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제때 알았더라면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가만 놔두지 않았을 거라고.
그리고 그런 야만적인 일들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맹세했어.
하지만 야만은 끄떡없이 버티고
영향력을 행사해
무수한 추종자를 만들어 냈고
시체 더미들은 늘어만 갔지.
그렇다고 나머지 사람들이
- 우리를 포함해서 말이야 - 무릎을 꿇고
치욕과 고통의 피눈물을 흘리거나
살인자들에 맞서 무기를 들지는 않거든.
이 나이가 돼서도
인간의 난폭한 광기엔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아요.
무수한 이들의 마음속에
감춰진 분노는 뭐며,
또 다른 무수한 이들의 마음속에서 뒹구는
엄청난 비굴함은 또 뭔지...... - P75
이 시대에 만연한 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세월을 보냈다고 말했어요.
무수한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 마당에
그렇게나 오래 산 게 부끄럽다고,
가슴속에서 불길이 솟구친다고,
세상에 들끓는 도살자 무리가
쉴 새 없이 맹위를 떨치며
이 불을 계속 타오르게 한다고
되풀이해 말했어요.
책들이, 그가 평생 동안 읽고
깊이 생각하고 사랑했던 책들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라고요.
단어와 시가 타들어 가고,
다른 이들의 말이 타들어 가고,
웃음과 노래가 타들어 가고,
언어가 타들어 가는 걸 느낀다고요.
내면에서 감지되는
악의 공포가 너무 생생해,
자신이 읽고 배우고 사랑했던 그 무엇도
이 공포를 잠재울순 없다고.
언어가 그의 살과 영혼 속에서
불길에 삼켜져버렸다고....
자신이 시대의 비극에 그 정도로 깊이
연루되어 있음을 몰랐던 거죠. - P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