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기묘한 날씨 푸른지식 그래픽로직 7
로런 레드니스 지음, 김소정 옮김 / 푸른지식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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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그래픽 북 ‘아주, 기묘한 날씨’

[서평] <아주, 기묘한 날씨>(로런 레드니스, 푸른지식, 2017.5)


묘지에 허리케인이 닥쳐서 아수라장이 되었다. 바로 버몬트 주 로체스터에 있는 우드론 묘지에 말이다. 2011년 8월 말, 카리브 해의 넓은 지역에 허리케인 아이린(Irene)이 생성되면서 비바람이 몰아쳤다. 이 때문에 묘지의 시신들이 떠내려가고 망자들이 지표면으로 올라왔다. 날씨는 이처럼 죽은 사람을 다시 한 번 괴롭힐 정도로 무섭다.


책 표지. @ 푸른지식


마녀사냥과 동성애 비난은 이상한 날씨 탓?


최근 번역 출간된 <아주, 기묘한 날씨>(로런 레드니스, 푸른지식)는 날씨가 어떻게 정치, 역사, 종교, 과학 등과 연결되는지 독특한 시각과 그림으로 전개한다. 요새 날씨가 기묘해서 몸이 축축 쳐진다. 조금만 움직여도 지친다. 왜 여름은 겨울이나 봄이 아닌 여름의 특징을 나타내는 날씨로 향해가고 있을까. 태양 빛이 뜨겁게 내리쬐고, 습한 대기 상태만이 여름의 부분이며 날씨일까. 우리는 삶의 어느 부분까지 날씨의 침범을 받고 있을까. 카오스에서 시작되어 추위, 비, 안개, 바람, 열, 하늘, 통치, 전쟁, 수익, 즐거움, 일기예보까지. 우주에서 대기권으로 그리고 인간의 삶에서 인간의 내면까지 날씨가 관여하지 않은 부분은 없다.


2011년 12월 11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기 전 바람이 강해지고 파도가 높아지는 날이 며칠 이어지면서 한파가 찾아왔다. 이에 대해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하늘이 보내준 분이라며 더욱 칭송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기상 현상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셈이다. 이처럼 날씨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마법이 있다.


책의 8장, 9장, 10장은 ‘통치’, ‘전쟁’, ‘수익’을 다룬다. 이 장들은 날씨와 인간이 어떻게 엮이는지 생각할 거리를 제시한다. 1588년 영국 해군이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찔렀을 때 조수와 바람이 승리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때 펠리페 2세는 인간을 물리치라고 무적함대를 보낸 거지, 신이 보내신 바람과 파도에 맞서라고 한 게 아니라며 날씨에 경이로움을 드러냈다고 한다. 날씨의 신성은 종교에서 특히 많이 나오는데 기독교 창세기를 보면 야훼가 손수 하늘에서 유황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퍼부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신이 날씨를 통해 분노를 표현한 것이다.


날씨가 신성화된 이후 사람들은 날씨가 격할 때면 신이 분노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시작한다. 분노를 누그러뜨리려면 그에 맞는 희생양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점차 커지게 되었다. 1300년부터 몇 세기 동안 지구의 기온은 급격하게 하강한 소빙하기가 있었다. 유럽에서 강설량이 증가하고 우박을 동반한 폭풍이 내리고 가물고 홍수가 나며 기온이 극단적으로 바뀌는 혹독한 겨울이 이어졌다. 이 시기인 13세기부터 19세기까지 100만 명에 달하는 여자가 마녀라는 탈을 쓰고 잡혀 죽음을 당했다. 대부분 가난한 여인이거나 과부였다.


아주 이상한 날씨가 나타날 때면 누군가를 마녀로 희생시켰던 제도는 오늘날에도 남아 있다. 21세기가 되었음에도 사람들은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희생양을 찾는다. 게이와 레즈비언이 주된 표적이다. 예를 들면, 2012년에 미국에 허리케인 샌디가 상륙했을 때 사람들은 동성애 때문이라며 동성애들을 비난했었다. 시골에 살거나 교육을 많이 받지 않은 사람들만이 ‘마녀’와 같은 날씨 희생양을 믿는 것은 아니었다. 홍수나 가뭄 때문에 농작물 수확이 줄어들면 사람들은 날씨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하고 싶어 했다. 이러한 심리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이기에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조차 누군가를 ‘마녀’라며 탓하게 된다.


