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 13년 연속 와튼스쿨 최고 인기 강의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지음, 김태훈 옮김 / 8.0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남편이 회사에서 받았다며 책을 한 권 가져 왔다. 제목을 보자마자 그렇고 그런 협상 관련 책이 또 나왔나보다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도 남편과 같은 회사를 다녔기에 협상 관련 책과 교육을 익히 접해 왔던 터다. 딱히 업무가 협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는 않았지만 사람 사는 일에 협상이 필요치 않은 순간은 없기에, 또한 직원 교육에도 그 때 그 때의 트렌드가 있어서 한 동안 전 직원이 협상 관련 교육을 받고 책도 몇 권 읽었지만 늘 그 때뿐이었고, 딱히 기억에 남는 협상 스킬도 없었다. 그 때 읽었던 책이 '협상의 전략', '변호사처럼 설득하라', '설득의 심리학' 등등 이었던 것 같다. 제목에서도 확 티가 나듯이 협상의 키워드가 상대를 내 뜻대로 설득하는 것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 책은 제목이 좀 달랐다.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라니... 게다가 부제는 '13년 연속 와튼 스쿨 최고의 인기 강의(왜 세계 최고 MBA에서 가장 비싼 강의가 될 수밖에 없는가?)'였다. 제목이 좀 끌렸다. 이 책을 다 읽고나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 같은 의심이 마구 들었지만 그래도 읽어 보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이 아니라서 읽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끝까지 다 읽고 난 직후 재밌는 일이 하나 생겼다.


마침, 이 책을 다 읽어갈 즈음, 나는 데스크탑 PC 한 대와 작은 노트북 한 대를 샀다. 공교롭게도 같은 회사의 제품이었고, 며칠의 차이를 두고 같은 곳에서 구입하게 됐다. 저자는 협상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백화점에서조차도 항상 물건 값을 흥정하라고 말했지만 거기까진 엄두가 안 나도 동네 양판점의 전자 제품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 협상을 시도했고 나름 만족스런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 해도 시도했을 테고, 결과 또한 책으로부터 얻은 스킬로 인한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인 듯 싶다.


재미있는 일은 그 이후에 벌어졌다. 데스크탑 PC를 구입하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CD-ROM 드라이브의 덮개 부분이 망가져버린 것이다. 아이가 건드린 것도 아니고 남편이 조심스럽게 제대로 작동하는지 열어 보려다 생긴 일이었다. 우리가 구입한 PC는 매장 진열 상품이었지만 약 3개월 정도 진열했던 상품이고 전원조차 연결한 적 없는 새 제품이라는 말에 저렴하게 구입했던 것인데, 망가지고 보니 황당했고 기분이 나빴다. 우리는 일단 판매 직원에게 연락을 했다. 판매 직원은 1년간은 무상 수리가 가능하니 진열 상품을 구입했다는 말은 하지 말고 제조 회사에 A/S를 신청하라고 조언해 줬다. 나는 직원의 말대로 A/S를 신청했고 바로 수리 기사가 집에 왔다. 그런데 수리 기사는 제조 과정에서 생긴 불량이 아닌 취급 부주의로 생긴 파손이라며 무상 수리를 거부했다. 수리 기사의 말은 마치 우리를 비난하는 것처럼 들렸고 남편은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우선 남편에게 수리 기사와 말다툼을 벌이지 않도록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침착하게 매장 판매 직원과 통화를 했고, 판매 직원은 수리 기사와 다시 통화를 한 후, 내게 매장 측에서 수리비를 부담할 테니 수리를 받으라고 전해 왔다. 나는 수리 기사에게 수리를 요청했고 수리 기사는 지금 당장은 부품이 없으니 며칠 후 다시 와서 수리를 하겠다고 했다. 나는 수리 기사에게 수리비가 정확히 얼마가 나오는지 물어 보았다. 수리 기사는 출장비와, 수리비, 재료비 등등 합쳐서 약 4만원이 나올 거라고 얘기해 주었다. 나는 다시 수리 기사에게 내가 처한 상황을 진심을 담아 전달해 보기로 했다. 우선 나는 수리비를 부담하지 않게 되어 괜찮지만, 수리 기사도 알다시피 내가 산 PC는 가장 저렴한 제품인데 거기서 다시 수리비를 판매 직원에게 부담하게 하는 것은 내 마음이 편치 않다. 매장측에서 부담하는 것이라면 그래도 좀 마음이 덜 무겁지만 혹여 판매 직원이 자비로 부담하는 것이라면 더욱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다. 수리비를 청구하더라도 가급적 최소한의 비용만 청구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나의 솔직한 얘기에 수리 기사는 판매 직원의 연락처를 물어 봤고 추후 통화를 해 보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수리 기사가 가방을 정리하고 떠나려 할 때 나는 마침 점심 시간이니 점심 식사 후 드시라며 캔 커피를 하나 건넸다. 수리 기사는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고 인사하고 다음에 올 때 제품 사용과 관련하여 궁금한 게 있으면 적어뒀다가 물어 보면 알려주겠다는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리고 며칠 후 수리 기사가 다시 왔고 제품은 완벽하게 수리가 됐다. 수리비는 어떻게 되었냐고?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그리고 덤으로 새로 산 노트북과 PC 사용에 유용한 많은 정보를 한아름 선사해 주고 떠났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해도, 그리고 내가 수리 기사와 협상이라는 걸 하지 않았다고 해도, 수리비는 청구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건 나는 이 책을 읽고 그 결과로 협상이라는 걸 시도해 보려는 용기를 냈고, 내가 원하는 것 이상의 결과를 얻어 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리고 다 읽고 난 지금도 나는 이 책 한 권으로 나의 협상 스킬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 책의 내용을 완벽히 마스터하고자 한다면,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의 강의를 직접 듣고, 모의 협상 스킬 훈련 워크샵에 참여하여 조언을 받고, 또한 실생활에서도 항상 협상 전략을 염두에 두고 생활화하라고 권하고 싶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읽으나 마나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저자는 책에서 원하는 것을 얻는 열두 가지 협상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1. 목표에 집중하라.

