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 에디션 D(desire) 9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그책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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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서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 두 여배우의 서로를 쳐다보는 눈빛이 사랑이라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온다는 극찬이 줄을 이었던 영화 캐롤. 그렇지만 2월에는 어느 영화관을 가도 검사외전(장르: 강동원) 외에는 영화 선택지가 별로 없었고, 나는 고작해야 70명?이 들어가는 작은 관에서 하루에 많아야 서너번 상영되던 캐롤을 보겠다고 CGV앱을 주구장창 들여다봐야만 했다. 내가 회사를 벗어나 있는 시간, 캐롤을 보고 싶다던 내 친구가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영화관에서 캐롤이 상영하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그렇게 힘들게(?) 티켓팅해서 보게 된 영화 캐롤은 매우, 매--우 기대 이하였다. 레트로카메라처럼 바랜 느낌의 영상 속 색감은 아름다웠지만 SNS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극찬했던 두 여배우의 감정선이 왜 나만 따라잡기 어려운건지 싶었다. 생계를 위해 백화점 장난감 코너에서 무기력하게 일하던 테레즈가 자신의 딸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나온 캐롤에게 갑작스럽게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사랑의 감정을 느껴 그녀에게 열렬하게 빠져드는 장면까지는(두 주인공이 모두 여자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별 문제 없이 관람했다. 사랑에 빠지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랴. 그렇지만 테레즈가 캐롤의 집에 놀러갔다가 갑작스런 캐롤의 전 남편 하지의 등장에 그녀에게 내쫓김 당하듯이 지하철 역으로 이동하고, 울고, 또 그러다가도 캐롤의 제안에 모든 것을 놓고 그녀를 따라 자동차 여행을 떠나고……. 그리고 영화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캐롤이 테레즈에게 매우 애틋한 눈빛을 발사한다.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서 나는 생각했다. 테레즈의 시선으로 캐롤을 보아서는 절대, 이 영화의 타이틀을 차지하고 있는 그 여자, 캐롤을 이해할 수가 없겠구나. 영화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영화 해석을 읽으려고 블로그를 검색하던 나는 이 책에 원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내 머릿속에서 영화 캐롤의 그림자가 지워지기 전에.

영화로 먼저 캐롤을 접했기에, 책을 읽으면서 '어?' 했던 부분이 여럿 있다. 예를 들면 영화 속에서 사진작가 지망생이었던 테레즈가 책속에서는 무대디자이너 지망생이라는 것, 캐롤은 영화와 달리 장난감 기차를 사가지 않았고 장갑을 두고 가는 실수를 저지르지도 않았으며, 딸 린디는 캐롤에 의해 언급만 될 뿐, 테레즈가 캐롤이 린디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일은 단 한 번도 없다는 것. 책을 다 읽고 나니까 감독이 원작에 무리가 가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각색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 카메라라는 소품이 굉장히 쓰임새가 좋았고, 원작 속 인형보다는 장난감 기차를 두고 나눈 캐롤과 테레즈의 나눈 대사와 분위기가 더 좋았다.

우유부단하고, 소심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에 확신이 없던 어린 테레즈가, 처음으로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생겨서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이 책 거의 마지막 부분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책 뒷장에 붙은 여러 언론사의 호평을 읽고 색다른 로맨스, 완벽한 사랑을 기대하고 읽은 사람 중 대다수는 이 책 캐롤이 지루하다거나, 유치하다거나, 답답하다고 느낄 것이다. 왜 나는 이 책을 읽은 다른 사람이 느낀 그 감정을 느끼지 못한걸까 하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 본인이 느낀 그 감정이 이 책을 읽은 다른 독자들이 느낀 그 감정이다. 이 책은 결국 보통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다. 처음 느낀 감정이기에 완벽하지 못하고, 질척이고, 유치하고, 심지어 이기적인. 테레즈는 캐롤을 열망하고 환상하는 힘이 너무 커서 자신도, 자신의 주변 사람도 돌아보지 못 하고 캐롤과 리처드의 말대로 계속 어린애처럼 군다. 그리고 이 모습은 두 사람이 떠난 여행에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테레즈는 캐롤이 결국 린디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떠나자, 슬퍼하고 캐롤을 원망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눈에 덮여있던 사랑의 콩깍지를 인정하고 벗겨낸다. 그리고 테레즈는 다시 캐롤에게로 간다.
있는 모습 그대로의 캐롤을 사랑하기 위해서.

