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빌리의 비참
알베르 카뮈 지음, 김진오.서정완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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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 -

[카빌리의 비참]

-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필요한 카뮈의 시선 -

꽃으로 뒤덮인 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황홀한 저녁을 배경 삼아 서 있는 그들은 고름이 가득한 눈, 가난으로 찌든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자연 풍광 속에 그들은 더욱 비참해 보였다.

카뮈가 카빌리 마을을 찾아 목도한 것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마저 보장되지 않는 비참한 군상들의 모습들이었다. 사람들은 가난하기 그지없었다. 먹을 것이 없어서 풀과 뿌리로 끼니를 때우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아이와 개는 쓰레기를 놓고 서로 싸움을 했다. 독을 지닌 뿌리를 먹고 다섯 아이가 사망.

카빌리 사람들은 그야말로 노예였다. 노예에게 자연스레 따라붙는 수식어는 노동착취. 카빌리 사람들은 12시간 노동을 하고 일당으로 6~10프랑을 받았다.

주거지라고 하는 어느 한 가정집을 들어가자 창문 없는 비좁은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바닥은 맨땅, 문쪽에 파인 도랑에는 가축의 오물과 집의 오수가 흐른다. 집안에는 어둠, 가축 냄새, 불 피운 연기로 가득했다. 잠은 어디서 자냐는 카뮈의 물음에 그 집에 살던 한 여자는 분뇨, 도랑 가까이에 있는 흙바닥을 가리켜 보인다. 각 가정의 집뿐만 아니라 마을 어디에도 배수관, 화장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응당 화장실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을 골목길에서 해결하고 있었다.

[이방인]으로 유명한 카뮈는 프랑스가 아닌,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태생이다. 카빌리는 알제리 동북부 산악지대에 위치해있다.

카뮈의 [이방인]이 나에게 매력적이었던 것은 그것이 지닌 소재와 주제도 한몫하였지만, 이 책의 해제를 쓴 최윤 소설가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백색의 문체' 때문이기도 했다. 카뮈 문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백색의 문체'는 [카빌리의 비참]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비참'을 기술하는 그의 문장에 '감정'은 최소한도로 배제되어 있다. 그래서 '비참'을 더욱더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발표 시기가 [이방인](1942년)을 앞선 [카빌리의 비참](1939년)은 카뮈가 소설로 이름을 알리기 전 잠시 몸담았던 신문기자였을 때 프랑스 일간지에 쓴 11개의 기사를 묶은 에세이집이다. 나도 모르게 내던져지는 부조리한 삶에 대한 시선은 [이방인]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형성된 카뮈의 철학적 주제였을지도 모른다.

책은 굉장히 얇다, 그러나 이 책이 지닌 무게는 그 어느 책보다 한없이 무겁다. 이렇게 글로 접하는 남의 '비참'을 내가 진정 이해하고 있는 건지, 공감하고 있는 건지 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는 불편함의 과정이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이 책에 대한 글은 쉽게 써내려가지지 않았다. 더욱이 이 책을 손에서 쉽게 놓지 못한 이유는 '카빌리의 비참'이 카뮈가 이 글을 쓴 지 8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 때문이었다. 우리 주변에 '카빌리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내 책장 한켠에 서있는 이 책은 불편하다. 카뮈가 기록으로 남긴 1939년의 '비참'은 2021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말해준다.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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