2. 상대의 머릿속 그림을 그려라.

3. 감정에 신경 써라.

4. 모든 상황은 제각기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라.

5. 점진적으로 접근하라.

6. 가치가 다른 대상을 교환하라.

7. 상대방이 따르는 표준을 활용하라.

8. 절대 거짓말을 하지 마라.

9. 의사소통에 만전을 기하라.

10. 숨겨진 걸림돌을 찾아라.

11. 차이를 인정하라.

12. 협상에 필요한 모든 것을 목록으로 만들어라.

이 외에도 세부적인 협상 스킬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협상 전략 열두 가지는 위와 같다. 그러나 책 한 권을 읽고 위의 열두 가지 협상 전략을 활용한다는 것은 웬만한 실천형 독서가가 아니라면 어렵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 협상 전략에 주목하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목표에 집중하라'와 '감정에 신경 써라'였다.


대개 협상을 하다 보면 목표를 잊고 부수적인 것들에 쓸데 없는 시간과 정열을 쏟아 붓기가 쉽다. 또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이성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대응해야만 목표에 집중할 수가 있다. 또한 협상이라는 건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하는 일에 감정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 '나'의 감정이 아닌 '상대방'의 감정에 신경쓰고 적절히 상대방에게 감정적 지불을 하면 상대 역시 사람인지라 협상이 수월하게 진행 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조언이었다.


이 외에도 절대 거짓말을 하지 말 것과, 협상은 제로섬 게임이 아닌 상대와 나 모두 윈윈할 수 있어야 하며, 점진적으로 접근할 것과, 상대방에게 영향을 끼치는 제3자를 주목하고, 가치가 다른 대상을 교환할 것 등은 꼭 협상이 아니더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여러 갈등 관계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는 협상법이기에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 내 삶을 풍요롭게 해 줄 것 같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협상'은 어느 한 쪽으로 반드시 기울어져야만 하는 '저울' 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이득을 보면 상대는 반드시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처럼 말이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협상'은 가치가 다른 대상을 교환함으로써 서로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균형잡힌 '시소'와 같다. 몸무게가 크게 차이 나는 나와 내 아이도 사이 좋게 탈 수 있는 시소처럼 말이다. 내가 다른 어떤 책 보다도 저자의 책을 높이 사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나의 시각을 변화시켜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협상이라는 것을 기계적이고 논리적인 학문으로 다루지 않고, 이성과 감정이 공존하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오가는,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그 어떤 것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보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원하는 것을 평화적으로 얻기를, 특히 전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이, 세계 각지의 많은 분쟁 지역에 있는 지도자들이, 이 책을 읽고 큰 깨달음을 얻기를 진심으로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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