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에게 그 사람은 봄이었다. 
봄은 언니를 들뜨게 하고 꿈꾸게 하는데 
그 사람도 그렇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서 나는 
그를 봄씨, 라고 불렀다.

언니는 여전히 내 눈길을 피하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이방인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마음이 편해. 
나는 한국이 너무 답답하거든.

여기도 한국이잖아.

외국인이 많잖아. 
그들한테 한국은 
스쳐 지나가는 장소일 거야.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
한곳에 머물며 
모든 것에 마음 쓰고 싶지 않아. - P41

하지만 언니, 
나는 정말로 한 번도 사랑을 고백해본 적이 없어. 
이제까지 딱 세 번 연애했는데 
죄다 고백을 받았어. 
누군가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마음을 활짝 열어. 
과할 정도로 많이 열어. 
연애를 시작하면 매번 양보만 하고, 
내가 원하는 건 일기장에 써. 
어쩌면 나는 언니보다 
사랑에 서툰 사람인지도 몰라. 
나를 사랑하면서 상대도 사랑하는 법을 몰라. 
그래도 나는 이별 하나는 잘해. 
빠르게 잘 잊고, 두 번 다시 연락 안해. 
관계의 시작과 단절이 명확한 사람이야 - P95

어쩌면 언니를 그런 시선으로 보는 사람은 
나뿐인지도 모른다. 
언니의 과거를 잘 알고 
현재의 마음도 안다고 섣불리 짐작하며, 
언니가 자신의 추억들 중에서 
무얼 잊고 기억해야 하는지 선별해주는 폭군인지도. 
그러면서도 언니에게 내가 무해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건지도.
정작 언니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나는 까맣게 모를 수밖에 없는데, 
그토록 잘난 척은.
아는 척은. 
잘 살아가고 있는 척은. 
어른인 척은. - P9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짐짓 명랑하게 이 모욕을 
관까지 가지고 가지 말라고 했다. 
흔쾌히 말을 꺼내고, 듣고, 보이는 것도 
일종의 치료나 다름없다. 
마음이 찢어지고 분노가 치밀지만 
어머니에게 부담을 주고싶지 않았기에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대신 어머니를꼭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가 마음 아파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어머니는 수목장 자리가 아버지로부터 
멀면 멀수록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다음 생에 아버지를 만나지 않는 게 
가장 큰 소원이라는 점은 
우리 가족 모두 확실히 알고 있었다. - P159

우리는 어머니의 생전 장례식을 치르며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떠나기 전, 
고단했지만 아름다웠던 일생을 
함께 웃으며 회고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말했다.

"아주 만족스럽다! 
난 훌훌 떠날 테니 울지 말거라." - P1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잘 읽히는 글로써도 좋고 공감되는 내용으로도 좋은 글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래요! 우리가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환자는 고개를 들어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드디어 누가 나를 알아주는구나‘ 하는 표정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가족은 한숨을 푹 쉬었다.
˝오늘 아침에 아버지가 벽에 머리를 쿵쿵 박았어요. 너무 괴로워서 일찍 떠나고 싶어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6p

최대한 죽음을 살지 않으려고 연명의료사전동의를 때때로 갱신하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법으로는 병원사는 쉽지 않아요. 가족 누구도 무게를 지지 못한다면 죽음에 묶인 삶을 평균 8년, 또는 그 이상 유지해야 한다는 게 끔찍하답니다.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정신이라도 깨어 있다면 최후의 수단이 단식일 수 있겠다 생각했었는데 단식존엄사를 생각한 사람들이 역시 있었네요. 자존이 가능한 삶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확대되길 바래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은 선에 대해 알지만, 선은 악에 대해 알지 못한다. - P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