그러나 슈발은 개의치 않고 궁전을 짓기 시작합니다. 건물을 짓기 시작해서 33년이 지난 1912년, 슈발이 76세가 되는 해에 궁전은 완성되었습니다.

그 후 슈발은 8년에 걸쳐 자신의 무덤을 짓기 시작합니다. 1922년, 86세의 나이에 완성이 된 이 무덤에 슈발은 2년 뒤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 후 아내와 딸도 이 무덤에 함께 묻혔습니다.

1969년, 당시의 문화 장관이던 앙드레 말로는 슈발이 지은 꿈의 궁전을 높이 평가해서 그것을 문화재로 지정했고, 지금까지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슈발의 궁전을 찾고 있답니다.


약 10여 년 전부터 매일 아침 이메일을 통해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받아 보고 있습니다. 며칠 전 받아 본 아침편지에는 “당신이 ‘예술작품’이다”라는 제목의 글귀를 소개받았습니다.


당신이 '예술작품'이다

예술 작품이
시나 그림, 책이나 건축물처럼 반드시
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당신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들 생각을 하자.
우선 당신에겐 자기 자신이 있고, 자신을 가꾸어갈
얼마나 될지 모를 시간이 있다. 미래 당신의
모습을 우선 능력껏 이루고, 그다음
솔직한 자기평가를 거친 뒤
진정한 자부심을 느껴라.

- 홍선영의 『무엇이 탁월한 삶인가』 중에서 -

엘제아르 부피에와 페르디낭 슈발을 보며 한 인간이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인간의 삶 전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될 수도 있음을 실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엄마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나도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살다 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는 또 하나의 꿈을 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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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책날개를 달아 주자
김은하 지음 / 살림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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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이 좋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어서면 마냥 기분이 좋아진다. 학창 시절 막연히 도서관 사서나 서점 주인을 꿈꿨을 만큼…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마치 내가 책벌레여서 책을 많이 읽은 것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굳이 핑계를 찾자면 학창 시절엔 방과 후에도 학교에 남아 밤 10시까지 야간 자율 학습이란 이름으로 꼬박 3년을 학교에 붙잡혀 있느라 책 읽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땡땡이 한 번 안 치고 공부를 했는데도 성적이 신통치 않았던 걸 보면 책을 읽고 나서도 큰 변화가 없는 나 자신이 수긍이 간다.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만 있다면 수능 시험을 막 치르고 난 다음 날로 돌아가고 싶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좀 더 일찍 책의 세계에 눈 떠 보고 싶다. 억압(?) 당한 학창 시절 덕에 대학 4년을 놀아도 너무 놀았기에…


올해로 내 나이 마흔, 많은 이들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있을 나이에 나는 무엇 하나 딱히 잘하는 게 없다. 나름 성실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늘 제자리 걸음만 한 것 같다. 좀 더 일찍 꿈을 꾸고 인생의 방향을 정해 매진했어야 하는데 미치도록 이루고 싶은 꿈이 없다는 것이 나를 늘 제자리 걸음만 시킨 것 같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 닥치는 대로 이것 저것 읽어 나가다가 독서법 관련 책들을 접하면서 책 읽기에 대한 절실함마저 느껴갔다. 그리고 내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책을 읽지 않아서인 것 같았다. 성공하려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조급증마저 생겨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꾸준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많은 책을 읽은 것도, 한 권을 깊이 있게 여러 번 정독을 한 것도 아니지만, 책을 통해 나는 시야를 넓혀가고 있고, 깨달음도 얻기 시작했으며, 변화를 꿈꾸고 있다. 이러한 나의 생각 때문에 아이를 낳으면 꼭 책을 가까이 하고 책을 통해 배움을 얻고 꿈을 꾸는 아이로 키워야겠다 다짐을 했다. 그리고 그 연장선 상에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처음 도서관에서 이 책의 제목과 목차만 언뜻 보니 아이에게 좋은 책을 골라 읽히는 것에 대한 노하우가 듬뿍 담긴 것 같아 선뜻 빌려 왔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읽어갈수록 책에 대해 품었던 나의 저급한 욕심만이 떠올라 내내 부끄러웠다.


