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대 행복한가요? - 삶이 힘든 그대를 위한 인생 처방전
박혜린 지음 / 성안당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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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보다 늙도록 헛되게 사는 걸 탄식할 것!

[서평] 『오늘 그대 행복한가요? (삶이 힘든 그대를 위한 인생 처방전)』(박혜린, 성안당 2018.12.07.)

 

여러 차례 자기개발서와 인생서를 읽은 결과, 인생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걸 깨달았다. 작년과 올해의 느낌은 다르며 그건 한 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수록 특정 책의 내용은 다르게 다가온다.『오늘 그대 행복한가요?』는 에릭슨의 심리사회발달, 유머 갖는 법, 카네기의 조언 등 작가가 감동을 받고 위안을 얻었던 내용들로 짜인 책이다. 작가는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책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었고 그것을 습관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책은 작가 주관적으로 위안을 받았던 글들이기에 내용이 통일성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가독성이 크지도 않았다. 그러나 반 페이지마다 실린 다양한 명상 글들이 너무도 독특해 천천히 시간을 두고 음미할 거리는 되었다. 물론 책 구성이 진부하고 또 내용들도 뻔해 상투성이 느껴지기는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읽어봤음직한 말들은 해가 지남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기 마련이기에 상투적인 글들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본다. 상황에 맞는 부분을 책에서 골라 읽는다면 그 지혜의 문장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리라.

 

책에 담긴 좋은 문구들


성공을 위한 헨리 포드의 5가지 조언 중 이런 문구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일생을 연구에만 헌신한다. 그러나 그것은 먼 훗날 하나의 열매만을 맺게 될 뿐이다……. 젊은이가 해야 할 일은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여 장차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지식을 모으고 훈련하는 것이다. 너 자신의 발전을 위해 돈을 써라.”

 

그 외,

 

“늙음은 탄식할 것이 못 된다. 정작 탄식할만한 것은 늙도록 헛되게 사는 것이다.”

 

“사랑이란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우리들이 고뇌와 인고 속에서 얼마만큼 강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자기에게 보이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가장 좋은 것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대부분의 것들을 저절로 본인에게 다가오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 사랑의 슬픔은 사라진다. 하지만 우리가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 사랑을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슬픔을 지우면 사랑 또한 지워지기 때문이다.”

 

문장들이 좋았다.

 

책을 덮은 순간 유투브에서 보았던 한 노인이 떠올랐다. 노인은 76세 정도였고 푸근한 인상의 일본인이었다. 노인은 24살 때의 자신에게 영상 편지를 보내고 있었다. 인생을 오래 산 이유때문인지 미래의 자신이 아닌 과거의 자신에게로 편지를 보낸다는 설정은 독특했다. 아마 살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아 과거에 미련이 있으신 것이리라 생각이 들었다.

 

노인의 이야기는 즐겁게 시작됐다. “잘 지내니”, “건강하니” 그러다가 직장에서 만난 여자 하나 짱 이야기가 나왔다. 그 여자와 긍정적 관계를 가지던 24살의 자신에게 “너는 그녀에게 너무 과분하다.”며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노인은 2년 뒤 그녀가 병으로 죽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충격적이었다. 계속해서 장난스럽게 말을 이어왔기에 “절대 그녀와 결혼 말아라.”는 식의 장난을 할 거라 예상하고 있던 차였다.

 


인생 막바지에 어울리는 자기계발서

 

노인은 죽은 그녀를 수십 년 간 잊지 못해 독신으로 살게 될 거라고 청년에게 말했다. 그것이 노인의 현재였다. 세상을 떠난 그녀를 그리워하며 아직도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의 무게를 감히 잴 수가 없었다. 난 한 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노인이 편지를 보낸 젊은 24살과 같은, 그러니까 딱 내가 24살 때 난 세상에 미련이 없었다. 그런 내가 어떻게 지금껏 살아왔는지 생각을 해보니 답은 ‘사랑’이었다. 나의 24살까지 받은 사랑을 함축한다면 채 하루가 되지 않겠지만 그것이 날 24년을 살게 한 것이었다.