작가가 백화점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만났던 여자를 토대로 그려낸 캐롤. 그녀는 자신에게 레즈비언 작가라는 오명이 붙은 것을 염려해 1952년, 가명으로 이 작품을 발표했는데, 당시 동성애 작품 속 주인공들이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생각 이상의 주목과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원래 책에 붙였던 제목은 소금의 값The price of salt이었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캐롤이 어감도 예쁘고, 독자들이 보기에 더 캐치한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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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은 프랑스식으로 '테레즈'라고 발음했다. 테레즈는 자기 이름이 온갖 발음으로 불리는 상황에 인이 박혀 때론 자신도 여러 가지로 발음했다. 테레즈는 캐롤이 자기 이름을 그렇게 발음하는게 마음이 들었다. 여인이 입술을 움직여 그렇게 부르는 것이 좋았다. 전부터 막연히 느끼던 무한한 갈망이 이제 눈에 보이는 소망으로 이루어졌다. 너무나 어이없고 부끄러운 욕망이 테레즈의 마음속에서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p.75)

그 누구보다 행복했다. 행복은 날아가는 기분일거야. 마치 연처럼. 테레즈는 상상했다. 누가 연실을 얼마나 푸느냐에 달려 있었다. (p.144)

캐롤이 입을 열었다. "'난 경쟁조차 할 수 없어.' 이런 말 말이야. 사람들이 고전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대사가 바로 고전이지. 백 명이 똑같은 대사를 읊는 게 바로 고전이야. 엄마가 하는 대사와 딸이 하는 대사가 같고, 남편이 하는 대사와 정부가 하는 대사가 같지. 이를테면 '차라리 내 발 밑에서 네가 죽는 꼴을 보는 게 나아.'라는 대사라든가. 같은 작품이 다른 배우들에 의해 계속 무대에 오르는 게 바로 고전이지. 그럼 하나의 연극이 고전으로 등극하기 위해 사람들이 꼽는 조건이 뭘까, 테레즈?"
"고전이란……." 테레즈의 목소리는 긴장해서 숨이 막힐 듯 했다. "인간의 보편적 상황을 다루는 거죠." (p.251)

"당신에게도 가족이 있다고 상상하니 좀 어색해요."
"그게 왜?"
"나한테 당신은 그냥 당신이거든요. 누구와도 얽히지 않은 독자적인 존재."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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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북로드 세계문학 컬렉션
에밀리 브론테 지음 / 북로드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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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7년 영국 소설사상 기념비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궁벽한 시골 마을에서 자란 무명의 작가 세 자매의 소설이 출간되었고, 그중 10월에 출간된 <제인 에어(샬롯 브론테)>와 12월에 출간된 <폭풍의 언덕(에밀리 브론테)>이 후세에 길이 남을 명작이었던 것이다. (p.538)


이 소설은 워더링 하이츠의 언쇼 집안과 드러시크로스의 린튼 집안 사이에 얽힌 비극적인 이야기로, 두 집안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넬리 딘이 현재 시점에서 20년 전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는 단순한 구조이지만 가정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또 다른 화자가 등장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구성상으로 조금 복잡하게 전개된다. (p.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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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힌들리한테 복수할까 생각하고 있어. 오래 걸려도 상관없어. 복수할 수만 있다면 말이야. 나보다 먼저 죽지 않기만 바랄 뿐이야."

"히스클리프! 그런 말 하면 못써. 못된 자를 벌하는 건 하느님 몫이야. 우리는 용서하려고 노력해야 해."

