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을 가만히 응시하면서 냉수를 붓는다.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나
물을 갈고 손가락 끝으로 어루만졌다.
얼굴을 갖다 댄 채.

"그런데……… 뭐가 보이나요?"
"응?"
"팥을 왜 그렇게 유심히 보세요?"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뿐이야." - P37

내가 팥을 삶는 모습을 보고 사장님은 종종 물었죠. 팥에 얼굴을 대고 있는 나에게 무슨 소리가 들리느냐고 말입니다. 나는 그저 듣고 있었는데, 그렇게 말해도 사장님은 이해하지 못하리라 생각했기에 그냥 애매하게 흘려버렸지요.

팥의 안색을 살피는 것. 
팥의 말을 들어주는 것. 

그건 팥이 겪어온비 오는 날과 맑은 날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어떤 바람을 맞으며 컸는지 그 여행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는 언어를 갖고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상점가를 지나는 사람들은 물론 살아 있는 생물이라면, 아니, 햇살이나 바람 같은 존재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장님에겐 잔소리 많은 할머니였는데도 정작 중요한 걸 전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있습니다. - P160

사장님을 생각할 때면 
호랑가시나무 울타리를 넘어오는바람이 
뭔가 불안하게 속삭입니다. 
바람이 사장님의 안부를 물으라고 합니다. 아마 나 때문에 어떤 소문이 퍼졌겠지요. 
그 상태가 아직도 이어지는 건가요? 
그렇다면 내가 물러날 때를 놓친 탓입니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살아도 
세상의 싸늘한 시선에 밟힐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지혜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런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 P161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아요

우린 자유로운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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