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의 수호자 수호자 시리즈 1
우에하시 나호코 지음, 김옥희 옮김 / 스토리존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싸우는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이 신기했기 때문에 책을 샀고, 그런 관점에서 읽었기 때문에 <수호자>시리즈의 여성상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느낀 점을 말해볼까 한다.


여성이 주인공인 판타지란 대체로 로맨스가 뒤섞인 작품이 되기 마련이다. 그 편이 더 대중적이라고 느끼기 때문일까? 순문학이나 SF에서는 좀 덜 한 것 같은데(최근 한국에 조명된 코니 윌리스나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작품만을 본다면), 정통 판타지로 가면 갈수록 그 경향이 더 강해지는 것 같다. 물론 <왕좌의 게임>이니 <게드전기> 같이 정통 판타지라고 분류할 만하면서도 연애 요소가 압도적으로 적은 작품이 없는 건 아니지만…여성만을 주인공으로 한 판타지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겠다.


<게드전기>는 후반에 가서야 테나의 이야기를 할 뿐이고, <왕좌의 게임>은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서로 자기 분량을 다 차지하고 있다. 여성에게 나름의 지위와 역할을 맡겨 주는 작품도 여성에게 시선을 온전히 돌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수호자>시리즈는 심지어 중년(판타지에서 서른 줄은 중장년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라고 생각한다)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이다.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다시 발간된 게 신기하다….


다시 돌아가서. <수호자>시리즈의 주인공은 바르사라는 삼십 대 중반의 여성이다. 나이만으로도 바르사의 이야기는 충분히 도전적이다. 판타지(무협이나 SF, 흔히 말하는 서양식 판타지나 동양식 판타지 그 어느 장르를 끌어들여도 좋다)의 주인공이란 늙기보다는 젊어야 하고, 여성보다는 남성이 주역인 게 보통이다. 여성이 주역이라면 그마저도 로맨스 소설이라는 갈래를 벗어나기 힘든 법이다. 차라리 어린 여성이라면 성장 소설의 갈래에 얹혀 갈 수 있는데, 바르사는 이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주인공이다. 그녀는 인생을 살 만큼 산 중년이고, 이야기는 그녀의 삶이 넘칠 만큼 진행된 시점에서 시작된다.


바르사는 서른에 들어설 동안 죽도록 창만 휘두른 여성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처음 시작되는 시점에서, 삼십 넘은 그녀는 크게 강해질 수 없다. 오히려 앞으로는 약해질 일만 남은지도 모른다. 그녀는 특별한 주술을 얻게 되는 것도, 선택받을 것도 아니다. 재산도 없다. 다른 사람들처럼 사회에 섞여들어 결혼을 하려고 애쓴 것도 아니다. 대체 그녀에게 뭐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바르사는 단창 한 자루와 바르사 자신만을 가지고 있다고 답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뤄 둔 것도 없는 서른 줄의 여성-바르사는 그런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르사는-그리고 우에하시 나오코는 굳어버린 도식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수호자>시리즈에 등장하는 면면들을 보면 그런 생각은 더 강해진다. 서른이 넘은 나이의 여성이지만 작중에서 가장 강한 바르사라는, 서른 중반의 여자. 평범한 시골 여성으로서의 삶을 거부했기 때문에 주술사로 살아가게 된 토로가이라는, 늙은 여자. 싸우지는 않지만 부드럽게 바르사를 지지해 주는 탄다라는, 스물 후반의 남자. 성별을 바꾼다면 이들의 역할은 훌륭하게 고전 판타지에 들어맞을 것이다. 그리고 우에하시 나오코는 이들의 성별을 뒤틀어서 고전적인 판타지와는 다른, 멋진 이야기를 만들었다.


물론 <수호자>시리즈가 팔린 데에는 여러 요소가 작용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우에하시 나오코는 자기 세계관을 정말이지 섬세하게 풀어 놓는다. 문화인류학을 전공했다는 소개를 보고 단숨에 납득할 정도로. <정령의 수호자>에서는 “성도”가 상징하는 신문명과 “주술”이 상징하는 구문명이 충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충돌이 결코 주인공들의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고, 오히려 주인공의 이야기 그 자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던가. 어쨌거나 저쨌거나, 결론을 말하자면, 다음 권의 발간이 무척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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