"아니, 하느님은 내가 만족할 만큼 할 수 없어.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까? 나를 가만히 내버려둬. 가장 좋은 방법을 생각해낼 거야. 복수할 생각을 하는 동안은 전혀 힘들지 않거든." (p.96)


"집 안에 있는 거미줄은 달갑지 않지만, 감옥살이 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거미줄도 반가운 법이지. 나는 도시 사람들에게는 흥미 없지만 이 고장 사람들은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내 처지 때문만은 아니오. 이곳 사람들은 더 깊은 자기 내면에 몰두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도시 사람들처럼 쓸데없는 껍데기에 매달려 분주하게 살아가는 생활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소. 나는 어떤 연애도 1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믿는데, 여기서는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군. 한쪽은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딱 한 접시만 주어서 온전히 다 맛보게 하고, 다른 한쪽은 프랑스 요리사들이 만든 요리를 늘어놓아 전체적으로 훌륭한 음식이지만 요리 하나하나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지 않는 것과 같지." (p.98)


"천국은 내가 갈 곳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하려고 했어. 나는 지상으로 돌아오고 싶어서 가슴이 터지도록 울어댔지. 그러자 화가 난 천사들이 나를 워더링 하이츠 언덕 꼭대기로 던저버렸어. 들판 한가운데 떨어진 나는 너무 기뻐서 울다가 잠이 깼어. 이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내 비밀을 설명해주는 것이기도 해. 내가 천국에 가지 않아도 되듯이, 에드거 린튼과 결혼할 필요도 없는 거지. 성질 나쁜 오빠가 히스클리프를 저렇게 천박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에드거와 결혼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히스클리프의 격이 너무 떨어져서 결혼할 수 없어. 그래서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에게 고백할 수 없어. 히스클리프가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든 그와 나는 같은 영혼이야. 린튼의 영혼과는 달빛과 번개, 서리와 불길처럼 완전히 다르지." (pp.127-128)


"그가 외톨이가 된다고? 우리가 헤어진다고? 누가 우리를 갈라놓는단 말이야? 그런 사람들은 밀로 꼴이 될거야.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나는 절대 그를 버리지 않아, 엘렌. (…) 그런 희생을 치러야 한다면 나는 린튼 부인이 되지 않을 거야! (…) 넬리는 내가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여자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우리 둘이 결혼하면 거지꼴밖에 안 돼. 그러나 에드거하고 결혼하면 히스클리프를 독립시킬 수 있어. 오빠한테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다고."

"남편 돈으로요? 아가씨 생각처럼 그렇게 녹록한 분이 아닐 거예요. 더구나 에드거 도련님하고 결혼하는 이유 중에 그게 가장 나쁘네요."

"아냐, 그게 가장 좋은 이유야. 다른 이유들은 내 변덕과 에드거를 충족하는 것이지만, 이건 에드거와 나 자신에 대한 내 감정을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을 위한 거야. 뭐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자신을 넘어서는 삶이 있고, 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내 자신의 삶뿐이라면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무엇이겠어? 내 불행은 곧 히스클리프의 불행이야. 처음부터 나는 그것을 보고 느꼈어.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히스클리프야. 이 세상 모든 것이 사라져도 그만 있다면 나는 살아갈 수 있어. 하지만 그가 사라진다면 우주 전체가 낯설게 느껴질 거야. 심지어 내가 이 우주의 일부라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거야. 린튼을 향한 내 사랑은 숲속의 나뭇잎처럼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모습도 달라지지. 겨울이 오면 나뭇잎이 떨어지듯이 말이야. 그러나 히스클리프를 향한 내 사랑은 땅속에 묻혀 영원히 변치 않는 바위 같아. 눈앞에서 기쁨을 주지 않는다 해도 결코 없어서는 안 되는 거야. 넬리, 히스클리프는 곧 나야. 그는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어. 내가 스스로에게 반드시 기쁨을 주는 것만은 아니듯이, 그도 기쁨을 주는 존재라기보다 그냥 내 자신인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헤어진다는 말은 두 번 다시 하지 말아줘.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pp.129-130)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결국 인간은 자기 중심적일수밖에 없나 봐요. 착하고 너그러운 사람들은 거만한 사람들보다 조금 덜할 뿐이죠.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상대가 자기를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느끼는 순간 두 사람의 행복이 끝난 거예요. (p.145)


