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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맛
손미주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8월
평점 :
본 리뷰는 네이버 카페 북유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 받은 후 솔직하게 작성한 것입니다.

저자가 들려주는 음식과 관련된 지극히 사적인 추억과 함께 그 음식이 걸어온 내력까지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흥미로운 책이 될 것 같아 기대되었습니다.
저자 개인의 식탁 서사는 물론이고 음식의 역사, 그리고 제 추억까지 떠올려 가며 의미있게 읽어 보았습니다.

음식에 관한 책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음식에 관한 책임에도 음식보다 사람이 더 진하게 보이는 책이었습니다.
음식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한 개인의 삶을 엿보느 느낌이었고 또 그것을 통해 제 자신의 추억까지 들여다보게 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추억속의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어떤 음식은 이상할 만큼 오래 기억됩니다.
그 이유는 맛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음식을 먹던 때의 분위기와 함께했던 사람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된장찌개 냄새 하나에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고, 어느 날 갑자기 먹고 싶어진 떡볶이에 잊고 지냈던 추억이나 그때 함께했던 사람이 떠올랐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음식에 대한 기억은 미각에 대한 기억보다 삶에 대한 기억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음식을 매개로 자신이 지나온 계절과 관계와 상실, 그리고 견뎌온 날들이 보여 줍니다.
특히 책의 출발점인 할머니의 부엌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적인 중심처럼 느껴집니다.
작은 부엌에서 만들어진 음식이 한 사람의 인생에 이렇게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할머니가 건네던 음식에는 레시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할머니의 사랑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너무 늦게 알아차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밥 한 끼가 사실은 누군가의 수고였다는 것, 아무렇지도 않게 받았던 반찬 하나가 그 사람의 하루를 온전히 담아낸 결과였다는 것 말입니다.
어릴 때는 사랑이 거창한 말이나 특별한 사건의 형태로 오는 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사랑은 오히려 매일 반복되는 사소한 일상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음식 또한 바로 그 지점을 관통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의 매력은 개인의 기억을 역사와 연결하는 방식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음식 에세이라고 하면 대개 맛있는 음식, 추억, 감성, 여행 등과 연계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만 정리하지 않습니다.
음식을 통해 역사, 사회 변화, 정책, 생활사 등 다양한 흔적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부분이 이 책을 다른 음식 에세이와 구별하는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의 추억은 흔히 아주 사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시대가 들어 있기 마련입니다.
한 사람의 밥상이 결코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음식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매개체였습니다.
저자는 할머니의 부엌에서 출발해 오래된 자료와 기록을 찾아가지만 결국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옵니다.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음식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음식의 역사를 들여다본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음식이 생존과 사랑 사이에 놓여 있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먹어야 살 수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먹었는지를 기억하는 순간 음식은 단순한 생존의 수단을 넘어섭니다.
누군가를 위해 만든 음식은 관계가 되고 함께 먹은 음식은 추억이 됩니다.
혼자 먹었던 음식은 때로 외로움으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같은 음식도 누구와 언제 어떤 마음으로 먹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으로 기억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자는 결국 우리에게 어떤 맛이 남아 있는지 묻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음식 이름보다 사람이 먼저 떠오르게 됩니다.
어린 시절의 나, 과거의 나, 실패했던 나, 누군가를 사랑했던 나,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던 나, 그리고 지금의 나까지 말입니다.
아마 기억이란 과거를 그대로 보관하는 일이 아니라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다시 이해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나이가 들어 다시 맛보면 전혀 다른 감정이 밀려오는 것도 그래서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음식에 대한 책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기억하는 방법에 대한 책으로도 느껴졌습니다.
무엇을 먹었는지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먹으며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를 기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가족의 밥상이 그리운 분들, 부모님이나 할머니의 손맛을 떠올리면 마음 한켠이 아려오는 분들에게 이 책이 의미있을 것 같습니다.
자취와 직장 생활을 하며 혼자 끼니를 해결해온 분들도 뭔가 깨달음을 남기게 되는 지점이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해 한번 되묻고 싶은 이들에게도 기억을 소환하는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일상적으로 마주했던 식탁 위 음식들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질 것입니다.
무심코 생각했던 한 끼의 소중함을 깨닫고 나를 찾아온 수많은 기억의 맛들을 정리해보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져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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