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팥을 삶는 모습을 보고 사장님은 종종 물었죠. 팥에 얼굴을 대고 있는 나에게 무슨 소리가 들리느냐고 말입니다. 나는 그저 듣고 있었는데, 그렇게 말해도 사장님은 이해하지 못하리라 생각했기에 그냥 애매하게 흘려버렸지요.
팥의 안색을 살피는 것.
팥의 말을 들어주는 것.
그건 팥이 겪어온비 오는 날과 맑은 날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어떤 바람을 맞으며 컸는지 그 여행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는 언어를 갖고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상점가를 지나는 사람들은 물론 살아 있는 생물이라면, 아니, 햇살이나 바람 같은 존재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장님에겐 잔소리 많은 할머니였는데도 정작 중요한 걸 전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있습니다. - P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