"날이 밝을 무렵 겨우 눈앞이 보이고 귀가 들렸어. 넬리, 그동안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왜 정신이 이상해질 정도로 같은 일만 계속 생각했는지 말해줄게. 나는 탁자 다리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 새벽빛이 비치는 네모난 창을 바라보았어. 마치 우리 집의 그 참나무 널빤지로 둘러진 침대에 누워 있는것 같았지. 굉장히 슬펐는데, 이제 막 정신을 차리 눈을 떴을 때라 무엇 때문에 슬픈지 생각나지 않았어. 나는 내가 왜 슬픈지 곰곰이 생각해봤어. 그런데 묘하게도 지난 7년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어. 7년의 세월을 보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어린아이였던 나는 힌들리 오빠가 히스클리프랑 어울리지 말라고 해서 슬펐어. 처음으로 외톨이가 된 나는 밤새 울다가 잠들었어. 그리고 깨어나 손으로 침대 널빤지 문을 밀치려고 하는데 손이 탁자에 부딪친거야. 이상하다 싶어 카펫을 만져보다가 문득 기억이 되살아났고, 슬픔에 겨워 절망에 빠진 나머지 발작을 일으킨 거야. 왜 그렇게 미칠 듯이 슬펐는지 모르겠어. 틀림없이 일시적인 정신착란이었을 거야. 특별한 이유가 없었으니까. 열두 살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워더링 하이츠와 어릴 때 익숙했던 것이며 나한테 없어서는 안 될 히스클리프와 헤어져 린튼 부인이자 드러시크로스 저택 안주인으로서 모르는 사람의 아내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든 거야. 나는 자기 세계에서 쫓겨나 버림받은 거지. 마치 컴컴한 구렁텅이를 기어 다니는 듯한 심정이었어. (…)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 거칠고 자유분방한 여자아이로 돌아가서 어떤 마음의 상처에도 미치지 않고 깔깔깔 웃을 수 있으면 좋겠어. 내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 왜 조금만 뭐라고 해도 피가 끓어오르는 걸까? 저 언덕의 히스 관목 숲에 뛰어들면 분명 정신이 날 거야." (pp.195-196)


"에드거가 사라지면 캐서린이 괴로워하겠소? 나는 캐서린이 괴로워할까 봐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거요. 에드거와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그거요. 우리 둘의 입장이 바뀌었다면 나는 그가 아무리 미워도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을 거요. 당신이 믿지 않아도 상관없소. 캐서린이 원하는데로 그를 못 만나게 하지 않을 거요. 그러나 캐서린만 아무렇지 않다면 나는 지금 당장 그의 심장을 도려내고 그 피를 들이킬 것이오. 내 말을 못 믿겠다면 나를 잘 모르는 거지. 그게 아니라면 그의 머리카락 한 올도 건드리지 않을 거고, 그러느니 차라리 내가 조금씩 말라 죽는게 낫지. (…) 나의 미래는 단 두 단어로 설명할 수 있지. 바로 '죽음'과 '지옥'이오. 캐서린을 잃고 난 뒤의 내 삶은 지옥일 거요. 한때 나는 어리석게도 캐서린이 나보다 에드거의 사랑을 더 소중히 여긴다고 생각했소. 하지만 약해빠진 몸으로 있는 힘껏 사랑해봤자 80년간의 그의 사랑은 단 하루의 내 사랑보다 못할 거요. 캐서린은 나처럼 속 깊은 사람이지. 그런 그녀의 사랑을 독차지한다는 것은 이 세상 바닷물을 몽땅 말구유에 담을 수 있다고 하는 것과 같아." (pp.227-228)


"고통 속에서 눈을 떠야 해! 끝까지 거짓말쟁이였어! 어디로 갔다고? 천국에 갔을 리 없어. 사라진 것도 아냐. 그럼 어디로 간 거지? 당신은 내가 괴로워하든 말든 상관없다고 했지? 그러니 단 하나만 기도하겠어. 내 혀가 굳어질 떄까지 계속하겠어, 캐서린 언쇼! 당신은 내가 살아 있는 한 결코 편히 쉬지 못해! 내가 당신을 죽였다고 했지? 그럼 유령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나란 말야! 죽은 사람은 유령이 되어 자기를 죽인 사람 앞에 나타난다면서? 난 유령이 지상을 떠돌아다닌다고 믿어. 그러니 언제나 내 곁에 있어줘.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어. 차라리 나를 미치게 해줘! 제발 당신을 볼 수 없는 이 지옥 같은 세상에 나 혼자 내버려두지 말란 말이야. 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난 당신 없이 살 수 없어. 당신은 내 영혼이야. 그런데 어떻게 살란 말이야!" (p.256)


"당신과 나는 바깥에 있는 저놈한테 갚아야 할 큰 빚이 있소. 우리 둘다 겁쟁이가 아니라면 합심해서 빚을 갚을 수 있지. 당신도 오빠처럼 나약한 사람이오? 복수 같은 건 할 용기도 없이 끝까지 참고 견딜 텐가?"

