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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모털리티 - 나이가 사라진 시대의 등장
캐서린 메이어 지음, 황덕창 옮김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저는 나이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저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한데요. 예를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만약 2013년 2월 27일에 태어난 아이와 2013년 3월 2일에 태어난 아이가 있다고 치겠습니다. 이 둘은 태어난 날짜가 일주일채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두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선배와 후배가 됩니다. 또 2012년 3월에 태어난 아이와 2013년 2월에 태어난 아이가 있다고 치겠습니다. 이 둘은 태어난 날짜의 차이가 11개월임에도 학교에 입학하면 동기(친구)가 됩니다. 태어난 날짜에 따라 일주일 차이가 선후배가 되는 반면, 11개월의 차이가 동기(친구)가 되는 것이죠.
생물학 혹은 의학적으로 살펴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50세의 남성이라도 건강상태에 따라 어느 사람은 신체나이가 40세일 수도 있고, 45세일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은 뒤집어 보면 사람이 같은 날에 태어나더라도 신체의 시간은 저마다 다르게 흘러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회적인 이유에서(법적, 제도적인 편의성 등) 태어난 시각에 따른 나이를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요.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나이’라는 것이 인생의 기준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10대에는 반에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올려야 하고 20대에는 대학과 취업을, 30대에는 결혼과 아이를, 40대에는 꽤 괜찮은 자동차와 집을 가져야 한다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이런 기준선에서 이를 벗어나면 모두가 걱정하고 난리가 나죠. 올해 초에 설을 맞아 한 취업 포털사이트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미혼 남녀가 명절에 가장 듣기 싫은 말 1위가 결혼이야기(47.3%), 기혼 남녀가 가장 듣기 싫은 말 1위가 출산 관련 이야기(13.3%)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되는 모습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약 10여 년 전의 한 통신사 광고처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실제로 나이와 관계없이 옷을 입고 취미생활을 즐기는 모습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는 나이에 대한 폭넓은 생각을 사회가 받아들이고 있기에 가능한 변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생각들을 갖고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사라진 시대의 등장’이라는 문구와 ‘어모털리티’라는 제목의 의미를 알고서는 어느 정도 책의 내용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어모털리티 Amortality: 죽을 때까지 나이를 잊고 살아가는 현상을 의미하는 신조어.
어모털족 Amortals: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같은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을 이르는 신조어.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어모털리티에 대한 저의 생각은 점점 몽매해졌습니다. 저자는 결혼, 가족, 종교, 일 등 사회 전반에 걸쳐 폭넓은 현상들을 어모털리티라는 하나의 현상으로 묶어 설명하는데, 이것을 이해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저자는 핵가족화, 낮아지는 출산율, 입양 가족의 증가, 자녀의 독립이 늦어지는 현상, 외동 아이의 증가 등을 ‘가족의 재구성’으로 한데 묶어 어모털리티 현상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단지 나이를 잊고 사는 사회적 현상뿐만 아니라 수많은 이유가 얽혀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 역시 이를 알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경우 30~34세의 남자들 가운데 3분의 1이 아직도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이탈리아어로 마마보이를 뜻하는 맘모니mammoni들은 사춘기 시기의 누에고치 속에 웅크리고 있도록 허락 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패턴이 많은 다른 문화권과 다른 가족 형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의 근본 원인은 실업률이 늘어나고 적당한 거처가 부족해지기 때문이며, 어모털리티 역시 여기에 한몫을 하고 있다. (p.126)
위의 이탈리아 사례는 우리나라의 ‘캥거루족’과 비슷한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자립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부모에게 의존하는 생활을 하는 사례를 뜻하는 것이죠. 이는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실업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나이를 잊고 사는 현상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와 이탈리아 모두 고용시장, 특히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점만 보아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이탈리아의 경우 2013년 1월 기준 전체 실업률은 11.7%, 청년 실업률은 38.7%로 발표되었습니다).
또한, 핵가족화나 출산율 감소 등의 현상은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여기에도 여러 이유가 얽혀있을 수 있지만,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과거의 농업 중심 사회에서는 많은 일손이 필요했습니다. 한 가정의 가족 수는 그 가정의 노동력을 뜻하기도 했죠. 또한, 갑작스러운 질병 등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확률(?)면에서 중요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도시사회에서는 정반대가 됩니다. 도시 사회에서 가족의 수는 노동력보다는 부양해야 할 대상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경제조건 내에서 가정을 꾸리게 되고,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과거처럼 많이 낳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죠. 이 이외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이유에 대한 설명 없이 단순히 어모털리티라는 현상만으로 설명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저자의 또 다른 주장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자신보다 비교적 나이가 많은 유명스타들을 따라 하는 10대가 늘고 있는 현상이나 젊은 세대처럼 옷을 입거나 취미활동을 갖는 부모세대의 모습을 보면, 저자의 주장대로 나이를 무시하고 그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사춘기의 시기가 낮아지는 변화(p.94)가 나타나고, 나이와 관계없이 남성들도 피부미용에 많은 지출을 한다는 기사까지 더해지면, 저자의 말에 딱 들어맞게 됩니다.
그러나 10대와 부모세대 모두 단순히 나이를 잊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나이’ 혹은 ‘세대’를 향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세대가 젊은 세대처럼 옷을 입기는 하나 어린이처럼 입으려 하지는 않습니다. 10대들 역시 성숙해 보이려고는 하나 자신들의 ‘할머니, 할아버지’ 혹은 어르신 세대로 보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즉 이는 나이를 잊고 사는 것보다는 아름답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의 아름다움은 미디어 등을 통해서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된 어떤 ‘시기(예를 들어 20~30대)’의 젊음일 가능성이 크고요. 그래서 10대는 성숙해 보이기 위해, 부모세대는 젊어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새로운 현상이냐는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이는 오래전부터 인간이 본능적으로 추구하던 것이며 유전자에 각인된 특성이지,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닙니다. 깨끗한 피부나 균형 잡힌 얼굴 등은 건강하다는 신호로 인식되기 때문에 인간이 유전적으로 이를 선호한다는 것이 진화심리학의 주장입니다.
이처럼 사회 곳곳에 나타나는 현상들을 ‘어모털리티’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저자의 주장에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저자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상만 말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한 설명이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저자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나이에 대한 인식은 변화하고 있으며, 이에 따르는 사회적·도덕적 제약도 점차 느슨해지고 있다는 생각은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로도 제작된 <은교>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가 20년 혹은 50년 전에도, 과연 사람들이 지금처럼 받아들였을까요?
<박범신 작가의 『은교』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출처: 알라딘)>
젊음을 향한 노년의 사랑을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도 나이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한몫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나이에 대한 인식의 변화’라는 저자의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사회의 여러 현상을 ‘어모털리티’라는 개념으로 모두 설명하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저자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에는 좀 더 많은 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는 생각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면, 아마도 눈에 보이지 않거나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혹은 우리가 보지 않으려는 모습들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사람들의 모습과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모습들을 이해하는 데는 충분히 도움이 될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족) ‘나이가 사라진 시대(책의 표현을 빌리자면)’가 등장했음에도 어느 때보다 나이를 강조하는 책(예: 20대에는 무엇을 시작하라, 30대에는 무엇을 준비하라, 40대에는 무엇을 하라)이 많이 쏟아지는 지금의 모습에 대해서 저자는 뭐라고 할까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