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5
이권우 지음 / 그린비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벌레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이렇게 되리라
나는 읽는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책벌레의 영혼을 요약하면 이렇게 되리라
나는 구성되어 있다. 지금껏 읽어 온 책으로.

-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이권우 지음, 그린비에서 발췌


이 책은 도서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어느 책벌레의 책읽기에 관한 책이다.
책의 구성은 '왜 읽어야 하는가'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답변을 내놓았는데 그중에서 나는 다음의 글귀가 나의 책 읽는 이유인 것 같아 발췌해 본다.


"무엇이 우리를 책 읽게 만들까.
나는 간절함에서 비롯된다고 믿고 있다.
지금 이곳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기.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기.
끊임없이 성찰하여 참 사람 되기.
그렇다.
변화와 성장에 대한 열망이 있기에 책을 읽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죽도록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나는 이 책에서 다음의 세 가지에 주목했다.
첫째는 독서법이다.
저자는 천천히, 깊이, 겹쳐 읽기를 권하고 있다.
천천히, 느리게 읽기는 생각하고 상상하고 비판하며 읽는 것을 말한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속독법을 배우고 싶었던 나의 책 읽기를 반성하게 하는 대목이다.


깊이 읽기는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어내는 전작 읽기나,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책을 폭넓게 읽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의 예를 들며 3년이라는 시한을 정해 전작 읽기를 해 보라고 권하고 있다.
어느 책에선가 경영의 대가인 피터 드러커 역시 한 가지 주제를 정해 3~4년 동안 깊이있게 공부한 후 새로운 주제를 정해 또 3~4년씩 60년 넘게 공부해 오고 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었는데, 알고 있지만 말고 실천을 해 봐야겠다.
사실 독서법 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전작주의에 대한 소개는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라 나도 한 번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야인 역사, 그 중에서도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좋아해서 전작 읽기를 도전 중에 있다.
국내에 번역, 출판된 책들 중 서너권을 빼고는 거의 다 읽고 나니 확실히 작가의 세계관과 그녀가 소개한 고대 로마와 중세 지중해 세계의 역사에 대해 나름 깊이가 생긴 듯도 하다.


겹쳐 읽기는 같은 주제를 다루었는데 주장과 근거가 다른 책을 함께 읽어 보는 것이다.
저자는 서로에 비판적이거나 비슷한 주제에 대해 상반되는 견해를 펼치는 책들끼리의 싸움이라고 말하고 있다.
천천히 읽으면서 깊이 있게, 겹쳐 읽으려면 도대체 이 많은 책들을 언제 다 읽을 수 있을까 싶어 한숨부터 나온다.
그러기에 죽는 날까지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나 보다.


두 번째 키워드는 독후감 쓰기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부모로부터 '책과 영화는 동격'이라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고 아들도 똑같이 가르쳤다고 한다.
영화 감독 프랑소와 트뤼포는 "영화를 사랑하는 첫번째 단계는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다. 두번째 단계는 영화에 관한 평을 쓰는 것이고, 세번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 이상은 없다." 라고 말했다.
즉, 책을 사랑한다면 반복해서 읽고, 독후감을 쓰고, 나아가서는 직접 책을 써 봐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읽어야 할 책이 쌓여 있는데 책을 두 번 이상 읽는다는 게 쉽지 않아 언젠가부터 손바닥만한 작은 노트에 한 두 페이지 정도 독후감 비슷한 것을 쓰고 있다.
어떤 건 내용 요약 정도, 어떤 건 빌려온 책이라 밑줄 그을 수 없어 옮겨 적은 내용, 어떤 건 나만의 느낌 등 다양하게 끄적거리고 있는데, 누구에게 보여줄 것도 아니면서 쓰는 데 꽤 애를 먹고 있어 가끔은 독후감 쓰기가 귀찮아 책읽기를 더디하기도 한다.
그래도 독후감이란 걸 쓰려면 읽을 때도 좀 더 집중해서 읽게 되고, 읽고 나서도 한 번더 목차부터 쭉 훑어 보며 되새김질하는 과정을 갖게 되고, 단순히 책만 읽어 제끼는 게 아니라 뭔가 내 속에 알맹이가 남는 것 같은 느낌도 갖게 된다.
저자는 독후감 쓰기야말로 자신과 저자의 내면적 만남이요, 읽는 이를 책의 주인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나의 독후감 쓰기가 헛되지는 않았다는 위로를 받으며 지난 번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을 읽고 '읽고 나서 아무 말도 안 할 권리'를 행사하느라 독후감을 쓰지 않은 것에 대해 반성해 본다.
그러나 굳이 변명해 본다면 책읽기가 단순히 읽는 것으로 그친다면 이는 변화와 성장의 독서가 아니라 단순한 즐길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뒤늦은 깨달음을 얻어가고 있는 중이기에 읽고 실천하는 독서를 실행중이라면 나름 변명이 될까?^^
그래서 이 독후감 역시 저자가 소개한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사이토 다카시 지음, 황혜숙 옮김, 루비박스, 2005)"이라는 책에서 소개한 방법(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세 개의 열쇳말로 압축, 정리해 보기)으로 쓰고 있다.


마지막 열쇳말은 창조하는 독자 되기다.
남편도 나도 학창 시절엔 기회가 많지 않아 별 어려움을 못 느낀 것 같은데, 막상 회사에 들어가 보니 남 앞에 서서 말하는 것의 어려움이 단순한 어려움을 넘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연차가 쌓이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그런 자리는 더 많아졌고 여전히 회사를 다니는 남편은 아이만은 이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해서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꼭 스피치 학원에 보내라고 벌써부터 신신당부를 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생각이 달라진다.
우리가 글을 못 쓰고 발표나 토론을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는 게 없어서란다.
뿌리 깊은 나무를 키우기보다 당장 열매 많이 맺는 나무로 키우려는 욕심을 버리고 읽기로 돌아가란다.


표현 능력을 키우기 위해 저자는 쓰기 위한 읽기 교육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있다.
읽고 토론하고 쓰는 과정을 아우르기 위해서는 하나의 주제를 선정해 문학, 인문, 자연,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골라내서 읽고 토론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글을 쓰고 쓰여진 글을 첨삭하고 그 결과를 공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교육 과정 속에서 가능할지, 또한 가정에서조차 부모의 능력 범위를 벗어난 교육 내용인 듯 하여 한숨부터 나오지만 분명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임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말한다.


"왜 읽을까?
결국에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표현능력은 어떻게 키워지는가.
사고능력에 맞닿아 있지 않다면, 지속가능한 표현능력이 배양되지 않는 법이다.
그렇다면 가르치는 벽을 허물어 가로지르도록 해야 하고,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왜 가르치는가?
가르치는 사람이 품고 있는 가치관과 세계관을 전달하기 위해서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오늘 우리 사회에 다양하게 펼쳐지는 가치관과 세계관을 고루 알아보게 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해 그 무엇을 선택하도록 돕는 일이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가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선택할 때 논리적인 검토를 거치게 하는 것이고, 그 선택이 서로 다르더라도 상대방을 존중하게 하는 것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꼭 전달해야 하는 앞선 세대의 가치나 경험은 어떻게 전달해야 하느냐고?
그 가치관에 따라 제대로 살면 다음 세대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할 리 없다.
그래서 가르치는 게 어려운 법이다.
알고 있어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걸맞게 살아갈 때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소비하는 독자에서 창조하는 독자로,
쓰기 위한 읽기 교육이 필요하다면,
나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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