하늘을 나타내는 일러스트. 책 안에서.


서술과 사례가 혼합된 다큐멘터리 그래픽 북


사례들이 중심이 되는 와중에 어느 순간 설명으로 들어가는데 이론을 읽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였다. 사하라사막의 모래가 아프리카에서 출발해 대서양을 가로질러 플로리다에 도착하는 과정에 대한 사람의 심리를 묘사하다가 “바람은 지표면과 나란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공기의 운동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지표면을 불균등하게 가열하는 태양열과 지구의 자전운동 때문에 지구의 대기는 위도에 따라 크게 무역풍대와 편서풍대와 극동풍대로 나뉜다. 지구를 두르고 있는 이 세 가지 바람 띠 때문에 지역하다 다른 기후가 생기고 제트기가 이동할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여 풍부한 내용으로 잘 발산시켰다.


하지만 책은 인터뷰 체와 설명, 묘사, 과학적 내용이 혼합되어 자칫 집중이 어려울 수 있었다. 한 편의 다큐 같긴 해도 일러스트만으로 일관된 이야기를 이끌어가기엔 조금 어지럽긴 하다. 특히 각 장의 일러스트들이 내용 전체와 관련되었거나 사건을 설명해주는 그림들은 아니다. 심지어 ‘하늘’ 장에서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구름의 빛깔, 모양, 색 등을 오직 삽화로만 나타내어 장들에 일관성이 없기도 했다.


한편, <아주, 기묘한 날씨>는 날씨와 관련한 풍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 왕세자빈은 스피어 곶에서 안개 때문에 길을 잃어 등대를 찾아 다녀야 했다. 또한 안개로 인해 선박의 충돌이 발생했다. 증기선 아틱(Arctic) 호와 프랑스의 철제 스크루 추진선인 SS베스타(SS Vesta) 호는 자욱한 바다 안개로 서로 보지 못해 부딪혔고 수많은 사망자를 냈다.


3장 ‘비’에선 미국항공우주국이 생명체 탐사를 위해 외계 행성을 알아본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화성의 특징 가운데 물, 그리고 물과 관련된 비까지 내용을 확대해 나갔다. 화성과 같이 극한 환경은 바위만 있고 비가 내리지 않는다. 마치 지구의 아타카마사막 중심부와 같다. ‘비’에 대한 일반적인 지구과학적 이론들이 난무할 거라는 생각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은 서술이었다.


날씨를 아는 것이 국력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상한 날씨가 진짜 사람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 수 있다. 사람의 활동으로 지구는 기온 상승, 기상 이변, 화재, 홍수, 가뭄, 해수면 상승, 생물 종의 멸종 같은 극단적인 결과가 나타난다. 문제는 기후 변화로 인해 ‘마녀 사냥’을 하는 새로운 부류가 탄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는 빈곤을 부추기고 환경을 파괴한다. 특히 허약한 정부의 기반을 더 약하게 한다. 이때 테러 활동과 폭력 행위가 평소보다 많이 일어난다고 한다.


날씨는 동물과 하늘과 바다 모두에서 변화를 일으킨다. 어쩌면 날씨를 변화시키는 두려운 신은 인간일 수도 있다. 예전에는 의식하지 못한 채 환경을 파괴함으로써 날씨를 변화시켰다면 이제는 직접 날씨를 조정할 수 있게 되었다. 2025년이 되면 미국은 안개를 흩트리는 레이저, 번개를 막을 수 있는 비행기, 구름 씨를 뿌릴 수 있는 무인비행기 같이 날씨를 활용할 기술들을 성공적으로 만들게 될 것이라고 한다.


