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벽에 등을 기대고 - 어느 혁필화상의 불법체류 호주 인생 이야기
조규태 지음 / 바른북스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호주에서 천신만고 끝에 영주권 얻어낸 ‘혁필화상’

[서평] 『바람벽에 등을 기대고』(조규태, 바른북스, 2018. 12.21)

 

1950년대 후반 어린 소년이 길을 걷다가 돗자리를 깔고 앉은 할아버지를 본다. 할아버지는 흰 종이 위에 새며, 꽃, 나비 등을 재빠르게 그려내고 있었다. 소년은 얼이 빠진 채 한참을 그림을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20년 뒤 소년은 평범한 미술 선생님이 되었고 여느 때처럼 길을 걷던 중 다시 한 번 혁필화 할아버지를 만난다. 그 순간 소년은 머릿속에 섬광이 번쩍였고 무작정 할아버지를 쫓아 배움을 요구했다. 할아버지는 소년에게 혁필 하나를 건네고 떠났다. 에세이『바람벽에 등을 기대고』의 저자 조규태 씨의 이야기다.

 

결혼 후 저자는 호주로 이민을 갔다. 하지만 정식 영주권이 없는 관광비자를 지닌 처지라 십여 년의 시간 속에서 수많은 설움을 당하게 된다. 호주에서 간판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사다리 밑으로 묵직한 시멘트 벽돌을 받쳐놓고 올라가 붓을 움직이는데 벽돌이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페인트가 눈과 상처로 들어가고 허리가 매우 아팠지만 불법 취업자이기에 병원을 가지 못한 채 통증이 계속되는 가운데 작업을 마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경쟁자의 불법체류 신고 협박으로 더는 간판 일을 하지 못하고 요양원 청소 일을 시작했다. 아내와 함께 새벽 5시 30분이면 일어나 기차를 두 번 갈아타며 한 양로원에 도착했다. 허리가 꺾이도록 침대 밑의 퀴퀴한 노인 배설물들을 닦아냈다. 아내는 나이 오십이 다 된 상태였다. 저자는 아내를 외국에까지 데려와 이런 청소 일을 시키는 것이 제정신인가 싶어 화가 났고, 자신이 한 가족의 가장이 맞나 싶어 분노가 치밀었다. 결국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지 못해 클리너 일을 그만두었다. 암흑 같은 시간 속에서 저자는 문뜩 파고다 공원에서 보았던 혁필화상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일이었다.

 



기술 하나를 믿고 시작하다

 

오직 자기 몸뚱이 하나뿐이었다. 스스로를 믿고 살아가야 했다. 다행인 건 혁필화에 대해서는 호주에 경쟁자가 없어 함부로 고발당하는 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 오랜 시간 연습에 몰두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길가에 자리를 잡은 채 그림을 그려나갔다. 온갖 잡념이 날아다녔다. 단속을 당하지나 않을까, 부정 상행위로 고발을 당하지나 않을까.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은 생각 이상이었다.

 

어떤 티셔츠 생산업체에서 저자의 혁필화로 상표를 찍겠다고 제안을 해왔고, 동업하자는 이들도 속속 찾아왔다. 또 자신의 상점 안에서 자릿세 없이 그려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60이 다 된 나이에 호주 신문에 기사로 실리기도 했다. 청소 일을 했을 경우 며칠 걸려야 벌었을 돈을 단 하루 만에 벌었다. 저자는 번 돈들을 아내 앞에 와르르 쏟아냈다. 그건 그간 호주에서 겪은 설움을 보상하는 선물과도 같았다.

 

그 다음 날 저자는 세인트 조직 은행의 지점장을 찾았고 준비해간 혁필화 몇 점을 보이며 은행 앞 공간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허가장을 받았다. 그건 저자에게 더없이 든든한 바람막이였다. 이때의 바람막이가 저자를 계속해서 그림 그리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혁필화에 관심을 가진 호주 청년 칼과 일본인 여자를 만나 기술을 나누기도 했다. 처음에 저자는 자신의 유일한 생활 기반이기에 쉽게 내어주어도 되나 갈등을 했다. 그러나 이 젊은 이들이 서구식 디자인의 과정이 배어 있는 또 다른 혁필화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었으며, 또 전수되지 않는 기술들이 그대로 끊기는 안타까운 사례도 많기에 하찮은 욕심을 피울 필요가 없었다.