"천만에요! 더 이상 못 참겠어요. 다시 보복당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복수하고 싶어요. 하지만 배신이나 폭력은 양날의 칼처럼 그것을 휘두르는 사람이 상대보다 더 크게 다치는 법이죠."

그러자 언쇼 씨가 소리쳤어.

"배반과 폭력은 배반과 폭력으로 갚게 마련이지!" (p.267)


"어쩜 그런 말을 다 하세요?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아씨가 평생 성경이라고는 펴본 적 없는 여자라고 생각하겠네요. 하느님께서 원수에게 벌을 내리신 것으로 만족해야죠. 아씨까지 가세하는 건 비겁하고 너무한 처사예요."

그러자 아씨가 계속 이야기했어요.

다른 때 같으면 나도 그렇게 생각할 거야. 하지만 내가 보복에 가담하지 않는 한 그가 아무리 비참한 일을 당해도 만족할 수 없어. 차라리 그가 지금보다 덜 괴로워하더라도 내가 그에게 고통을 줄 수 있고 또 그 사실을 그자가 알면 좋겠어. 그 사람한테 갚아줄 게 너무 많거든. 내가 용서할 수 있는 건 이때뿐이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내가 당한 만큼 되갚아주고 그를 나와 같은 처지로 만드는 거야. 먼저 해를 입힌 사람이 용서를 빌게 만드는 거지. 그래야 나도 조금이나마 너그러워질 수 있지 않겠어? 그래도 내 원한은 다 풀리지 않겠지만 말이야. 그러니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거지. (pp.274-275)


교회 쪽으로 돌아오느라 집까지 오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교회 담장 밑에 이르러 보니 7개월 사이에 예배당이 눈에 띄게 헐어 있었다. 유리창은 거의 다 깨져 있었고, 지붕 기왓장도 여기저기 어긋나서 곧 불어닥칠 가을 폭풍에 떨어져나갈 것 같았다. 들판 옆 언덕배기에 세워진 비석 3개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가운데 있는 잿빛 비석은 반쯤 히스에 파묻혀 있었다. 에드거 린튼의 비석만이 밑동에 돋은 이끼와 잔디로 조화로웠고, 히스클리프의 비석은 아직 새것으로 보였다. 따스한 하늘 아래서 무더 주위를 거닐며 히스와 초롱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방들을 바라보고, 풀밭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 소리를 듣고 있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고요한 대지에 잠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쉬지 못하리라고 그 누가 상상하겠는가!' (pp.5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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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동화집 7 안데르센 동화집 7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빌헬름 페데르센 외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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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와 이야기》는 유럽의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었다. 여러 해 동안 이 책은 내 조국에서도 국경 너머 먼 곳에서도 어른, 아이 모두에게 두루 읽혔다. 이런 축복을 받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 나는 성경에서 '열의 일곱 배'라고 말하는 보통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나이에 이르렀으니, 이런 행복한 일도 분명 끝이 가까워지고 있으리라.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남아 있는 내 재산인 156편의 동화와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 엮을 것이다. 이제 동화 <펜과 잉크병>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들은 시인이 했던 말로 끝을 맺을까 한다. 만약 내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해냈다면,
오로지 신께 영광을!


1874년 9월 6일 롤리헤드에서
H.C.안데르센





안데르센이 생애 저술한 212편의 동화 중 본인이 직접 157편의 단편들을 엄선하여 만들었던 단편집을 목차순으로 번역하여 만든 시공주니어판 《안데르센 동화집》완역집! 2010년 8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이어진 시공주니어의 대프로젝트 작품이다. 그중 2016년 1월에 발행된 따끈따끈한 7권(마지막권)을 책콩 이벤트 도서로 받아 읽게 되었다.


