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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제국의 몰락 - 70년간 세계경제를 지배한 달러의 탄생과 추락
배리 아이켄그린 지음, 김태훈 옮김 / 북하이브(타임북스)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올해 8월 무디스, 피치와 함께 3대 국제 신용평가사인 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흔들렸습니다. 이는 1941년 S&P의 설립 이래 70년 만에 처음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무디스와 피치는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하지 않았음에도 파장이 적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국가 신용등급의 사전적 정의는 ‘한 나라가 채무를 이행할 능력과 의사가 얼마나 있는지를 등급으로 표시한 것으로 '해당 경제 내에서 외화표시 채권 발행에 대해 어떤 경제주체가 받을 수 있는 최상의 신용등급'을 의미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국가 신용등급이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라면 S&P의 이러한 조치는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S&P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한 까닭은 미국이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재정적자 문제와 이를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을 포기하고 달러를 끊임없이 찍어내기만 한다면 빚은 모두 갚을 수가 있습니다. 즉, 결국 미국이 빚을 갚지 못하는 일은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이죠. 이처럼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를 보유함으로써 엄청난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매년 무역흑자를 외치고, 달러를 축적해야 하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달러가 기축통화로 쓰임으로써 미국이 누리는 혜택을 모두 열거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세계 각국의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더 이상 미국에게 의존하지 않고 달러를 보유통화로 축적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생활수준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 지를 예측해보면 미국이 누리는 혜택을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의문의 여지 없이 미국인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것이다. 해외투자자들이 달러에 대한 식탐을 버린다면 미국은 더 이상 총생산보다 1조 달러나 많은 소비와 투자, 수출보다 1조 달러나 많은 수입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별다른 대가 없이는 GDP의 6퍼센트에 달하는 경상수지 적자를 내지 못할 것이다.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더 많이 수출해야 할 것이다. 금융위기가 발생할 무렵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GDP의 6퍼센트인 1조 달러였다. 금을 제외한 전체 보유고가 연간 5,000억 달러씩 증가하고 그 중 3분의 2가 달러인 점을 감안할 때 상응하는 지출 감소액은 5,000억 달러를 약간 밑돌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출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수출경쟁력을 강화하려면 효율을 높이거나 비용을 줄여야 한다. 물론 비용 절감보다 효율 개선이 더 행복한 대안이 될 것이다. 그러나 효율 개선은 그저 바란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국제수지를 개선하려면 경쟁국들보다 더 빨리 효율을 개선해야 한다.(p.285)
때문에 이에 대해 다른나라들은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왔으며, 중국은 위안화를 유럽은 유로를 기축통화로 만들려하고 있습니다. 이 책 <달러 제국의 몰락>의 저자 배리 아이켄그린 역시 이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습니다. ‘복수의 국제통화가 공존한느 시대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유로는 그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중국도 복수의 국제통화가 공존하는 시대를 추구한다. 중국의 의도는 달러의 왕좌를 박탈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중국은 지나칠 만큼 달러에 투자한 상태다. 그러나 중국은 달러 투자의 가치를 유지하면서 위안화에 보다 국제적인 역할을 얼마든지 부여할 수 있다. 인도의 루피나 브라질의 헤알같은 신흥국 통화들도 위안화가 나아간 길을 따를 것이다.(p.28)’ 라고 말한 것처럼 저자는 복수의 국제통화가 등장할 경우 세상은 적어도 금융상으로는 더욱 안전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다만, 달러의 몰락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즉, 달러가 쉽게 몰락할 일은 일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죠. 이것이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핵심이 아닐까 합니다.
달러가 쉽게 추락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달러를 대체할 통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최근 유럽과 미국의 경제가 흔들리자 글로벌 외환시장의 전통적인 핵심 통화인 G3 즉, 달러와 유로, 엔화에 대한 투자를 대체할 통화로 S3가 부상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저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 듯 보입니다. 우선, 영국의 파운드와 스위스의 프랑이 보조적 지위를 넘어서기에는 영국과 스위스의 경제 규모가 너무나 작다는 것입니다. 국제금융계가 요구하는 규모의 채권을 제공할 만한 규모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죠. 경제규모가 이보다 작은 나라들은 말할 필요도 없음은 물론이구요. 일본은 이에 비해 경제규모가 확실히 크긴 하지만, 기존의 산업정책을 고수하기 위한 일본정부의 입장, 10년에 걸친 경제성장 둔화와 제로금리로 인한 매력 상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령화가 진행 중인 인구구조상 일본의 엔화가 국제통화로 부상하기에는 힘들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때문에 가장 기대를 할 수 있는 통화는 유로, 위안화, 그리고 IMF의 특별인출권입니다만, 이들 역시 많은 문제점과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달러에 견줄만한 위치에 오르기는 힘들어 보인다고 합니다. 금과 다른 실물자산들은 저마다 한계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달러를 대체할 수는 없어 보이구요. 게다가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저마다 현 상황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이는 달러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요소입니다.
결국 저자가 ‘달러가 몰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그 몰락은 미국의 잘못이다. 중국이 달러를 몰락시키지는 않을 것이다.(p.29)’ 라고 밝힌 바와 같이 미국 스스로 무너질 수는 있어도 다른나라에 의해서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이에 대한 가능성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정치적 분쟁에 의한 달러의 폭락입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문제인데, 이미 중국은 미국의 달러를 지나치게 많이 보유하고 있고, 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달러의 폭락은 중국에도 좋지가 않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미국과 중국의 역학관계상 정치적 분쟁에 의한 달러의 폭락은 가능성이 그리 많지 않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두 번째는 시장패닉 즉, 시장심리의 급변으로 달러가 폭락하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 연준의 개입으로 달러의 가치를 방어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다른나라들 역시 미국과의 공통된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에 이를 도울 것입니다. 즉, 두 번째 시나리오의 가능성 역시 무게를 두지 않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가능성은 바로 미국의 재정정책입니다. 이것이 저자가 가장 무게를 두고 있는 시나리오이구요. 현재 미국은 고질적인 재정적자 문제에 허덕이고 있으며, 재정 상황은 세 가지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첫째, 금융위기 전에 사정이 심하게 악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2000년대 초에 이루어진 감세, 의료보장 혜택의 증가, 두 번의 전쟁 등으로 인해 재정적자가 극도로 심해졌다는 것이죠. 둘째, 금융위기로 인해 재정적자가 심화되었습니다. 이는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규모가 너무 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마지막 셋째는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은퇴하는 2015년 무렵이 되면 의료보장비용과 연금비용 때문에 재정적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기축통화로 인한 혜택을 톡톡히 누리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이 책 <달러 제국의 몰락>의 전반부는 달러가 어떻게 파운드를 밀어내고 기축통화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브레튼우즈 체제와 스미스 소니언 체제, 신(新)브레튼우즈 체제를 거치면서 국제금융시장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달러의 가장 강력한 경쟁통화인 유로는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으며, 그 이면의 정치적 상황은 어떠했는지를 설명합니다. 후반부에서는 현 상황과 미래에 대한 예측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분명히 달러라는 통화를 이해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될 만한 도서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이 책은 지극히 미국의 입장에서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고 우리나라의 입장을 반영하기에는 조금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결국 다른 나라들만의 이야기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이러한 것들 때문에 너무 큰 상처를 입어왔으며, 이는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원화가 국제통화가 될 수 없다면, 기축통화의 변화에 대한 대비라도 튼튼히 해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은 우리나라가 외풍에 의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