더 심각한 건 날씨가 전쟁에 활용되는 것이다. 날씨를 조정해 적군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다. 이전에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전투 공간이 확대 되어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비중이 달라진다. 예를 들면, 적군 비행기가 방어하는 특정 목표 지점에 폭풍우를 발생시켜 혼란을 줄 수도 있다. 인공 강우를 일으킬 경우 적군의 통신망을 물에 잠기게 하여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


이제 날씨는 우리 삶과 떨어질 수 없는 현상이자 도구이다. 책은 이론으로만 배웠던 날씨와 그에 따른 현상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무의식적으로 어떤 사건을 만들어 왔고, 어떻게 역사를 바꾸고 인생을 바꾸었는지 설명한다. 장마다 글자 간격이나 줄 간격이 두어 번 바뀔 정도로 혼란스러운 전개가 이어지기도 했지만, 작가가 의도하여 카오스 같은 날씨를 책으로 표현하는 것이란 생각도 들어 탄성이 절로 나왔다. 창의적인 구상이었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독자가 책을 덮는 순간 기온을 달리 보는 시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나.


어쩌면 정치나 역사, 종교나 과학보다 날씨가 우위에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만큼 날씨가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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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의 과학 -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한림 SA: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12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편집부 지음, 김일선 옮김 / 한림출판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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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석 4조 ‘태양열’ … 아직 희망은 있다

[서평] 『에너지의 과학』(사이언티픽 아메리칸 편집부, 2017)


올 여름 극심한 가뭄으로 전국이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물과 에너지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깨닫는다. 자원은 부족한데, 써야 할 곳은 많다. 따라서 문제가 된다. 또한 자원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더더욱 문제는 심각해진다. 이에 과학 전문가들이 모여 ‘에너지의 과학’을 적어내려 갔다. 과학을 이용해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것이다.




물은 에너지와 직결된다. 에너지가 없어도 못 살지만, 물 없인 더더욱 살지 못한다. 인간이 말이다. 『에너지의 과학』에선 물과 에너지의 대결을 그린다.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도시에 살고 있다면 물의 공급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 번 느껴봐야 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담수를 통해 물을 공급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그럼에도 진퇴양난에 빠진 것은 외부에서 담수를 공급받을지, 도시 지하의 깊은 대수층의 소금기 있는 물을 담수로 만들기 위한 전기를 공급받을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책에선 차라리 주민들을 물이 있는 곳으로 옮기는 건 어떻겠느냐고 반문한다. 에너지를 투입해 물을 공급하자니 탄소가 배출된다. 이 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에너지를 만들려면 물이 필요하다. 각광 받고 있는 바이오연료만 하더라도 물이 너무 많이 든다. 바이오연료용 농작물을 키우는데 물이 들어가고, 이를 자동차에 연료로 투입하기 위해서도 물이 엄청 투입된다. 책에선 1:20이라고 표현했다. 바이오연료 전체 과정에 투입되는 물의 양은 휘발유 자동차가 주행거리 1마일당 소비하는 물의 양의 20배가 넘는다는 것이다. 미국은 자동차 연간 총 주행거리가 2.7조 마일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답이 없는 건 아니다. 싱가포르나 우주에선 화장실에서 사용된 폐수를 정수해서 수돗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거부감이 드는가? 물의 부족이 불러올 끔찍한 사태를 생각한다면 심각하게 고려해볼 만한 방법이다.


물과 에너지의 팽팽한 줄다리기


다들 알다시피 석유는 무한정 있지 않고, 석탄은 이산화탄소를 방출해 문제를 야기한다. 그래서 과학기자들은 WWS(Wind, Water, Sun) 즉 바람, 물, 태양을 해답으로 제시한다. WWS는 풍력, 태양열, 지열, 조력, 수력 발전으로 활용될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원자력 발전은 건설과 우라늄 정제, 수송 등을 고려하면 풍력 발전에 비해서 최대 25배에 가까운 탄소를 발생시킨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얼마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한 것일까? 『에너지의 과학』에는 구체적인 숫자들이 제시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2013년, 전 세계의 순간 최대 전략 소비는 12조 5,000억 와트(12.5테라와트)였다고 한다. 미국 에너지정보국의 추산에 따르면 그렇다. 2030년에 전 세계 순간 최대 전략 소비는 16.9테라와트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WWS로 만든 전기만을 이용하면 전 세계의 전력 필요량은 11.5테라와트에 불과할 것이고, 미국의 수요는 1.8테라와트에 머문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효율성에 있다. 책을 보면서 깜짝 놀랐던 것은 많은 에너지가 제대로 쓰이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자동차에서 휘발유가 만들어내는 에너지의 17∼20퍼센트만이 차를 움직이는 데 쓰인다고 한다. 나머지는 모두 열로 방출되는데 너무나 아깝다. 반면, 전기 자동차는 차량에 전달된 전기의 75∼86%가 제대로 사용된다.


