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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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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를 좋아한다. 특히 근현대사는 더더욱 좋아한다. 학생 때 내 역사 교과서들은 밑줄과 필기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툭 치면 척 하고 나올 만큼 거의 모든 페이지를 외우고 다녔다. 수능 공부로 바쁜 고3 때 한국사 1급을 딴 건 순전히 내가 역덕(역사 덕후)이어서였다. 다른 모든 교과서는 바로바로 버린 지 오래지만, 고등학교 국사,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만큼은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차마 버릴 수 없는, 나의 소중한 보물이다.

근현대사에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일제강점기는 완벽히 스펙터클한 블록버스터에 가깝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늘 항상 색다른 분노에 휩싸이게 하는 대목이며 알면 알수록 더욱더 형용할 수 없는 화에 치밀어 오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시기다. 국사책에 이어 근현대사 교과서가 따로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게 여겨졌던지 모른다. 그만큼 국사책엔 한껏 요약된 채 실려 있기만 한 시절이다. (왜냐면 쓸 말이 하도 많아서 지면을 다 할애해줄 수가 없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본다.)

그 중 철도에 관한 부분은 사실 꽤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각종 이권을 침탈해갔던 일제, 그러다 결국 한국을 먹어버린 1909년의 수치. 경의선, 경부선 등을 만들어 놓은 일제를 찬양하던 사회진화론의 등장도 기억한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조선은 어떻게 발전할 수 있었을까! 라며 궤변을 늘어놓던 그들. 물론 그 시대 속 사람들의 입장에선 생각해볼 만한 이론이기도 한다만은 그 또한 결국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의 타협이 아니었던가. 철도는 그 당시 열강들에게 포기할 수 없는 노른자 같은 것이었다. 인력과 화물을 옮기기에 가장 적합한 그 시대의 최고의 교통수단이었으므로.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일본 못지 않게 한국의 이권 침탈에 열을 올렸고 그 중 철도 부설권은 눈치 싸움의 끝판왕 격이었다. 결국 일제가 대부분을 먹어버리면서 막을 내렸지만 중요한 것은 정작 그 땅에 살고 있는 한국 국민들은 손끝 하나 내밀어 보지도 못했다는 사실이다.

‘자료 3’ 철도가 지나는 지역에는 온전한 땅이 없고, 기력이 남아 있는 사람이 없으며, 열 집에 아홉 집은 텅 비었고, 천리 길에 닭과 돼지가 멸종하였다. -대한매일신보, 1906년 5월 15일자-(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중앙교육진흥연구소, 111쪽)

문자 그대로 완벽한 ‘수탈’이었다. 땅도 빼앗기고, 노동력도 빼앗기고, 돈도 빼앗겼다. 그렇다고 우리 조상들이 가만히만 있었는가. 그건 또 아니다. 한 쪽은 의병으로, 한 쪽은 노동 쟁의를 일으키며 활약했다. 전남 무안에서 암태도 소작 쟁의가 1923년에 일어나기도 했고, 1929년엔 원산 노동자 총파업이 일어나 전국적, 세계적 지지를 받았다. 농민 운동은 1930년대부터는 사회주의 운동과 결합되면서 새로운 양상을 띠기 시작했지만 일제에 의해 좌절되기 십상이었다.

‘철도원 삼대’는 이 땅에 처음 철도가 부설되던 시기부터 오늘날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이 살아가는 시기까지를 다루는 대하소설이다. 영등포 일대에서 살아가던 이씨 집안의 사람들. 그들은 철저히 소시민이다. 농민이었고, 상인이었으며,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휩쓸려 살아가던 국민이었다. 그들은 삼대째 그렇게 살아왔고 역사가 잊은 사각지대에서 투쟁하며 살아왔다. 아, 그 애환이여. 윗사람들과 열강들에 의해 나라가 찢기고 몰락해갈 때 그래도 그들은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가 미처 다 기록하지 못한 민초들의 건초더미 인생을 이토록 세밀하게 그려낼 수 있다니. 역사 공부는 이렇게 해야 한다. 한 줄로 요약된 채 수많은 죽음들이 순간의 지식으로 휘발될 공부가 아니라, 이다지도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인생들로 머리와 가슴에 새겨야 한다.

“철도는 조선 사람들의 피와 눈물로 맹글어진 거다.”

“노동 투쟁은 원래가 이씨네 피에 들어 있다. 너 혼자 호강하며 밥 먹자는 게 아니구, 노동자 모두 사람답게 살아보자 그거 아니겠냐?”

아, 우리네 소시민들은 왜 이리 끈질기고 애가 끓고 처절하며 절박한 인생들인가. 황석영은 그 인생들을 그려내는 데 몹시도 탁월하다. 그는 마치 일제강점기 때부터 지금까지 소시민들의 옆에서 살아온 사람마냥 그들의 삶을 정교하고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좋다. 좋은 소설이다. 한 사람이라도 많이, 특히 학생들이 많이 읽어 역사가 잊어버린 민초들의 삶을 계속해서 기억해나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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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스탕스
이우 지음 / 몽상가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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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데미안.