 

수십 년을 독신으로 살만큼 여자와의 2년이란 노인에게 얼마나 충만한 삶이었을까,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현대인들은 끝없이 사랑을 갈구하며 그것으로 자신의 위치를 느낀다. 그러나 노인은 현재가 아닌 과거 사랑의 느낌을 간간히 꺼내보며 지금껏 웃으며 살고 있었다. 이런 노인의 삶 전체가 책『오늘 그대 행복한가요?』에 함축된 듯했다. 노인의 일생을 생각하며 다시 읽으니 너무도 가슴 아픈 내용이 많았다.

 

그래서 깨달은 것은, 자기계발서란 인생의 막바지에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인생을 이해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삶을 충분히 살고 나서다. 그러기위해 우리는 삶은 포기 않고 계속해서 멋지게 나이 들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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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비즈니스의 미래 - 한국형 토큰 이코노미가 온다
KT경제경영연구소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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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의 3가지 특징은 '자발성', '투명성', '확장성'

[서평] 『블록체인 비즈니스의 미래 (한국형 토큰 이코노미가 온다)』(KT경제경영연구소, 한스미디어, 2018.12.28.)

 

몇 년 전 경기도의 한 사업 설명회에서 자신들의 사업 제안서 경쟁을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한다는 소식은 접한 적이 있다. 좀 더 투명하고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도전적인 시도였다. 하지만 운영 미숙으로 큰 성과를 보진 못했다. 이번에 읽은 『블록체인 비즈니스의 미래』는 그 당시 일들을 생각나게 했다.

 

블록체인이란 한 마디로 분산 장부를 뜻한다. 블록체인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토큰'이다. 어렸을 때 토큰이나 회수권을 쓴 적이 있는 사람이면 그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토큰은 블록체인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대가로 지불된다. 즉 채굴 활동의 보상이나 지분 증명의 수수료로 발행되는데, 토큰은 더 많은 활동을 불러오기 위한 하나의 보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책에선 토큰의 종류를 세 개로 구분해 설명했다. ▶ 지불형 토큰(비트코인, 모네로 등) ▶ 기능형 토큰(스토리지 토큰, 메디 토큰 등) ▶ 자산형 토큰(부동산 토큰 등).

 

『블록체인 비즈니스의 미래』는 블록체인 기반의 플랫폼 생태계 특성을 3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자발성이다. 생태계 안에 있는 유저들은 그 누구의 강요 없이 본인들이 원해서 블록체인을 활용한다. 둘째, 투명성이다. 분산 장부를 통해 모든 거래 내역이 기록되기 때문에 중앙 집권화 된 은행과 같이 독점적이고 불투명하지 않다. 셋째, 확장성이다. 그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 가능하기 때문에 확장될 여지가 충분하다.

 

책의 부록에선 블록체인을 좀 더 쉽게 설명한다. 즉, "인공지능이나 사물인터넷이 기존의 서비스(혹은 사업)를 강화시키고 확장시키는 기술이라고 한다면, 블록체인은 데이터를 보호하고 투명성을 보장해주는 신뢰의 기술이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역으로 말하면, 이미 충분히 신뢰가 보장되어 있는 서비스라면 굳이 블록체인을 도입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고 강조된다. 블록체인에서 중요한 건 적절한 보상으로서 토큰이다.

 



블록체인이 만들어기는 토큰형 생태계

 

블록체인은 비용절감을 불러올 수 있다. 리서치나 관련 전문기관들은 금융업계 비용 절감 규모를 2022년 약 200억 달러, 비즈니스 규모가 500억 달러 규모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한다. 또한 고객 데이터베이스 관리와 보안에서 연간 23조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은행에서도 인프라 비용을 매년 15억 달러 아낄 수 있을 전망이다. 아울러, 블록체인은 기술의 파급효과를 불러온다. △ 확산성 △ 개선성(시간이 지날수록 기술이 나아지고 비용을 낮출 수 있는 개선성) △ 촉진성(새로운 상품 및 프로세스 개발을 용이하게 하는 혁신 촉진성).

