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소크라테스이나 현실은 돼지.

배고픈 건 아니나 배가 부른 것도 아닌 어정쩡한 현실.

소크라테스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배고프지는 않은 인간이고 싶다.

카프카는 평생을 아버지에 대항해서 글을 써 왔다고 한다.

자신을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아버지를 만났다면 지금의 카프카는 없었을까?

카프카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순응하며 살았다면 당대엔 풍족하고 편안한 삶을 살았겠지만 사후에 이름을 남기지는 못했으리라.

우월한 유전자에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다고 모두 훌륭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니까 결국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이용하고 극복해내느냐의 문제겠지.

그런데도 자꾸만 환경 탓을, 부족한 능력 탓을 하고 싶다.

정작 탓해야하는 것은 내 삶의 자세인데도 말이다.

그마저도 끈기 없고, 의지가 부족한 유전자를 탓하고 싶다.

삶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자존감은 떨어지고 배부른 돼지가 되어 시간을 수돗물처럼 콸콸 쏟아버리는 때가 있다.

불혹을 지난 나이에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꿈은 버린지 오래다.

그럼에도 죽는 날까지 어떠한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은 놓을 수가 없다.

그것마저 놓아버리면 삶이 너무 초라해지니까.

삶에서의 작은 성공, 작은 삶의 방식의 변화를 이루는 삶.

'움직이는 인간', 생동하는 인간', '정체되어 있지 않은 인간'이 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이다.

문제는 실행력이다.

로또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매일 간절히 기도하면서 정작 복권을 사지 않는 것이 문제다.

나이키에서는 Just Do It!, 불가에서는 그저 행(行)할 뿐이라고 말한다.

답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결국 나 자신이다.

카프카는 인간들은 보편적으로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봤습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안정적인 삶의 기반 아래서 걱정 없이 살기를 바라는 것이죠. 하지만 카프카는 그와 같은 안락한 삶이 인간을 그 안에만 머물게 하고 또 편안한 삶에 길들이게 하여 결국 인간을 우둔한 존재로 만든다고 경고합니다.(70~71쪽)

안락한 삶은 그것이 전부인 삶입니다. 어떠한 생기도 없이 축 늘어지다가 마는 삶입니다. 퇴보나 전진도 없고 그대로 정체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인간에 대입해 볼 때, 안락한 삶이 가지는 의미는 ‘움직이지 않는 인간‘, ‘생동하지 않는 인간‘, ‘정체되어 있는 인간‘을 말합니다. 인간이 정체되어 움직이지 않으면 비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태어나서 그저 가만히 살다가 죽는다는 것에서 삶의 큰 의미를 찾겠다는 사람이 아니라면, 내가 너무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만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고 카프카는 말하고 있습니다.(7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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