미국의 석탄 이용 화력 발전소는 평균적으로 1년에 12.5% 기간은 정비와 수리 등으로 가동을 중지한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적인 풍력 발전기는 지상은 2% 이하, 해상은 5% 이하만 가동이 중지된다. 태양 전지 시스템은 2% 이하로 가동이 중지되기 때문에 효율성이 높아 보인다. 전 세계에서 부는 바람을 이용하면 1,700테라와트 양의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태양열은 6,500테라와트를 만든다고 한다. 필요한 에너지 생산을 위해 책의 연구진들은 기존의 수력으로 9%를 감당하고, 나머지는 풍력과 태양열 발전 기술을 사용하는 방식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바람이 늘 불지 않는데, 어떻게 풍력 발전기를 돌릴 수 있느냐고 물어볼 수 있다. 책에선 150∼3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두 곳의 풍력 발전 단지를 연계하면 가능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즉, 한쪽에서 바람이 불지 않을 때는 다른 쪽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풍력과 태양열을 조합해 상호 보완이 될 수 있다.


지금 당장은 과학기술로 WWS의 에너지 효율성을 극대화 하진 못하고 있다. 풍력, 지열, 수력 발전 비용은 2020년이 되면 kWh당 4센트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경우 전기의 평균 생산 비용이 kWh당 약 7센터였지만 2020년에는 8센트가 될 것이라고 한다. 갈수록 가격 경쟁력을 갖추는 WWS는 따라서 대안이 될 수 있다.


정책적으로 보았을 때 무리가 있는 건 아니다. WWS 시스템을 전 세계적으로 구축하는 데 드는 비용은 향후 20년간 약 100조 달러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송전 시스템을 제외하고도 말이다. 그렇다고 이를 정부나 소비자가 다 부담해야 하는 건 아니다. 투자된 비용은 전기를 판매해서 회수 가능하다. 또한 차액지원제도(Feed-in-Tariff, FIT)를 고려해볼 수 있다. 신기술이 자리 잡을 때까지는 발전 비용과 전기 도매 가격 사이의 차액을 메워주는 것이다. 눈여겨 볼 대목이다.


『에너지의 과학』에선 스케치하듯 ‘일곱 가지 혁신적 에너지 기술’을 소개했다. 눈에 띄는 것은 ‘핵융합으로 만들어내는 핵분열’과 ‘태양열로 만드는 연료’이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으나 분열과 융합을 연결시키는 시도는 좋아 보인다. 핵폐기물을 연료로 쓰는 방법은 바람직한 것처럼 보인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말이다. 또한 태양은 단 한 시간 동안 지구에 쏟아 붓는 에너지가 인류가 1년간 사용하는 에너지의 양보다 많다고 하니 어떻게든 모아봐야 할 것이다. 한 전문가는 태양열로 연료를 만드는 게 1석 4조라고 표현했다. 즉 ▷ 청정 연료 공급 ▷ 에너지 안보 ▷ 이산화탄소 감소 ▷ 기후 변화 영향 감소가 가능하다.


이외에 ▶ 양자 전지 ▶ 열 엔진 ▶ 충격파를 이용한 자동차 엔진 ▶ 자석 에어컨 ▶ 청정 석탄 등이 혁신적 에너지 기술로 꼽혔다.


