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죽고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나는 그가 살던 집 앞을 지나치다 문득 얻어맞은 기분이 되었다. 그가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면서 ‘왜 저 여자는 나와 친해지고 싶어 하지 않는 걸까?‘ 궁금해할 일이 다시는 없으리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러자 그가 그리웠다. 몸서리쳐질 만큼 그리웠다. 그는 우연하고 사소한 만남들의 풍경으로부터 사라진 것이었다. 오직 거리에서 내가 오는 걸 볼 때만 나와 연결되는 모두의 변함없는 힘을 날마다 일깨워주는 그 풍경으로부터 - P-1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고개를 들어 나를 본 두 남자가 씩 웃었다. 그들 얼굴에 만족스러움이 번졌다. 그들은 공연을 했고, 나는 그 공연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혼돈 속에서 그냥 증발해버렸을지도 모를 그 주고받음에 내 웃음이 형태를 부여해주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덜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 P-1
내가 바라보자, 체호프의 문장이 나를 마주 보았다. ‘남들은 나를 노예로 만들었지만 나는 내게서 그 노예근성을 한 방울 또 한 방울 짜내야만 한다.‘ 나는 1970년대 언젠가 그 문장을 책상 앞에 압정으로 고정해 두었지만, 내 두 눈은 10년 넘게 그 문장을 따분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그제야 정말로 읽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를 구원해주는 것은 ‘일‘이 아니었다. 매일의 고생스러운 노력이었다. - P-1
통찰은 그것만으로는 구원이 되어주지 못했다. 나는 날마다 새롭게 말끔해져야 했다. 걷는 일이 나를 정화시켜주었고 깨끗이 씻겨주었지만 오직 그날뿐이었다. 그 일이 매일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걸어야 할 운명이었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과 함께 살아야 할 운명이라는 것.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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