책을 읽기에 앞서 책 맨 뒷장에 각 권당 실려 있는 단편의 목차부터 먼저 훑어보았다. 안데르센의 동화, 나는 어디까지 읽어 봤나. 우리에게 친근한 단편동화들 -<인어 공주>,  <완두콩 위에서 잔 공주>, <눈의 여왕>, <엄지 아가씨>, <성냥팔이 소녀>- 은 1~3권에 전부 들어 있고, 내가 받은 7권은 전부 낯선 이야기들(총22편)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안데르센은 생전 자신을 '어린이 작가'로만 한정되는 것을 강하게 반대했다고 하는데, 이 책을 읽고 난 뒤 나는 내가 이 책 <안데르센 동화집>에 가지고 있던 두 가지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나, 《어린 왕자》처럼 안데르센의 동화는 어른이 되어 읽으면 느끼는 바가 더 많겠다. 둘, 시공'주니어'에서 만든 완역본은 성인이 읽기에 부족한 점이 전혀 없구나.


개인적으로 7권에서 인상 깊게 읽은 단편 몇을 꼽자면 <정원사와 주인 가족>, <현관 열쇠>와 <앉은뱅이>를 꼽는다. <정원사와 주인 가족>에는 사람들이 생각지 못한 곳에 아름다움이 있음을 알려주는 뛰어난 실력의 정원사 라르센과 그가 꾸민 정원의 진가를 몰라주고 애써 그의 실력을 폄하하는 주인 가족이 등장하는데, 안데르센은 이를 통해 자신의 작품이 외국에서 먼저 호평받고 난 뒤에야 고국에서 인정받는 자신의 현실을 풍자했다. 뿐만 아니라 이 단편에는 다양한 식물들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안데르센은 겨울에도 들판과 도랑에서 찾은 식물들로 꽃꽂이를 할 만큼 식물에 조예가 깊었다 한다. 라르센이 공주에게 바친 솜엉겅퀴꽃은 안데르센이 직접 길러본 경험이 있으며, '힌두스탄의 수련꽃'은 그가 솜엉겅퀴꽃에 지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또, 라르센이 겨울에 참새를 위해 귀리 다발을 매달아 놓는 것은 덴마크에 남아 있는 크리스마스 풍습이라고.

<현관 열쇠>에는 매사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지 못하고 열쇠 점에 의지하여 모든 판단을 내리는 주인공을 통해 19세기 중반에 유행한 심령주의 경향을 보여주는데, 심령주의는 당시 급속도로 발달한 과학으로 인해 물질적 풍요가 불러온 정신적 결핍을 메우려 생긴 새로운 풍조로, 안데르센 역시 독일에서 '지적이고 의식 있는 사람들'을 통해 열쇠 점 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아시스텐스 공동묘지에 안드르센이 잠들어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침대에서만 지내는 앉은뱅이 소년 한스가 읽어준 이야기책 덕분에 그 부모가 시야를 넓히고 참된 삶을 이해하고 배우게 된다는 내용의 단편 <앉은뱅이>는 안데르센이 본인이  쓴 글(이야기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담고 있는 다른 단편 <행운은 한낱 나뭇조각에도>처럼 동화의 치유력을 믿는 안데르센의 신념이 전해져온다. 안데르센은 이 이야기를 두고 '동화 문학에 바치는 일종의 경의로써(…)모든 동화집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작품으로 걸맞으리라'고 밝혔다고 한다.


작품 해설을 읽고서야 비로소 안데르센이 말하고자 하던 바를 이해한 단편은 <그레테 닭할머니의 가족>(17세기 실존 인물 마리 그루베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란다.)과 <요하네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바탕으로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어렸을 때 있었던 여러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안데르센 자신을 가장 잔혹하게 그린 자화상으로 평가받는다고. 특히, 라스무스와 요하네처럼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란 친구지만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된다는 구성은 안데르센이 <눈의 여왕>, <이브와 어린 크리스티네>, <버드나무 아래서>에서도 안데르센이 즐겨 다룬 바 있다.)다. 결코 한 번의 완독으론 안데르센이 이야기 속에 담아놓은 바를 바로 캐치하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더라. 책 앞장과 뒷장에 붙은 작품 해설은 작가 안데르센과 덴마크 문학이 낯선 독자들에게 매우 도움되는 부록이다. 국내 몇 안되는 <안데르센 동화집> 완역판 중에서도 시공주니어판 <안데르센 동화집>은 157편 동화 모두에 전문 해설이 수록된 국내 유일본이라고 하니 소장가치가 더욱 높을 듯 하다.


