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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였던 날들
AJ 덩고 지음, 임슬애 옮김 / 미메시스 / 2026년 9월
평점 :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고 넷플릭스가 영화 판권까지 확보했을 정도로 이미 검증된 작품이라 기대를 가지고 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파도처럼 찾아오는 상실과 애도를 그래픽 노블로 어떻게 표현해냈을지 궁금해하며 의미있게 읽어 보았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바다를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평소 바다는 그저 아름답고 넓은 풍경이었지만 이 책을 읽은 뒤의 바다는 조금 더 깊은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밀려오고 부서지고, 물러났다가 다시 밀려오는 파도처럼 우리의 삶에도 마음대로 멈출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랑도, 기억도 그리고 무엇보다 상실이 그렇습니다.

이 책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다루면서도 죽음을 이야기의 중심에 세우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흔히 상실을 다룬 작품들은 죽음의 비극과 남겨진 사람의 슬픔을 부각시킵니다.
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그 반대의 길을 선택합니다.
어떻게 죽어갔는가보다 어떻게 살아 있었는지를 더 오래 바라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세상을 떠난 한 사람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다를 사랑했던 한 인간이 기억에 남기게 됩니다.
저는 이런 지점이 이 책의 가장 아름다운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했던 사람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얼마나 빛났는지를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크리스틴은 자신의 몸이 점점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몸이 불편해지고 수술을 여러 번 겪었음에도 그녀가 바라보는 곳에는 여전히 바다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서핑은 단순한 취미가 아닙니다.
어쩌면 서핑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자신의 몸으로 확인하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파도는 결코 우리 뜻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파도의 높이는 물론이고 언제 밀려올지도 우리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서퍼가 할 수 있는 것은 파도를 완벽하게 예측하고 읽는 것이 아니라 파도가 오는 순간 몸을 자연스럽게 맡기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우리 삶과 많이 닮아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수많은 파도를 만납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병이 찾아오기도 하고 다양한 상실과 아픔, 이별, 죽음, 실패 등과 마주해야 하는 순간이 예기치 못하게 찾아옵니다.
우리는 흔히 좋은 삶이란 이런 파도가 없는 삶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무런 불행도 찾아오지 않고 예측하고 계획한대로 흘러가는 것을 바라곤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런 삶이 진정 좋은 삶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삶의 문제는 파도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파도가 올 때마다 우리가 그것을 없애려고만 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파도를 막을 수 없다면,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파도를 멈추게 하는 힘이 아니라 파도와 함께 흔들릴 수 있는 힘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애도에 관한 책이면서 조금 더 넓은 의미로는 삶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한 책으로 느껴졌습니다.
상실의 고통과 슬픔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느 날에는 괜찮은 것 같다가도 아주 사소한 기억 하나 때문에 갑자기 다시 밀려오기도 합니다.
숨겨져 있던 작은 기억을 하나 건드리면 슬픔은 다시 파도처럼 밀려 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애도에는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슬픔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야 하고 언젠가는 아무렇지 않아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정말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뒤에도 아무렇지 않아지는 것이 결론이어야 하는 것인지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히려 슬픔이 찾아와도 그것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상태, 그리움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상태가 진정한 애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파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파도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하나는 그 사람의 존재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기억하는 것입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어쩌면 사랑의 마지막 형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그림과 글을 통해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것이 예술, 그림, 문학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한 사람의 가장 사적인 슬픔이었을 것이 이 책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보편적인 감정으로 바뀌게 된 것 같습니다.
파도는 계속 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파도가 오지 않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바다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고 다시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랑했던 사람은 떠날 수 있습니다.
함께했던 시간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사랑했던 시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 속에는 이미 떠난 사람과 함께했던 추억들이 담겨 있을지 모릅니다.
독보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그림체와 색감에 빠져, 상실에 대한 인간 근원의 고통을 깊이 생각해보는 의미있는 시간을 이 책과 함께 가져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본 리뷰는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 이벤트를 통해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 받은 후 솔직하게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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