 

매일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경우 데이터베이스가 공개돼 있지 않다. 내가 만든 데이터인데, 돈은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가져간다. 하지만 블록체인은 오픈소스 기반의 분산화된 데이터베이스로 누구나 데이터에 접근이 가능하다. 또한 그 데이터를 활용하고 공유하며 수익(토큰)을 창출할 수도 있다. 특히 좋은 일을 할 수 있다. 실제로 요르단 난민 수용소에선 블록체인 기술로 국경 간 자금 이동시 발생하는 수수료를 98%까지 줄였다고 한다. 책에선 블록체인 기술로 바꾸는 세상을 보여줬다. 한국에선 저작권과 정보 관리, 고용과 환경문제 등에 한국형 토큰 이코노미의 미래가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고 블록체인 기술이 만능인 것은 아니다. 가장 명백한 문제는 폭발적인 데이터를 어떻게 저장하느냐이다. 업데이트와 표준, 책임의 문제, 심지어 양자 컴퓨터 등장에 따른 위협도 무시할 수 없다. 각각을 개선해야 하는 것 역시 기술의 발전과 양면성을 불러올 것이다.

 

책은 국내 및 해외 사례가 풍부하다. 또한 기술적 부분에도 면밀히 초점을 맞추어 블록체인을 시작하거나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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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의 스토리텔링 - 발달장애인의 성인기를 준비하는 생애포트폴리오
정은미 지음 / 상상의날개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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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군가에겐 절실할 수 있는 ‘발달장애인 기록’

[서평] 『지니의 스토리텔링 (발달장애인의 성인기를 준비하는 생애포트폴리오)』(정은미, 상상의날개 2018.11.08.)

 

이 책은 단순히 야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한 발달장애아 엄마의 기록이 아니다. 한 특수교사의 자기반성이자 극복이었고, 삶을 지탱해준 버팀목에 대한 헌사 같은 책이다. 저자인 정은미 씨는 자신의 딸이 처음엔 열등감을 안겨줬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삶을 주도하는 동력이었다고 고백했다. 딸의 이름은 이지현인데, 애칭으로 ‘지니’라고 부른다.

 

『지니의 스토리텔링』은 정은미 작가가 박사과정을 겪으면서 ‘생애포트폴리오’로 만든 것이다. 담당 교수들은 적극적으로 지니의 생애포트폴리오를 책으로 내라고 격려했다. 장애아 엄마가 갖고 있는 모성본능은 정말 눈물 나게 딸아이를 사랑했고, 잘 키워냈고, 키워내고 있다. 아니, 키워가고 있다는 말보다 삶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책을 보면, 우리나라 장애 관련 자료가 정말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정은미 씨는 “누군가에게는 필요 없을 수도 있는 지난 기억을 기록으로 만들어 줄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면서 “발달장애인 당사자에 대한 기록을 만들어 줘야 하는 부모와 종사자들은 이들의 긴 삶에서 단순하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 의미 없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열등감에서 삶의 버팀목이자 동력으로

 

심지어 정은미 씨는 병원에서 지니를 이용하고 있는 것도 알아차린다. 비싼 돈을 주고 찾아간 병원은 연구를 한답시고 제대로 된 사전동의와 교육 없이 지니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그래서 지니는 전문병원보단 집 주변에 있는 장애보육기관 같은 곳을 찾아가 장기적인 교육을 받았다. 정은미 작가도 강조했지만 결국 지니가 살아갈 곳은 지역사회 공동체이다. 따라서 지역사회를 더욱 알아야 하고, 지역사회와 제대로 소통을 할 필요도 있었던 셈이다.