더 설명하고 말 것도 없이 데미안의 배경과 인물들을 한국으로 옮기고 한국의 사회 문화에 맞추어 창조적으로 변용해낸 소설이다. 하필 정말로 데미안을 읽고 나서 집어들어 그런지 오버랩이 안될 수가 없었다. 데미안이 늘 청소년 추천문학으로 떠 있는 게 항상 이해가 안 됐었는데 이 책을 보고 나니 청소년을 위한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솔직하게는, 너무 비현실적인 부분들이 많이 섞여서 개인적으로 흡착된 독서가 되진 못했다. 사유 세계의 성장에 대한 설명과 대화들은 어찌 넘어가도 데미안과 마찬가지로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적인 인물들이란 느낌을 많이 받았다. 차라리 고전으로 분류가 된다면 고개를 끄덕이기 쉬울 수도 있겠다. 각종 문사철의 버무림이 맛깔나게 되어 작가의 깊이에 새삼 탄복하기도 했다. 한편으론 너무 많은 것을 하나에 담아내어 좀 아쉬웠다. 담긴 요소들을 간추려 각각의 작품으로 내도 괜찮았을 것 같다. 한 권의 책인데 여러 극을 보고 나온 것 같은 피로가 있다.

요즘 세대가 쓴 글 같지 않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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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
이영채.한홍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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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한국 시민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입니다. 긴 말이 필요 없습니다. 한일관계에 대해서 피상적인 편견만 갖고 있다면, 혹은 언론과 미디어가 보여주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혹은 관심도 없고 무지하기만 하다면 반드시 가까이 해야 할 책입니다.

아베 정권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면서 경제적 제재를 가한 이후 국내에선 일본에 대해 '사지 않습니다, 가지 않습니다' 를 위시한 'NO재팬' 슬로건이 빗발쳤지요. 갈등과 분란이 가득한 국내 정치에선 보수 아닌 보수와 진보로 싸움만 팽배합니다. 오랫동안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 '토착왜구'로 불리는 정재계의 인사들, 한일 근현대사의 이면에 대해 궁금점이 많았습니다. 학교 교과서에선 짧은 한 문장으로만 설명되거나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는 게 태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관련 도서가 많은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지나치게 편향적인 서적들이 판치는 게 현실이었습니다. 지금도 10여 년 전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일본 하면 싫고, 한일전 축구 경기라도 열리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며 침을 튀기는 사람들이 대다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일본발 문화인 만화, 성인물 등에는 좋다 하며 그저 받아들입니다. 일본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한류 한류 하며 한국 아이돌 가수에 열광하며 한국으로 관광오는 일본인들이 차고 넘치는데도 역사 문제에 있어선 반한, 더 넘어서 혐한주의를 갖고 있는 세대입니다. 어째서 이런 아이러니한 한일 관계가 이루어졌는지 정말 오랫동안 궁금했습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제게 갈증을 풀어주는 단비 같은 책이었습니다.

이영채 교수와 한홍구 교수가 공동 집필한 이 책은 제가 가진 의문들에 대한 주된 답을 역사적으로, 현실적으로, 논리적으로 풀어낸 책입니다. 일본 정부의 혐한 정책은 어디에서부터 기인한 것인지, 한일 과거사의 숨겨진 이면은 무엇인지, 한국 우익과 일본 우익이 왜 이렇게 닮아 있는지, 그리고 현재 양국 관계를 어떻게 하면 풀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 세심하게 짚고 명확하게 설명과 대안을 제시합니다.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부분들에 대해 간략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 일본 정부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우익은 '일본회의' 라는 극우 정치조직의 장기적인 계획에서 이루어진 세력입니다. 이들의 기치는 일본의 보통 국가로의 회귀, 자국 중심적인 동아시아 주도권 유지, 정전 이후 점철된 역사수정주의입니다. 이로 인해 한일 간 해결되어야 할 많은 과거사 문제가 표류하고 왜곡되었습니다. 국내의 보수라고 표방하는 우익 세력은 일제강점기 이후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의 잔재입니다. 반미, 반공을 외치며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성격은 무시 못할 정도로 똑 닮아 있습니다. 해방 이후 분단, 분단 이후 근현대사를 살아내던 한국 정치의 참으로 뼈아픈 어둠입니다. 약자를 보듬지 못하고 무시하며 강자 앞에선 굴종하며 따라가려는 성향은 사회진화론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대한민국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무한경쟁 체제의 교육, 거기서부터 기인한 사회적 분위기는 일제 군국주의를 그토록 미워하던 우리가 반성해야 할 현실입니다. 조선학교, 재일조선인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 형편없이 무지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앞으로의 미래, 다가올 한반도 통일의 시대에서 국제 관계에 대한 이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가져야 할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웃 나라 일본에 대한 이해, 그들과의 시민 연대를 놓지 말아야 할 이유는 과거의 아픔을 위함이기도 하며 현재의 우리를 위함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다음 세대를 위함이기도 합니다.

한일 근대사에는 장단이 있습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습니다. 반대로 말해볼까요? 어둠이 있으면 빛도 있는 법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도 한 쪽에만 편향된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혹은 극단적인 빛, 극단적인 어둠에만 치중해 색안경을 써왔습니다. 어떤 교육도, 어떤 언론도, 어떤 정부도 한일 양국관계에 대한 균형잡힌 이해를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대두되는 사회 문제에 그저 우 하며 몰려가고 갖고 있는 편협한 배경지식에 힘입어 소리만 높여 왔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 '야스쿠니 참배' 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없는 비난만 해대고 있진 않았는가 반성해야 합니다. 좌우를 가르고 흑백 논리에만 절여져 있는 한국 사회를살아가는 시민으로서 통렬히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역사를 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왜 자꾸만 잊고 사는 것일까요. 조금만 시간을 내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고 돌아볼 수 있는데 말입니다.

이 책의 구절구절이 아이들의 교과서에 실리는 날이 언젠간 올까요. 알아야 할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저 한 줄 지식으로만 암기되고 휘발되는 오늘날의 교육 현장이 다시금 씁쓸하게 여겨집니다. 좋은 책을 소개해주신 창비 출판사와, 좋은 책을 집필해주신 저자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무쪼록 많은 이들이 읽고 많은 곳에서 곱씹어질 수 있는 책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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