에너지는 잘 만들어 내는 것과 더불어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아끼는 게 최선이다. 그 핵심에 ‘과학’이 있다. 아직은 부족할지 몰라도 여전히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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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 - 뇌과학, 착한 사람의 본심을 말하다
김학진 지음 / 갈매나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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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중독 같은 ‘인정 욕구’가 이타성의 뿌리

[서평] 심리학 전공자 김학진 교수의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 구조>


물에 빠진 낯선 아이를 구하거나, 선로에 뛰어든 사람을 대신해 죽음을 맞은 사람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종종 뜬다. 사람들은 이들의 희생을 이타정신이라며 칭찬한다. 순수하게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들은 이타적 동기로 몸을 날린 걸까.


인간은 타인의 말 한마디나, 요구, 험담에 따라 여러 충동을 느낀다. 충동 중 하나인 분노는 인정받지 못함에서 주로 일어난다. 이에 따르자면 우리 인간은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이타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인정받기 위해 물에 빠진 낯선 이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출간된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 (김학진, 갈매나무)는 사람들의 이타성을 뇌 구조로 분석해 설명한 책이다.




이타성을 만드는 뇌의 부분들


인간의 이타성을 알기 위해 꼭 살피고 가야할 뇌 부분이 있다. 대표적으로 ‘측핵’과 ‘편도체’다. 김학진 교수에 따르면 측핵은 “신체 내부의 균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대상을 향해 접근하는 강력한 신경학적 신호를 만들어내는 부위”이고 편도체는 “위험하거나 불쾌한 자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위험 회피 행동을 학습하게 하는 부위’이다. 이 둘은 여러 상황 속에 인간을 ‘접근’하게 하거나 ‘회피’하게 만든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중요한 뇌 부분은 ‘복내측 전전두피질’이다. 이곳은 중요한 경험의 흔적들이 남겨지는 뇌의 부분이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경험을 쌓는다. 단순히 배가 고파 음식을 먹었던 어린 시절과 달리, 커 갈수록 옆에 있는 누군가가 음식을 먹고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하는 이유로도 음식을 먹는다. 단순한 내부 감각 신호에서 외부 감각 신호로 범위가 확대되는 것이다.


사회에서 효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쌓아온 내부, 외부 가치 사이를 긴밀하게 연결시킬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예전에 경험한 상황이 또 다시 닥칠 경우 감정 반응을 능숙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외부 자극(사기, 질투 등)에 따라 우리는 내적 자극만으로 익혔던 세상을 달리 보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로부터 ‘순수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그건 당신이 외부 자극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에 어수룩한 어른이라는 표현일 수도 있다.


인정받기 위해 남을 돕다


책은 경험을 쌓은 사회인의 뇌를 드러내 보였다. 위에서 말한 ‘복내측 전전두피질’은 경험에 따른 이타성 외에 칭찬이나 돈, 음식 따위로 보상을 받았을 때에도 활성 한다. 보상을 받았다는 것은 자신이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다. 인정을 받는 건 자신의 평판이 타인에게 드러나 보이는 것으로,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도울 때 타인에게 인정을 받는 경우와 같다. 이 경우에도 ‘복내측 전전두피질’이 활성 한다.


보상받거나 인정받으려는 심리는 타인을 위해 몸소 나서는 이타성을 보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자신을 해하기도 한다. 인정 중독에 빠지기 때문이다. 더 많은 인정,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싶어 자신이 속한 무리와 다른 문화권 사람들을 강하게 배척하여, 마치 자신이 무리의 지도자인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이는 사회를 비교하거나 타 집단을 혐오하기에 이르게 된다. 인정 중독은 점점 강력한 순환 과정을 거친다. 마치 게임 중독자와 같다.


게임 중독에 빠진 아이의 시각에서 보자면, 아이가 게임으로 얻는 즉각적 즐거움은 선생님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내일까지 마쳐야 하는 발표 준비보다 더 빠른 보상을 준다. 기다림이 필요 없는 보상이다. 기다림이 필요하거나 추상적인 보상의 경우 가치를 약하게 본다. 게임 중독처럼 큰 노력 없이 빠른 시간에 ‘사람들의 인정’이라는 보상을 받는 몇 가지 사례가 있다. 대표적으로 셀카와 SNS 중독이다. 셀카와 SNS에 중독된 이들은 높은 보상을 위해 그리고 새로운 자극을 위해 더 독하게 변해간다. 호감과 인정을 얻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 되며, 자기만족 보다는 타인으로부터 호감을 얻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을 더 가지게 된다.