 

정은미 씨는 결국 특수교육을 전공하며 박사학위까지 딴다. 딸 지니가 대학교를 졸업하던 해, 가을 모녀는 성취를 이룬 것이다. 지치지 않기 위해 두 모녀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상상하고 실천해나갔다. 만약 내 자식이 장애아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변할 수 있는 지점은 내 자신의 관점과 마음뿐이다. 나만 변할 수 있을 뿐이다. 발달장애아 자식이 살아갈 험난한 미래를 생각하면 딴 생각할 겨를이 없다.

 

『지니의 스토리텔링』는 특수교육에, 특히 지니라는 한 아이의 성장기를 주로 다루지만 일반교육에까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수교육이나 장애, 더 나아가 일반교육은 학생들의 부족한 점과 결함에만 집중하고 드러내려는 경향이 있다. 개선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과정으로써 받아들일 순 없을까? 저자의 조언이다.

 

부족함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으로 보자


특수교사로서 어머니로서, 박사과정생으로서 정은미 씨는 발달장애인 자녀를 돌보는 게 먼 길을 가야 하는 마라톤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어달리기’인 것이다. 누군가에게 계속 바통을 넘겨줘야 하는 일이 바로 장애 자녀를 돌보는 일이다. 이 사회가, 주변 사람들이 더욱 신경써야 하는 이유이다.

 

야스퍼거인의 결핍은 소통의 지속적인 결함이라고 한다. 특히 추상적인 사고가 부족한 것은 추상적인 사고에 대한 소통 부재라고 작가는 진단했다. 서서히 발달하고 있는 추상적인 세계를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의 부족이 오히려 극복해야 할 지점이다. 따라서 그들만의 비밀장소가 필요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을 게속 만들어줘야 한다.

 

현재 당당한 직업인으로서 지니는 살아가고 있다. 장애인센터 보조교사이자 프리랜서 일러스트 디자이너로 말이다. 지니가 홀로서기까지 정말 어머니 정은미 씨의 노력이 하늘을 감동시켰을 정도이다. 이 세상의 모든 교육이 본받아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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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벽에 등을 기대고 - 어느 혁필화상의 불법체류 호주 인생 이야기
조규태 지음 / 바른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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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천신만고 끝에 영주권 얻어낸 ‘혁필화상’

[서평] 『바람벽에 등을 기대고』(조규태, 바른북스, 2018. 12.21)

 

1950년대 후반 어린 소년이 길을 걷다가 돗자리를 깔고 앉은 할아버지를 본다. 할아버지는 흰 종이 위에 새며, 꽃, 나비 등을 재빠르게 그려내고 있었다. 소년은 얼이 빠진 채 한참을 그림을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20년 뒤 소년은 평범한 미술 선생님이 되었고 여느 때처럼 길을 걷던 중 다시 한 번 혁필화 할아버지를 만난다. 그 순간 소년은 머릿속에 섬광이 번쩍였고 무작정 할아버지를 쫓아 배움을 요구했다. 할아버지는 소년에게 혁필 하나를 건네고 떠났다. 에세이『바람벽에 등을 기대고』의 저자 조규태 씨의 이야기다.

 

결혼 후 저자는 호주로 이민을 갔다. 하지만 정식 영주권이 없는 관광비자를 지닌 처지라 십여 년의 시간 속에서 수많은 설움을 당하게 된다. 호주에서 간판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사다리 밑으로 묵직한 시멘트 벽돌을 받쳐놓고 올라가 붓을 움직이는데 벽돌이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페인트가 눈과 상처로 들어가고 허리가 매우 아팠지만 불법 취업자이기에 병원을 가지 못한 채 통증이 계속되는 가운데 작업을 마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경쟁자의 불법체류 신고 협박으로 더는 간판 일을 하지 못하고 요양원 청소 일을 시작했다. 아내와 함께 새벽 5시 30분이면 일어나 기차를 두 번 갈아타며 한 양로원에 도착했다. 허리가 꺾이도록 침대 밑의 퀴퀴한 노인 배설물들을 닦아냈다. 아내는 나이 오십이 다 된 상태였다. 저자는 아내를 외국에까지 데려와 이런 청소 일을 시키는 것이 제정신인가 싶어 화가 났고, 자신이 한 가족의 가장이 맞나 싶어 분노가 치밀었다. 결국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지 못해 클리너 일을 그만두었다. 암흑 같은 시간 속에서 저자는 문뜩 파고다 공원에서 보았던 혁필화상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일이었다.

