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독서는
머릿속 가득한 혼돈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며
순수하고 온전한 안식을 허한다.
이따금 책 읽기만이
내게 살아갈 용기를 준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나를 저 멀리 다른 세계로
훌쩍 데리고 가는 이야기의
쾌감만으로도 마냥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헤쳐나가고 있는 이 삶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어떤 의미를 끌어내야 할지
알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 P11
성차별주의는 친절하게
닫히는 문을 붙잡고 나를 기다려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문학에서도 그것이 보인다는 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성장기를 함께한 책들을 펼쳐 들고,
그제야 처음으로 보았다.
그 책들에 나오는 대다수 여자가
피도 살도 없는 뻣뻣한 막대기이고,
오로지 주인공의 운명에
좌절을 안기거나 행운을 선사하기 위해
등장할 뿐이라는 걸.
그 때 비로소 깨달은 바,
주인공은 거의 언제나 남자였다.
그들이 헤치고 나아가는 삶의 행보는
내가 언감생심 꿈 꿀 수 있는 삶과는
결정적인 단절이 있거니와
어느한구석 닮은 데도 없는데,
독자로 살아온 일평생 나는
그 남자들과 나를 동일시 해왔던 것이다. - P21
최대한 통합된 자아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게
내 평생의 과업이 되었다.
위대한 안톤 체호프가
기억에 또렷이 새겨둔 표현을 빌리자면,
"타인이 나를 노예로 만들었다 해도,
나 자신을 쥐어짜서 내 안의 노예근성을
한 방울 한 방울 뽑아내야 할 당사자는
바로 나"였다. - P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