이처럼 카메라와 CCTV가 난무하는 시대는 사생활 침해 논란이 있긴 해도 사람들의 시선을 대신할 장치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없는 상황에서 상대를 도울 수 있는 이타성을 보이도록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이 찍히는 걸 알기에, 그리고 그 행동을 전 세계인들을 포함한 더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기꺼이 외진 곳에서도 사람을 구하려 노력한다.


이타성과 거리가 먼 꼰대가 되기까지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증가하게 되면 전에 받았던 수준의 존중으로는 만족감을 느끼기 어렵게 된다. 그럴수록 더욱 높은 존중을 요구하면서 욕심을 부리게 된다. 만약 만족할 만큼 보상받지 못하면 무시당했다는 기분을 느끼며 때론 분노를 표출한다. 마치 금단현상과 같다. 대표적인 예로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사건이 있다. 무엇이 중요한 가치인지 판단을 못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책에서는 공감의 경우를 이타성에 끼워 설명을 했다. 공감은 편도체의 활동과 관련이 깊다. 우리는 공감을 너무도 잘하는 사람은 이타적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사람 자체로는 불이익이 되기도 한다. 합리적인 판단이나 결정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공감을 잘 하는 기업의 대표라 했을 경우, 직원들이 피곤한 기색을 보이면 일을 그만두게 하고 퇴근을 시킬 것이다. 이는 인간적이기는 해도 기업 입장에서는 합리적이지 않다. 한편, 공감 능력이 적어야 쉽게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래서인지 정치와 종교 분야 지도자들 중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현저히 높다고 한다.


우리의 뇌는 물리적 경험 없이 정서적 경험만으로도 공감을 이끌 수 있다. 공감은 위급한 상황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피할 수 있는 지혜를 준다. 이러한 반응들은 집단의 의견을 좇아 행동하기도 한다.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기에 우리는 공감을 하고, 타인의 시선을 따르고, 공동체에 소속되려고 한다. 어쩌면 자기중심적 기준으로 세상을 보았는데 그것이 남들 눈에는 이타적으로 보인 것일 수 있다. 오래도록 인정받으며 군중에 소속되려는 굳건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소속체들을 돕는 것이다.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뇌를 물려받은 우리는 뇌 속에 어떤 역사가 있는지를 보고 싶어 한다. 생존을 위해 뇌는 마치 이타성을 보이는 식으로 진화를 했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존경해야 하는 건 마땅한 일이지만 생물학적·사회적 이유를 간과할 수 없다. 조금은 매정하지만 말이다.


이에 따라 책은 인간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사회적 문제를 뇌의 보상 측면에 두고 흥미롭게 전개를 했다. 또한 유명 심리 실험과 실제 사건, 사고들이 소개되어 지루함을 덜했고, 이와 함께 김학진 교수의 의견이 들어있어 강의를 듣는 느낌도 받았다.


한편으로 뇌에 대한 설명보다는 사회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기에 뇌 과학 책이라 보다 인문학 책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인간의 이타성을 다시금 생각해본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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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뻔한 일상에 던지는 크리에이티브한 공상
박지우 지음, 정혜미 그림 / 알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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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의 꼰대를 경계하자 … 일상의 의미 『툭』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와 펼쳤다. ‘기분이 저기압일 땐 반드시 고기 앞으로 가라.’는 문구가 보였다. 문구 옆에는 불 길 위에 놓인 고기 꼬챙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웃음이 ‘툭’하고 뿜어 나왔다. 웃음의 소리와 같은 책 『툭』(박지우, 정혜미, 알키, 2017)에 나온 내용이다.



