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슐라와 그림책 이야기
도로시 버틀러 지음, 김중철 옮김 / 보림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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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71년 12월 18일 새벽 2시 40분, 미국의 어느 한 가정에 쿠슐라 요먼이라는 아이가 태어났다. 태어날 당시 드러난 결함은 새끼 손가락이 하나씩 더 달렸다는 것뿐이었지만, 태어난 직후부터 아이는 뇌혈종으로 인한 심한 황달에 시달렸으며, 먹는 것도 심지어 숨쉬기조차 힘들어했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의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아이는 시각과 청각도 의심스러웠으며 생후 2개월부터는 이따금 발작성 경련을 일으켰고, 심장에 난 조그만 구멍으로 인한 천식과 습진성 발진, 신장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팔까지 제대로 쓰지 못하는 상태였다. 의료진들은 드러내 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정신지체를 의심했다.


당시 쿠슐라의 엄마는 스무 살, 아빠는 스물한 살이었다. 어린 대학생 부부는 도서관에서 장애아에 관한 책을 빌려와 다가올 일에 준비를 했다. 정상아들과는 달리 쿠슐라는 밤낮으로 깨어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밤낮으로 울어대는 아이를 품에 안고 기나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엄마는 생후 4개월부터 쿠슐라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기 시작했다. 다행히 엄마는 낮이든 밤이든 늘 책을 읽어 주는 가정에서 자랐으며, 남편은 물론, 친정 식구들 및 많은 친척들의 도움으로 버텨나갈 수 있었다.


이 책은 교육학을 전공한 쿠슐라의 외할머니인 도로시 버틀러가 유전자 이상으로 인한 발달 장애가 있는 외손녀 쿠슐라에게 부모의 책 읽어주기가 아이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태어나서 3년 9개월까지 추적 관찰한 내용을 담고 있다. 두 돌 무렵 아이가 정신지체라는 진단을 의료진들로부터 받았으나 부모의 끈질긴 노력과 사랑이 아이를 어느 정도까지 회복시킬 수 있는지, 아이를 둘러싼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환경 중에서 부모의 책 읽어 주기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정상아든 장애아든 자녀를 둔 부모라면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쿠슐라가 책 속에서 많은 친구를 만났다는 것이다. 쿠슐라가 고통과 좌절에 빠져 있을 때 책 속의 등장인물과 따뜻함과 멋진 색채가 쿠슐라 옆에 있었다. 혼자 힘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는 쿠슐라에게 세상을 보여 주려고 애쓰고, 쿠슐라를 사랑했던 어른들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쿠슐라만이 아는 어둡고 외로운 곳으로 함께 가 준 것은 책 속 등장인물들뿐이었는지도 모른다.


1975년 8월 18일, 쿠슐라가 3년 8개월이 되었을 때 한 말에는 우리가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잘 드러나 있다. 그때 쿠슐라는 두 팔로 인형을 안고 책이 산더미같이 쌓인 소파 옆에 앉아 있었다. "이제 루비 루에게 책을 읽어 줘야 해. 그 애는 지쳤고 슬프거든. 루비 루를 품에 안고, 우유를 먹이고, 책을 읽어 주어야 해."

이러한 처방은 어떤 아이에게나 필요하다. 장애가 있는 아이든 없는 아이든.

- 쿠슐라와 그림책 이야기 맺음말에서 발췌


지금 쿠슐라는 어떻게 지낼까?

쿠슐라는 현실 감각이 있는 아이다. 삶이 험난하고 고통스럽다는 걸 알고, 그래서 때때로 절망에 빠진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삶이 멋지고 가치 있다는 것도 알고, 어차피 살아야 한다면 삶을 잘 꾸려 가야 한다는 것도 안다. 쿠슐라 요먼, 내 손녀딸, 강한 정신과 유머 감각을 지닌 이 아이는 지금도 아주 잘 살아가고 있다.

- 쿠슐라와 그림책 이야기 덧붙이는 말에서 발췌


새해가 밝았고 하나 밖에 없는 내 소중한 아들은 이제 8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쿠슐라와 그녀의 부모와 비교하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하지만 늦었다 싶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을 믿어보기로 한다. 내 아이에게도 지치고 슬플 때, 엄마 아빠가 함께 해 줄 수 없는 외로운 순간에, 아이가 읽은 그림 책 속의 피터가, 로사가, 삼신할미가, 리디아가, 돼지 삼형제가 언제나 내 아이와 함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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