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골의 <이반 이바노비치와 이반 니키포로비치가 싸운 이야기>라는 소설도 작자가 10년 후 다시 찾은 곳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다뤘는데, 그 짧은 글에 두 이반의 싸움이 정말 훌륭하게 묘사돼 있지요. 저는 그 짤막한 단편에서 작자의 큰 뜻을 발견했습니다. ‘악마마저 우울하게 만드는‘ 인생의 진실을 엿본 기분이었죠.  - P43

그저께 너에게 편지를 쓰면서 니체의 슬픈 탄식이 떠올랐어.
‘인간은 누군가를 칭찬하거나 깎아내릴 수는 있지만 영원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정신없이 몰입해서 (나는 요즘 몰입을 할 수 있게 되었어. 가끔은 정신을 멍하니 두기도 하고. 이 상태가 너무 그리웠기에 소중히 여기고 있다네) 편지를 썼어. 역시 썼더니, 좋았어.
니체의 에피그램은 니체가 중얼거린 순간의 진실이었고, 나나 자네의 경우엔 어릿광대짓에 불과했지. - P85

죽기 전에 온 힘을 다해 땀을 흘려보고 싶습니다.
그날그날을 가득 채워 살 것.
옛 중국 죽림칠현은 아는 것이 많았지만 대숲에 몸을 숨기곤 날마다 주색에 빠져 정신없이 웃다가 결국 굶어 죽은 사람도 있다지요.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일단 대숲에 들어가면 그걸로 끝입니다.
계획을 세웠습니다. (재능은 던져버리고!) 우리는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서, 우리의 길을 걸을 뿐입니다.
자살을 해도 좋고, 백세 장수를 누려도 좋고, 사람마다 제각기,
나름의 길을 살아내는 일, 자아의 탑을 쌓아 올리는 일,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 P91

오늘 가장 맛이 좋은 담배 열 갑을 벽장 선반에 숨겼습니다.
세상 가장 좋은 사람으로서,
조용히 목숨 걸고 살아주시길.
그립습니다. - P342

문화라고 쓰고 거기에 ‘부끄러움‘이라는 독음을 다는 일, 대찬성입니다. 
저는 넉넉할 우자를 생각합니다. 우승優勝이나 우량優良 따위처럼 훌륭하다優는 표현을 할 때 쓰는 한자이지만, 또 한 가지 뜻이 더 있지요? 
상냥하다優는 말에도 이 한자를 씁니다. 이 글자를 잘 들여다보면, 사람 인ㅅ변에 근심할 우자를 씁니다. 
인간을 걱정하고, 인간의 쓸쓸함과 외로움과 괴로움에 민감한 일, 이것이 상냥함이며, 또한 인간으로서 가장 뛰어난 일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상냥한 사람의 표정은, 언제나 부끄러움을 품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부끄러움으로, 저와 제 몸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말도 꺼낼 수가 없습니다. 그런 부분에 ‘문화‘의 본질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문화‘가 만약 그런 것이라면, 그것은 연약하며, 늘 지는 것입니다. 그걸로 됐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자신을 ‘멸망의 백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지고 멸망하면서, 거기에서 나오는 중얼거림이 우리의 문학이 아니겠습니까. - 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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