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노라면 정체성의 감각이라는 것이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전문 분야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다소 겁이 났고, 길을 잃은 기분이었고, 내가 무지하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뭔가를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알려고 노력하는 일과, 안다고 생각했던 거의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진 현실을 직면하려고 애쓰는 일은 달랐다. 내가 부지불식간에 자신을 위해 신중하게 쌓아 올려온 정체성은 무너져 내려야만했다 - P16
하지만 멈춰 서서 ‘무의식‘이 정말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것이 충격적이고, 가증스러우며 무섭기까지 하다는 걸 알게 될 수밖에 없다. 무의식이란 우리가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무의식은 우리가 알게 되는 걸 감당할 수 없어서 보지 않아도 되도록 땅 밑으로, 어둠 속으로 밀어 넣어버리는 우리 자신에 관한 사실들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우리가 되고 싶어하는 그 사람이 진짜 우리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직면하는 건 끔찍할 만큼 충격적인 일이다. - P17
정신분석은 고통을 완화하는 게 아니라 고통을 느끼는 능력을 발달시키는 일이다. 고통을 언어로 표현하고,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려 노력하는 일이다. 지금껏 내 감정들을 다스려온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로부터 도망치고 있었구나 하는 희미한 자각이 싹텄던 기억이 난다.
나의 이른바 ‘정체성‘은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정체성이 아니고, ‘착한 사람‘,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 역시 정체성이 아니다. 이런 수식 어구들은 진정한 나와 접촉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끼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방법들에 불과했다. - P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