 



기술 하나를 믿고 시작하다

 

오직 자기 몸뚱이 하나뿐이었다. 스스로를 믿고 살아가야 했다. 다행인 건 혁필화에 대해서는 호주에 경쟁자가 없어 함부로 고발당하는 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 오랜 시간 연습에 몰두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길가에 자리를 잡은 채 그림을 그려나갔다. 온갖 잡념이 날아다녔다. 단속을 당하지나 않을까, 부정 상행위로 고발을 당하지나 않을까.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은 생각 이상이었다.

 

어떤 티셔츠 생산업체에서 저자의 혁필화로 상표를 찍겠다고 제안을 해왔고, 동업하자는 이들도 속속 찾아왔다. 또 자신의 상점 안에서 자릿세 없이 그려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60이 다 된 나이에 호주 신문에 기사로 실리기도 했다. 청소 일을 했을 경우 며칠 걸려야 벌었을 돈을 단 하루 만에 벌었다. 저자는 번 돈들을 아내 앞에 와르르 쏟아냈다. 그건 그간 호주에서 겪은 설움을 보상하는 선물과도 같았다.

 

그 다음 날 저자는 세인트 조직 은행의 지점장을 찾았고 준비해간 혁필화 몇 점을 보이며 은행 앞 공간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허가장을 받았다. 그건 저자에게 더없이 든든한 바람막이였다. 이때의 바람막이가 저자를 계속해서 그림 그리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혁필화에 관심을 가진 호주 청년 칼과 일본인 여자를 만나 기술을 나누기도 했다. 처음에 저자는 자신의 유일한 생활 기반이기에 쉽게 내어주어도 되나 갈등을 했다. 그러나 이 젊은 이들이 서구식 디자인의 과정이 배어 있는 또 다른 혁필화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었으며, 또 전수되지 않는 기술들이 그대로 끊기는 안타까운 사례도 많기에 하찮은 욕심을 피울 필요가 없었다.

 

10여 년 비영주권자로서의 설움들

 

저자는 영주권을 받기까지 맘 편한 날을 보낸 적이 없었다. 어떤 지인은 갑작스레 들이닥친 이민 경찰을 피해 3층에서 뛰어내렸다가 사망하기도 했다. 그들을 보며 저자는 “차마 눈 감지 못했을 나의 시신”을 떠올렸다. 영주권이 없어 비행기 타기도 힘들었다. 심사가 까다로웠기에 매사에 조심해야 했고 비영주권자임이 드러날까 봐 웬만해서는 밤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이민성에서 확인을 나올 때에는 급히 짐을 꾸려 이사를 해야 했다.

 

같은 인간이었지만 영주권이 없다는 이유로 마음은 한없이 가난해져갔다. 쇼핑센터에서 일을 하던 중 잠깐 한눈을 판 사이 가방을 도둑맞았다. 영어 노트, 혁필화 색소, 붓, 여권 등이 든 중요한 가방이었다. 상심에 절어있던 저자는 바로 옆 중국식당의 불법체류 중국인 3명이 잡혀가는 것을 보았다. 어느 날은 호주 청년 하나가 시비를 걸며 따라온 적이 있었는데 못 들은 척 했더니 얼굴을 가격 당했다. 이때 저자는 처음으로 미친 듯 소리를 질렀다. 불법체류자로서 이 외로운 땅에 살며 억눌렀던 분노들이 일시에 쏟아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쓰레기를 그리느냐고 험한 말도 숱하게 들었지만 무엇보다 같은 민족인 한국인에게 신고를 당했을 때 저자는 가장 가슴아파했다. 그리고 살아있기에 어쩔 수 없이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절망하는 나날도 있었다.

