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크리스마스 다음 날(복싱데이) 런던에서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맞은 첫눈이었다. 지난 5년간 영국의 겨울을 만드는 축축하고 흐릿한 회색빛 6개월을 보내면서 마음을 단단히 먹어온 나는, "눈이 내린 적은 있어요?" 하고 눈치껏 물었다. "오, 저 눈 기억해요. 제가 꼬마일 때 내렸었어요"가 일반적인 대답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뽀득한 흰색이 내리던 엄청난 장관을 열심히 떠올렸다. 미국에 있을 때 그 눈으로 눈덩이를 만들고 터널을 파고 썰매도 탔다. 내가 어렸을 적일이다. 지금 나는 런던 집 창문가에서 가로등 불빛을 가로질러 백열하는 어둠의 조각들을 보며 그때와 똑같은 달콤한 기대감의 한기를 느꼈다. 내 아파트에는(동그랗고 파란 명패에 한때는 예이츠 W. B. Yeats의 집이었다고 표시되어 있다) 중앙난방이 없으므로, 나의 한기라는 것은 비유가 아니라 실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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