아, 두말하면 입 아프게도 이 책의 책 표지 디자인은 매우 예쁘다. 세트로 모두 모아놓으면 매우 뿌듯할 것 같다. 얼마 전에 산 <빨간 머리 앤>처럼 안데르센 동화집 전권도 내 책장에 조르륵, 꽂아두면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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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드리아스가 동경하던 곳이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앞으로! 쉬지 않고 날아가야 합니다! 하루살이에게 휴식은 없습니다. 하루살이의 삶은 쉼 없이 나는 거지요. (나무의 요정 드리아스, p.32)


"천 년 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진짜 행복했어! 그 사람들은 쉽게 불멸의 시인이 될 수 있었으니까. 백 년 전에 태어난 사람도 마찬가지야. 그 무렵까지는 시로 만들 것들이 제법 남아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시로 지을 게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고. 대체 나더러 뭘 쓰란 거야?" (p.90)


"남들이 다 써 버려서 더 이상 쓸 게 없어요! 지금은 옛날과 다르다고요."

할머니가 맞받았어요.

"다르다마다! 옛날엔 나 같은 점쟁이 할멈은 화형감이었고, 시인은 배를 쫄쫄 곯으며 팔꿈치에 구멍이 난 옷을 입고 다녔지. 지금이야말로 좋은 세상이야. 아무렴, 더 없이 좋은 세상이고말고! 그런데 젊은이는 세상을 보는 바른 눈도 없는 데다 귀마저 먹었구먼. 더구나 잠자리에 들기 전에 '주기도문'을 외지도 않겠지? 시를 짓거나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온 사방에서 글감을 얻을 수 있어. 밭작물 속에서 꺼낼 수도 있고 흐르는 물이나 고인 물에서 건져 올릴 수도 있지. 다만 방법을 모르면, 그러니까 햇살 붙잡는 방법을 모르면 아무 소용없지. 자, 내 안경을 쓰고 내 나팔 보청기를 귀에 대 보게! 그리고 하느님께 기도를 드려. 자기 생각은 그만하고."

점쟁이 할머니의 마지막 말은 지키기가 몹시 어려웠어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죠. (pp.92-93)


"그럼 시로 먹고살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시인들을 때리면 돼. 글로 시인들의 시를 마구 두들겨 주는 거지. 그건 시인들을 때리는 것과 같거든. 양심에 꺼릴 것 없이 과감하게 때려눕혀. 그럴면 자네와 자네 마누라 두 사람이 먹고살 수 있는 빵을 얻을 수 있어."

젊은이가 감탄했어요.

"정말 좋은 생각인데요!"

그러고는 시인들을 닥치는 대로 때려눕혔어요. 자기가 시인이 되지 못했으니까요. (좋은 생각, p.96)


"행운은 한낱 나뭇조각에도 있는 법이야."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도 같은 생각이에요.

덴마크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하얀 나뭇조각을 입에 물면 자기 모습을 감쪽같이 사라지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알맞은 나뭇조각이어야 해요. 하느님이 행운의 선물로 내려 주신 나뭇조각 말예요. 하느님은 그런 나뭇조각을 내게 주셨어요. 그래서 나도 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람처럼 짤랑거리는 금화를, 반짝거리는 황금을 모을 수 있어요. 황금 중에서도 가장 좋은 황금을요. 그것은 바로 아이들의 눈에서 빛나는 황금, 아이들의 입에서 울리는 황금,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흘러나오는 황금이죠. 사람들이 이야기를 읽고 있을 때면 나도 그 방에 함께 있어요. 하지만 사람들한테는 내가 보이지 않아요. 나는 하얀 나뭇조각을 물고 있거든요.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읽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이렇게 말하죠.