바람벽을 깨뜨리다

 

하지만 저자는 긍정적 마음가짐의 소유자였다. 혁필화를 그리는 처지에 대해 “어디 가서 막노동판을 전전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 곳의 문화도 느끼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벌이도 제법 쏠쏠하고 좋은 거야.”라고 생각하곤 했다. 또한 거리에서 예술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정식으로 허가장을 주는 시험에도 도전해 정당하게 일할 권리를 부여받기도 했다. 이때 저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조이던 구속에서 해방된 느낌이었다.

 

저자는 자신과 함께 고생해준 아내에 대해 애틋했다. 하지만 저자의 마음과 달리 아내는 점점 외로움에 빠지고 있었다. 결혼한 큰 딸이 불법체류자 자식이라는 이유로 시댁에서 핍박받고 이혼을 한 것에 아내가 충격을 받은 사건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10여 년 간 다닌 교회를 더는 나가지 못해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자신은 일 년의 반을 타지에서 보내고, 딸들은 각자 사느라 바쁘기에 아무도 아내를 챙기지 않았다. 그러던 아내는 이단에 빠져들었다. 아내를 격리시키려 했지만 그럴수록 아내는 저자를 외면했다. 웬만해서는 아내와 싸우려 하지 않았고 다행히도 조금씩 아내는 2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저자는 자식들이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오랜 세월을 호주에서 살았다. 마침내 자녀들이 모두 영주권을 얻고 저자와 아내도 기회가 생겼다. 저자는 끊임없이 이민청에 영주권 신청서를 보냈다. 자신에게 혁필화를 배운 호주 청년 칼과 목사님의 추천서도 실어서는 몇 차례나 도전했다. 그리고 2002년 9월 25일 마침내 정식으로 영주권자가 되었다. 아내는 울었다. 12년의 모든 고생이 끝난 것 같았다. 저자는 생각했다. 웨슬리 미션에서 봉사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고든 목사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혁필화를 가르쳐 달라고 조르는 칼을 무시해 버렸더라면 지금의 이런 날이 왔겠는가하고 말이다.

 

『바람벽에 등을 기대고』는 책 『앵무새 죽이기』와 비슷한 느낌의 문체를 가졌다. 영화 같은 개인의 삶이었다. 또 이민에 대해 로망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교과서였다. 이민자는 남의 영역에 들어와 먹고 살 것을 찾는 중에도 땅주인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챘다싶으면 도망가야 하는 신세와도 같았다. 저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국을 찾아보고 싶었던 친구와 친인척을 만났다. 그리고 다시 호주로 돌아왔다. 더는 이민경찰이 두렵지 않은 호주에서 저자는 지금도 예전과 같이 이름 없는 혁필화상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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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끼리면 뭐 어때 - 선생님과 학생이 같이 읽는 교과통합소설 소설로 읽는 통합사회 2
염명훈 외 지음 / 청어람e(청어람미디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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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한 애정과 상처 VS 정의 외치나 애정 부족

[서평] 『우리끼리면 뭐 어때』(염명훈, 송원석, 김한수, 김경윤, 청어람e, 2018.12.10.)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땐 눈물이 났다. 이 책의 이야기가 단순히 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 오영의 삶으로만 비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족과 학교, 냥이와 멍멍이, 사회와 정의, 성장과 멈춤의 파노라마는 여전히 진행 중인 우리 모두의 얘기다. 추천사를 쓴 장발장 은행장 ‘소박한 자유인’ 홍세화 대표는 “이 소설은 수용소에서 잠든 학생들을 깨워 삶의 구체적인 환경 속에 데려가기 위해 시도되었다고 할 수 있다”고 적었다.