지은이는 어린 시절에 겪은 일부터 지나다니면서 보았던 일상의 모습에 숨은 의미를 개그처럼 비평했다. 책을 읽으면 몇 가지 내용이 마음에 남았다. 하나는 지은이가 어린 시절 남자친구를 만나러 야밤에 선크림을 바르는 내용이다. 엄마는 지은이에게 왜 밤에 선크림을 바르냐고 했고, 지은이는 달빛에 자외선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때의 기억을 되짚으며, 지은이는 다음처럼 적었다. ‘그땐 내가 기지를 발휘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가 아량을 발휘한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일상을 지은이는 독특한 시각으로 내면을 바라본 것이다. ‘감상의 꼰대’라는 내용이 있다. 영화를 한 번 본 지은이가 친구에게 영화를 추천하여 같이 본 경험이었다. 이때 지은이는 친구가 특정 장면에서 웃지 않는지, 대사를 이해했는지 안절부절 못했다고 한다. 이때의 경험을 글로 시처럼 썼는데, 충격적이기도 했다.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감상의 꼰대가 회사와 사회라는 거대 조직에서도 같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한 번 겪은 일이 자신에게는 쉬워 보이는 것처럼, 또한 사회를 많이 겪은 어른은 사회를 처음 보는 아이의 시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의 인지를 꼬집는 내용이었다.


그림 역시 독창적이었다. 스케치 그림에 일상의 물건들이 끼워져 있다. 다시 말하면 일상 물건을 놓고 스케치를 한 셈이었다. 예로, 사과를 태양에 비유한 그림이나 렌즈 통을 안경에 비유한 그림을 들 수 있다. ‘층간 소음’이라는 제목에서는 기둥을 초콜릿 과자로 내세운 그림이 있다. 위아래 층 모두 달달하게 지내자는 의미가 들어 있었다. 우주선 몸체를 건전지로 놓거나, 깎은 연필 끝을 쥐의 얼굴로 놓아 제목과 글이 그림과 조화를 이루도록 잘 그렸다.



‘익명’이라는 작품도 좋았다. 글은 ‘단 하나만 감추고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림에는 자물쇠 모양의 모자로 얼굴을 가린 사람의 모습이 있었다. 4월의 다른 이름은 축의금이라는 설명과 함께 여자가 녹색 상추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림이 있는가 하면, ‘힘없는 나를 앞세워 바람에 휘날리게 하는 당신의 행동은 연날리기인가, 엿 날리기인가.’라는 설명과 함께 티백으로 연을 표현한 그림도 있다.


글과 그림이 한데 어울려 시너지 효과 이상의 느낌을 주었다. 그저 간편하게 ‘툭’ 누워서 읽을 만한 책이지만 그 간편함 속에 복잡한 세상 진리가 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깊은 책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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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가
페터 슬로터다이크 지음, 이덕임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신과 인간의 분노 … 지옥과 혁명으로 나타나

<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가>(이야기가있는집, 2017.5)


국내에 꽤 알려진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가 쓴 철학 에세이 『분노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가』가 번역돼 나왔다. 슬로터다이크는 2004년 방한해 의사소통행위이론의 하버마스를 맹렬히 비판했다. 철학자 슬로터다이크는 이번 에세이에서 ‘분노’라는 키워드를 통해 역사를 관통하는 힘이 무엇인지 파헤치고자 했다.


슬로터다이크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분노는 단지 분노만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분노는 영원과 지복을 위한 종교적 의미와 부르주아에 대한 복수의 사회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지옥은 하나님의 분노와 혁명은 분노의 실천과 연결된다. 인간 사회는 제한된 자원으로 인해 누군가는 상처를 입고 누군가는 복을 누릴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약육강식의 인간세계에서 분노는 정신적 허탈감을 채울 수 있는 단 하나의 묘약이다. 하지만 슬로터다이크가 보기에 현대의 분노는 응집되지 못 하고 분산돼 있다. 그래서 분노가 분노답게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분노가 분노답게 작동하기 위해서


인간은 ‘죄’를 범하는 존재다. 죄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결함을 갖고 있는 존재이다. 이 때문에 슬로터다이크의 표현을 따르자면, ‘치욕의 윤리학’이 번성한다. 책의 제2부 제목은 ‘분노의 신’이다. 죄를 범하는 인간을 하나님은 벌하는 것이다. 신의 분노는 영복 아니면 지옥을 가리킨다. 악마가 있는 곳은 죄의 기록 보관소 역할을 한다. 신의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는 악마는 분노와 복수의 충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하기 위해 지옥으로 인간을 데려간다. 슬로터다이크는 “기독교인들은 마지막 분노의 날을 완벽하게 구경하며 즐기기 위해 스스로의 분노를 억제하도록 학습되었다”며 “그러므로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하느님의 분노는 언제나 상상 그 이상이었다”고 적었다.


