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발견 - 상실, 그 이후의 삶을 헤아려본 과학의 응답
바버라 블래츨리 지음, 제효영 옮김 / 디플롯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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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상실, 슬픔, 애도에 대한 뇌과학적 접근을 바탕으로, 그 이후의 삶까지 들여다 볼 수 있고,

슬픔의 매커니즘을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가 따라올 것 같아 기대를 가지고 읽어 보았습니다.


누구나 이미 적어도 한 두번쯤은, 아니면 앞으로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부재를 겪을 것입니다.

주변의 수많은 사람 중 단 한 사람과 손을 놓았을 뿐인데,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던 느낌.

그 무자비하고 압도적인 고통 앞에서 세상이 건네는 시간이 약이다, 산 사람은 또 어떻게든 살아가게 된다는 무책임한 위로들은 결코 상처를 보듬어 주지 못합니다.

저자는 바로 이 무너지기 직전의 절망 끝에서 이 책을 시작합니다.

36년을 함께한 남편을 잃은 저자는 감당할 수 없이 밀려드는 공허로부터 도망치는 대신 자신이 평생을 바쳐온 과학이라는 어쩌면 세상의 가장 차가운 언어로, 가장 뜨거운 자신의 내면 심연을 들여다봅니다.

사실 이성적인 영역인 과학과 감성적인 영역인 슬픔은 서로 극단에 위치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저자가 들려주는 뇌세포의 반응, 신경전달물질의 변화, 그리고 진화생물학적 모형을 통해 슬픔의 궤적을 쫓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역설적이게도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정직한 위로를 받게 됩니다.

이 책은 슬픔을 치료해야 할 무언가나 극복해야 할 무언가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괴로운 감정이야말로 인간이 타인과 맺을 수 있는 가장 깊은 연결, 즉 사랑의 반대편이라는 것을 증명해 냅니다.


이 책의 도움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슬픔을 철학적으로 생각해보게 됩니다.

세상을 떠난 이는 물리적으로 더 이상 이곳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부재가 만들어낸 거대한 고통은 너무나 선명하게 지금 우리에게 살아있습니다.

사별한 이는 부재라는 거대한 공허를 통해 역설적으로 그 사람이 존재했던 무게를 매순간 실존적 감각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하이데거가 말했듯 인간은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사유존재지만,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통해서만 나의 유한성을 비로소 생생하게 체험하게 됩니다.

타인의 상실이 가져오는 슬픔은 나라는 존재의 한계를 자각하게 만들고, 우리 내면을 강제로 가라앉혀 존재의 본질에 집중하게 해줍니다.

저자가 인용한 조지 보나노 교수의 말처럼, 슬픔은 우리에게 할 일을 제공합니다.

그 할 일이란 다름 아닌 세계의 재구성일 것입니다.

우리를 지탱하던 신념과 예측이 산산조각 난 폐허 위에서, 이제는 그 사람의 부재마저도 우리 삶의 일부로 품어 안은 채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상실이라는 절망 속에서 찾아내는 존재론적 용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슬픔은 결코 지워내야 할 오답이 아닙니다.

상실 이전에는 내가 누구인지 굳이 묻지 않았던 사람이 상실 이후에는 나는 이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묻게 됩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누구와 관계를 맺고 싶은지, 앞으로 어떤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싶은지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슬픔은 삶을 멈추게 하는 감정인 동시에 삶을 다시 질문하게 하는 감정이기도 합니다.

한편 슬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한때 타인에게 내 세계의 일부를 완전히 내어줄 만큼 용감하게 사랑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사랑이 없었다면 슬픔도 없었을 것이고, 슬픔이 끝나지 않는다면 그 사랑 또한 우리 안에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과학이라는 이성적이고 차가운 언어로 시작된 이 이야기는 결국 사랑과 슬픔은 동전의 양면이자 영원한 한 쌍이라는 철학적 명제에 다가서게 해 줍니다.


어쩌면 삶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상실 이후에도 다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실 이전과는 다른 내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조금 절뚝거리더라도, 때로는 뒤를 돌아보더라도,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걷게 됩니다.

그리고 그 걸음 속에는 떠난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에게 스며들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아마도 사랑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흔적일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세상을 먼저 떠나보낸 이들에게 보내는 다정한 위로일 수도 있고, 언젠가 찾아올 상실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누군가를 위한 백신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 가장 차가운 과학이 건네는 뜨거운 슬픔에 대한 이야기 속으로 많은 분들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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