 

책은 매우 독특하게 그림과 대화창, 활동지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창의적 발상이 통통 튀는 것이다. 책의 제목은 ‘우리끼리면 뭐 어때’이지만 부제는 ‘선생님과 학생이 같이 읽는 교과통합소설’이다. 저자 중 한 명인 엄명훈 씨는 “‘희망’의 비슷한 말을 ‘우리’라고 하면 너무 지나친가요?’라고 서문에 적었다. 희망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처음엔 주인공이 남학생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읽다보니 아빠 오만해가 ‘딸’이라고 부르는 것을 읽고 나서야 여학생인 걸 알아챘다. 그만큼 책은 성구분에 대한 차별적 요소가 담겨져 있지 않다. 당당하게 학교생활을 헤쳐 나가는 오영. 이 학생은 이혼한 부모 밑에서 양쪽 부모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진 않지만 반장을 맡을 정도로 ‘부진한(학교에서 보기에)’ 학생들이 모인 곳에 있다. 그곳에 단짝 친구는 용해라는, 나이가 더 많고, 아버지가 중국 사람인 남학생이다. 둘은 중국에 사업차 떠나려고 했지만, 오영의 할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일몰이 산에 가려지지 않는 드넓은 땅을 밟지 못한다.

 



희망은 우리가 서로 함께 있는 것

 

“잘 보이지 않는 곳은, 잘 보이지 않는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는 법이다.” 희망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가 희망을 잘 찾으려고만 한다면, 희망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오영은 어머니 일하는 방송국 대기실에서 록 밴드 출신의 트로트 가수를 만났다. 트로트 가수가 자랑이 안 되는 거냐고 되묻는 그녀에게 오영은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예요.”라고 속으로 말한다. 자신의 담임교사가 자주 했던 말을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셈이다.

 

오영은 나중에 기간제 교사로서 학교의 바람직하지 못한 것들에 대항했던 담임교사를 잊겠다고 한다. 정의와 인권을 외치지만 정작 학생들한테는 애정을 크게 갖지 못했던 교사. 하지만 오영은 그 담임교사가 해주었던 말들을 자신도 모르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 담임은 참 독특하다. 자신의 사회적 신분이 프리랜서라는 것을 알아서 일까, 두려움이 없다. 잃을 게 없는 것이다. 담임교사는 사람은 놀려고 일하는 것이지 일하려고 노는 건 아니라고 했다. 오영은 1학기 담임이 그만두고, 2학기 담임이 오자 과한 애정으로 학생들을 돌보며 분노하고 상처 받는 교사와 정의와 인권을 외치지만 정작 큰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 담임 중 과연 누가 좋은 건지 고민한다.

 

책에선 농장을 하는 아버지와 잡초를 뽑고 작물을 키우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한 가지 상식을 얻은 부분이 있다. 농작물이 바짝 말라 보인다고, 햇볕이 쨍쨍한 날에 물을 주면 안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뜨거울 때 물을 주면 잎사귀에 붙은 물방울이 렌즈 역할을 해서 농작물이 타버릴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광합성에도 방해가 되고, 물의 증발이 빠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물은 저녁에 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교육이라는 작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힘들고 죽을 것 같아도 바로 해답을 알려주면 더 성장하지 못하고 고사(枯死)하는 건 아닐까.

 

책에는 정말 귀담을 말한 말들이 문득문득 나타난다. “심심한 걸 즐겨. 너 나중에 커보면 이 세상에서 걱정 없이 심심한 게 제일 큰 행복이란 걸 알게 될 거야.”, “연휴가 끝났다. 휴일의 반대말은 학교다. 그래서 학교에 갔다.”, “숨는다는 것은 눈을 감추고 귀를 연다는 뜻이다.”,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그 전에 고통이 있다.”, “가까운 걸 잃으면 또 다른 가까운 것이 보이는 건가 싶었다.” 아마 이 말들이 네 명의 작가들의 삶을 통해 배운 지혜가 아닐까.

 

지난해 초에 나온 『내가 나같지 않아서』라는 소설의 주인공 역시 오영이다. 이 친구는 이름답게 성적이 5등급이다. 이 땅의 모든 청소년들이 이 주인공의 소설들을 통해 삶의 희망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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