종교만 분노를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철학자인 마르크스와 수많은 혁명가들 역시 분노를 적절히 활용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모든 역사가 분노에 의한 투쟁의 역사라고 간주했다. 이미 1848년에 말이다. 지성은 분노를 필요로 하고, 분노는 지성을 요구한다. 분노라는 재료는 혁명이라는 열차가 움직이도록 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은 사유재산을 몰수하려는 복수심의 분노를 표출하고자 했다. 공산주의의 이념을 실천하는 것보다 분노의 표출이 더 중요했다고 슬로터다이크는 분석한다.


혁명가들뿐만이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역시 분노는 좋은 치료제이다. 합리적이고 완벽한 것처럼 보이는 정치적·법적 문명이라는 것은 모순투성이다. 이때 개인의 복수가 등장한다. 신의 입장에선 ‘복수는 나의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의 입장에선 복수 낭만주의가 필요하다. 애써 구축한 규칙과 법이 소용없다면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은 개인 차원의 분노일 수밖에 없다. 특히 현대사회는 경쟁과 패배의 쳇바퀴가 계속해서 돌아간다. 이때 패배자들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따라서 분노라는 묘약은 질병에 대한 치료제이다. 슬로터다이크는 “분노에는 기본적인 감정을 받아들이는 즐거움이라는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고 적었다. 분노가 베푸는 것이다. 분노에게 고마워해야 할까.


혁명과 지옥과 묘약으로서의 분노


우리는 분노의 속성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역사의 종언』으로 유명한 후쿠야마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후쿠야마는 자유주의의 승리 후 세계의 시민들은 항상 자유롭게 흘러 다니는 불만족의 물결에 젖을 수밖에 없다고 이해했다. 그 이유는 인간이 티모스적인 불안의 에너지에 시달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티모스라는 것은 무엇일까. 플라톤은 티모스를 해석하기를, 자기 자신에게 분노할 줄 아는 인간의 능력(자신에 대한 무례)이라고 보았다. 티모스의 발현 방법은 첫째, 주체를 완전히 에워싸고 짓누르는 감정인 수치심이라는 형태로 표현된다. 둘째, 자신에 대한 내면적 성찰이라는 형태를 띤 분노에 찬 자기 비난이다. 티모스는 욕망도 아니고, 이성도 아니다. 열정이자 인간이 인간으로서 인정받고 반성하며 살아가게끔 하는 기개이자 용기이다. 책에선 “자신을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만이 자신을 제어할 수 있다”고 나온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분노란 필요한 것으로써 영혼을 충족시키고 용기를 북돋운다고 생각했다. 분노는 지도자가 되어선 안 되고 동지로 작용해야 한다.


분노의 경제학을 찾아가다보면 세상의 모든 것은 ‘주고받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짜란 없다. 죽음마저도 생명을 부여해준 이에게 되돌려주는 채무 갖은 것이다. 슬로터다이크는 이를 ‘분노의 사슬과 변제의 경제학’이라고 표현했다.


슬로터다이크는 분노란 “대인적, 정치적, 문화적 관계에 있어서 상호작용하는 생태계의 기본동력”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서구문명에서 분노가 발현되는 방식은 제4부에서 보듯이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제대로 작동하지 못 하고 있다. 세력은 분산화 하면서 흩어지고 있다.


『분노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가』는 전체적으로 글이 매우 격정적이다. 즉, 선언적이다. 또한 2006년에 나온 이 책이 현재 어떤 의미를 가질지 고민해봐야 한다. 아울러, 번역은 조금 매끄럽지 못하고 오탈자가 있다. 그럼에도 ‘분노’에 대한 심리적, 사회철학적, 종교적 분석은 에세이라는 차원을 넘어 심오한 사색을 담고 있다. 이제까지 분노를 이렇게 심도 있게 다루진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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