나는 그 동안 책을 읽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실제로 내가 읽었던 많은 독서법 관련 책들에서, 우리 사회 성공한 많은 저명 인사들의 책 속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책을 읽으라는 조언을 수 십 번도 더 들은 것 같다. 게다가 수 많은 육아서에도 아이에게 책을 읽히는 것의 중요성과 그 효과에 대해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되풀이 해 듣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책만 읽히면 공부도 잘하고 인생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또 다른 욕망을 품기 시작했다. 어린이 도서관을 열심히 드나들었고 책도 열심히 빌려왔다. 매일 아이에게 많은 책들을 목이 아프도록 읽어주기까지 한다. 그런데 나의 이런 열의가 오히려 아이를 지치게 하는 건지, 아이는 그럴수록 엄마에게 책을 읽어 달라 하지 않는다. 엄마가 빌려 온 다양한 주제와 훌륭한 작가의 그림책 보다는 집에 있는 지식 관련 그림책들만 되풀이 해 읽곤 한다. 내가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저자는 사회학을 공부했고 여전히 공부중인 엄마이다. 자식을 낳아 기르고 있는 엄마라면 누구나 한번쯤 공감하듯, 저자 역시 ‘어린이의 눈’ 이라는 또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고, 사회학도답게 어린이와 책, 그리고 그들의 삶의 장인 사회를 연결시켜 아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책보다는 책을 읽는 어린이의 삶의 질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학 시절 빈곤층에 대한 책을 읽고 관련 공부를 한 덕에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꽤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저자가 막상 도시 빈민층 연구 관련 사회 조사를 나갔다가 실제 빈민층의 삶을 보고 충격을 받은 후 세상의 참모습을 보게 되었다며 들려 준 이야기에서 책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임을, 책만으로는 부족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까지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었다. 하지만 사회 조사를 통해 배운 것에 비하면 정말 하찮은 것이다. 책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나를 성숙시켰더라도 그 때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직도 빈 껍데기 지식을 부여잡고 있을 것이다.(중략)


아이들이 걱정스럽다. 우리가 자랄 때는 한 동네에 부잣집과 가난한 집이 섞여 살았다. 아니 몇 집을 빼고는 고만고만하게 다 같이 못 살았다. 지금은 우리 자랄 때와는 사뭇 다르다. 달동네와 고급 주택가는 멀리 떨어져 있고 거기서 자라는 아이들은 서로 만날 기회도 없다.(중략)


TV를 보고 전화를 걸어 천 원어치 적선을 하고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야.” 흡족해 하면 어쩌나? 지금처럼 끼리끼리 모여 자라다가 정치인이 된 상류층 자녀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제대로 된 정책을 세울 수 있을지. 아이들이 자라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보다 더 반목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 우리 아이들이 어디서 갈등의 실마리를 풀 수 있을까?


책상 앞에서 공부만 해도 사회 지도층이 될 수 있는 현실이 오늘의 난국을 초래하는 데 한몫 거들었다고 생각한다.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려면 책만으로는 부족하다. 수학, 영어로 인생 공부가 될 리 없다. 그래서 나는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중〮고등학교와 대학의 교과 과정에 봉사 활동을 필수 과목으로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꽃동네 이야기』와 『골목길의 아이들』을 이해하려면 주인공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만나고 비비며 살아 봐야 한다. 서로에 대한 염려와 이해로 가슴 한 구석이 저려 온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상의 독후감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어른들의 몫이다."(본문 발췌)


지금까지 읽었던 수 많은 책에서, 저자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책을 읽는 것의 중요함과 그 필요성에 대해 단순히 성공할 수 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그렇게 받아들였을 뿐이다. 아니,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 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저자들은 분명히 말했지만, 그 성공의 의미를 내가 물질적인 것과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만 국한시켜 생각했을 뿐이다. 육아서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의 효용성에 대해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받아들였을 뿐이다.


열 권이 넘는 책을 빌려와서 읽기도 전에 질리도록 쌓아 놓고, 아이도 다 아는 글자 읽어 주기에 급급한 나머지 아이에게 적절한 반응도 못해 주고, 미술관 나들이 한 번 안 하면서 예술가의 멋진 작품이 매 페이지마다 펼쳐져 있는 그림책을 보면서 그림은 눈여겨 보지도 않고, 나는 이렇게 목이 터져라 책을 읽어 주는데 너는 왜 엄마 마음도 몰라 주냐는 야속한 마음에 아이와의 교감은 뒷전인 엄마와의 책 읽기가 점점 재미없어지는데는 나의 저급한 욕심 탓이다.


입으로는 돈이 다가 아니라고,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라고 앵무새처럼 떠들어 대지만, 깊은 성찰을 통한 확고한 철학도 신념도 없다 보니 결국엔 눈에 보이는 것만 좇게 되나 보다. 사회학을 공부하는 저자가 그저 학문적 연구에 그치지 않고 세상이 지금보다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나의 책 읽기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책 읽기에 대해 고민해 보는 좋은 계기였다.


인쇄된 활자만 읽어 대는 책 읽기는 이제 그만 해야겠다. 읽고 나서 한 번쯤 생각해 보고 잊어버리는 책 읽기도 이제 그만 두어야겠다. 읽고 생각하고 느꼈다면 행동하는 책 읽기, 책을 통한 간접 경험도 좋지만, 몸으로 부딪혀 깨닫는 ‘삶’이라는 책을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


내 인생의 책 읽기만 잘해도 우리 아이 책 날개는 저절로 달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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