 

10여 년 비영주권자로서의 설움들

 

저자는 영주권을 받기까지 맘 편한 날을 보낸 적이 없었다. 어떤 지인은 갑작스레 들이닥친 이민 경찰을 피해 3층에서 뛰어내렸다가 사망하기도 했다. 그들을 보며 저자는 “차마 눈 감지 못했을 나의 시신”을 떠올렸다. 영주권이 없어 비행기 타기도 힘들었다. 심사가 까다로웠기에 매사에 조심해야 했고 비영주권자임이 드러날까 봐 웬만해서는 밤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이민성에서 확인을 나올 때에는 급히 짐을 꾸려 이사를 해야 했다.

 

같은 인간이었지만 영주권이 없다는 이유로 마음은 한없이 가난해져갔다. 쇼핑센터에서 일을 하던 중 잠깐 한눈을 판 사이 가방을 도둑맞았다. 영어 노트, 혁필화 색소, 붓, 여권 등이 든 중요한 가방이었다. 상심에 절어있던 저자는 바로 옆 중국식당의 불법체류 중국인 3명이 잡혀가는 것을 보았다. 어느 날은 호주 청년 하나가 시비를 걸며 따라온 적이 있었는데 못 들은 척 했더니 얼굴을 가격 당했다. 이때 저자는 처음으로 미친 듯 소리를 질렀다. 불법체류자로서 이 외로운 땅에 살며 억눌렀던 분노들이 일시에 쏟아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쓰레기를 그리느냐고 험한 말도 숱하게 들었지만 무엇보다 같은 민족인 한국인에게 신고를 당했을 때 저자는 가장 가슴아파했다. 그리고 살아있기에 어쩔 수 없이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절망하는 나날도 있었다.

바람벽을 깨뜨리다

 

하지만 저자는 긍정적 마음가짐의 소유자였다. 혁필화를 그리는 처지에 대해 “어디 가서 막노동판을 전전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 곳의 문화도 느끼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벌이도 제법 쏠쏠하고 좋은 거야.”라고 생각하곤 했다. 또한 거리에서 예술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정식으로 허가장을 주는 시험에도 도전해 정당하게 일할 권리를 부여받기도 했다. 이때 저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조이던 구속에서 해방된 느낌이었다.

 

저자는 자신과 함께 고생해준 아내에 대해 애틋했다. 하지만 저자의 마음과 달리 아내는 점점 외로움에 빠지고 있었다. 결혼한 큰 딸이 불법체류자 자식이라는 이유로 시댁에서 핍박받고 이혼을 한 것에 아내가 충격을 받은 사건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10여 년 간 다닌 교회를 더는 나가지 못해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자신은 일 년의 반을 타지에서 보내고, 딸들은 각자 사느라 바쁘기에 아무도 아내를 챙기지 않았다. 그러던 아내는 이단에 빠져들었다. 아내를 격리시키려 했지만 그럴수록 아내는 저자를 외면했다. 웬만해서는 아내와 싸우려 하지 않았고 다행히도 조금씩 아내는 2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저자는 자식들이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오랜 세월을 호주에서 살았다. 마침내 자녀들이 모두 영주권을 얻고 저자와 아내도 기회가 생겼다. 저자는 끊임없이 이민청에 영주권 신청서를 보냈다. 자신에게 혁필화를 배운 호주 청년 칼과 목사님의 추천서도 실어서는 몇 차례나 도전했다. 그리고 2002년 9월 25일 마침내 정식으로 영주권자가 되었다. 아내는 울었다. 12년의 모든 고생이 끝난 것 같았다. 저자는 생각했다. 웨슬리 미션에서 봉사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고든 목사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혁필화를 가르쳐 달라고 조르는 칼을 무시해 버렸더라면 지금의 이런 날이 왔겠는가하고 말이다.

 

『바람벽에 등을 기대고』는 책 『앵무새 죽이기』와 비슷한 느낌의 문체를 가졌다. 영화 같은 개인의 삶이었다. 또 이민에 대해 로망을 품고 있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교과서였다. 이민자는 남의 영역에 들어와 먹고 살 것을 찾는 중에도 땅주인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챘다싶으면 도망가야 하는 신세와도 같았다. 저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국을 찾아보고 싶었던 친구와 친인척을 만났다. 그리고 다시 호주로 돌아왔다. 더는 이민경찰이 두렵지 않은 호주에서 저자는 지금도 예전과 같이 이름 없는 혁필화상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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