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아버지가 세계를 보는 방식이었다. 자신의 의지와 그것을 꺾는 세계의 이야기가. 아버지는 나도, 그리고 세상 어떤 사람도 ‘여자인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큰 어려움‘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보스망스는 대화 중에 슈브뢰즈라는 지명이 나온 것을 기억했다. 그러고 나자 그해 가을도 떠올랐다.
바닷마을 언니의 소식을 들은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내게 그런 언니가 있다는 사실도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오래전 언니의 결혼식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언젠가 몰래 훔쳐본 수진 언니의 일기장에는 ‘잘못한 사람도 없고 당한 사람도 없고 세상은, 그냥 그렇게 모두가 똑같은 인간으로 살다 가는 것일 뿐일까‘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말을 오랫동안 기억했다. - P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