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불투명해도 괜찮아, 내가 선명하니까
릴리 지음 / 모티브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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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용기라는 단어였습니다.

그런데 흔히 생각하는 용기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거창한 결심을 하고 인생을 바꾸는 용기라기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일단 한 걸음을 내딛는 용기였습니다.

오히려 그런 용기가 훨씬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계획할 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직업을 가질지, 어디에서 살지, 얼마를 벌지, 언제 결혼할지, 노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까지 미리 정해놓아야 마음이 놓입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잘 살고 있다는 기준이 꽤 구체적입니다.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고, 적당한 나이에 자리를 잡고, 남들이 보기에 무난한 삶을 만들어가는 것.

그 궤도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괜히 불안해집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그 불안을 없애려고 애쓰기보다 불안을 안고 계속 움직입니다.

호주에서 일하고, 뉴질랜드에서 생활하고, 캐나다로 이동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만나고, 때로는 실패하고, 다시 다른 선택을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이 좋았습니다.

해외생활을 낭만적으로만 포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워킹홀리데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푸른 바다, 낯선 도시, 자유로운 여행,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실제 생활은 그렇게 아름답기만 할 수 없습니다.

비싼 렌트비와 고된 노동, 서툰 언어, 차별적인 말을 듣는 순간, 엉망인 직장, 불확실한 비자 문제, 외로움과 생활의 피로가 함께 따라옵니다.

이 책에는 바로 그런 현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저자의 선택이 더 진짜처럼 느껴졌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대단한 성공담으로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농장 일을 하다가 슈퍼바이저가 되기도 하고, 중고차 한 대로 생활반경을 넓히기도 하며,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견디다가 결국 다른 일을 찾아 나섭니다.

어떤 장면에서는 웃음이 나고, 어떤 장면에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사건을 지나고 나면 결국 하나의 생각이 남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삶을 살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해외생활 에세이들이 떠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는 식의 이야기에 집중한다면, 이 책은 떠난 이후의 생활까지 보여줍니다.

여행자는 낯선 나라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지만, 생활자는 그곳에서 월세를 내고 출근을 하고 사람들과 부딪힙니다.

여행의 풍경과 생활의 현실 사이에는 커다란 갭이 있습니다.

이 책은 그 갭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해외생활을 꿈꾸는 사람에게 더 현실적인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외국에 가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기보다, 장소가 바뀌어도 결국 가장 오래 함께해야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래가 선명해야 현재를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오히려 미래가 선명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의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순간에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지, 어떤 관계에서 행복하고 어떤 환경에서는 견디기 힘든지를 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철학적으로 생각해보면 삶의 방향은 처음부터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나를 찾는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자신은 어딘가에 완성된 형태로 숨어 있는 존재가 아닐 것입니다.

수많은 선택과 실패와 망설임을 통과하면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존재에 가깝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말하는 나답게 산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아는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모르는 상태를 견디면서도 남이 정해준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더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삶에는 정답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정답이 있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몇 살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느 시기에는 어느 정도의 돈을 벌어야 하며, 언제쯤 안정되어야 한다는 기준을 만들어놓습니다.

그러다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자신이 뒤처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안정적인 직장이 가장 중요한 삶일 수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나라에서 낯선 일을 경험하는 것이 더 중요한 삶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더 옳으냐가 아니라 그 삶을 선택한 사람이 자신의 선택을 얼마나 자기 것으로 살아낼 수 있느냐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고 싶은 사람들만을 위한 책으로 읽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금 자신의 삶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모든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는 분들, 남들이 보기에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마음 한쪽이 계속 답답한 분들, 이미 한 번 정해놓은 인생의 계획에서 벗어나면 실패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의미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지만 너무 늦은 것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에 망설이는 분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 것 같습니다.

반대로 이미 해외생활을 경험한 분들에게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겪었던 외로움이나 황당한 사건, 돈 때문에 마음 졸였던 순간, 한국 사람이 그리웠던 순간들이 각자의 기억과 겹쳐지면서 책 속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저자에게 호주와 뉴질랜드, 캐나다에서 보낸 8년은 아마도 수많은 사건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그 8년은 결국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처럼 보였습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뿐만 아니라 무엇을 싫어하는지도 알게 되고, 무엇을 견딜 수 있는지뿐만 아니라 무엇만큼은 견디고 싶지 않은지도 알게 되는 시간 말입니다.

어쩌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점점 선명하게 알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래가 선명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계획이 자꾸 틀어져도 괜찮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늦어도 괜찮습니다.

잠시 길을 잃어도 괜찮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면, 삶은 이미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본 리뷰는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 이벤트를 통해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 받은 후 솔직하게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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