"행운은 한낱 나뭇조각에도!" (행운은 한낱 나뭇조각에도, p.102)


"네가 말한 시계 장치 속에는 교훈이 있어. 네 이야기를 들으니 또 다른 시계가 생각나는 구나. 우리 부모님이 쓰시던 낡은 벽시계, 납추가 달린 간단한 장치의 벽시계 말이다. 우리 부모님 시대와 내 어린 시절에는 그것이 시간을 재는 기계였어. 그다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움직였어. 우리는 시곗바늘을 읽고 시곗바늘을 믿었을 뿐 그 속에 있는 톱니바퀴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단다. 그 무렵에는 국가 구조도 마찬가지였어. 다들 안심하고 국가를 바라보고 국가가 가리키는 것을 믿었어. 하지만 요즘 국가 구조는 유리 시계 같아졌어. 속의 구조가 훤히 드러나서 톱니바퀴가 윙윙거리며 돌아가는 것이 다 보이잖니. 축이나 톱니바퀴가 보이면 불안해지고 이 장치가 정말로 정확한 시간을 알려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지지. 그러면 시계가 정확하다는 어린 아이 같은 믿음은 사라져 버리는 거야. 그것이 현대의 약점이라고."

(…)증조할아버지와 프레데리크 형은 의견이 똑같은 적이 한 번도 없었지요. 하지만 두 사람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사이였습니다. 마치 '낡은 시대와 새로운 시대처럼' 말입니다. (증조할아버지, p.135)


일 년이 지난 어느 고즈넉한 밤, 고문관과 로테 레네는 함께 앉아 있었어요. 그때 재무 고문관이 열쇠에게 물었어요.

"나는 결혼을 하게 될까? 한다면 누구와 할까?"

이제 고문관의 등을 떠밀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고문관이 열쇠를 떠밀었고 열쇠가 대답했어요.

"로테 레네!"

이렇게 해서 로테 레네는 재무 고문관의 부인이 되었답니다.

"승리와 행운."

언젠가 들었던 말이죠. 현관 열쇠한테서. (현관 열쇠,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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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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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책 안 읽는 동생에게도 추천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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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탄생 - 건축으로 만나는 유럽 최고의 미술관
함혜리 글.사진 / 컬처그라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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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유럽여행을 하면서 9개국 28개 미술관을 탐방했다. 방문했던 미술관 중 몇 미술관은 관내 소장되어 있는 명화들 이상으로 미술관 건물 그자체가 인상깊어 해당 미술관 역사, 인테리어 및 건축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 그런던 찰나 미술관 건축 기행서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신나서 서평단을 신청했다.


[미술관의 탄생]에 소개된 22곳의 미술관 중 내가 방문한 곳은 총 8곳에 불과하다. 영국 박물관, 테이트 모던, 루브르 박물관, 박물관섬,  훈데르트바서하우스, 쿤스트하우스 그라츠, 우피치 미술관. 베를린의 신국립박물관의 경우, 박물관 휴무 월요일에 방문한 관계로 미술관 문 앞까지는 가봤지만 내부를 들여다보지 못 했다. 아무래도 직접 방문했던 미술관 쪽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이 있다보니 책을 차례 순대로 읽지 않고 방문했던 8곳의 미술관부터 먼저 골라 읽었다. 나는 미술관 여행을 준비하면서 명화 관련된 많은 책을 읽었고, 미술관에서 팜플렛을 챙기고 기념품 샵에서 도록을 구입해 읽었기 때문에 미술관에 대한 간략한 역사와 흥미로운 이야기를 제법 많이 알고 있는 편이다. 이 책은 각 미술관마다 사진을 포함해 10페이지 내외의 지면을 할애해 해당 미술관의 건축 과정과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데, 내 기준에서 봤을 때 설명의 깊이는 너무 얕고 또 그 범위는 좁다. 물론 저자가 서문에서 이 책은 '깊이 있는 학술서적이 아님'을 밝히며 '여행과 건축, 그리고 미술을 좋아하는 저널리스트의 수준에서 심화 학습을 하듯이 공부해 가며 쓴 것'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차라리 미술관 수를 10개 내외로 줄이고 저자의 눈에서 본 건축물의 설명을 좀더 집어넣거나 전문가의 감수를 받아 흥미로운 내용을 추가해 넣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의 경우, 시리얼 2호를 통해 만나본 바가 있는데, 시리얼에서 유대인 박물관을 처음 소개받으며 느꼈던 소름과 전율이 저자의 글에서는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다. 미술전문기자인 저자가 1년에 걸쳐 유럽의 미술관 22곳을 직접 돌아보고 쓴 미술관 건축 기행이라고 해서 묘사적이고 체험적이며 감성적인 부분이 미술관에 대한 설명과 적절히 섞여있기를 기대했는데, 내 기대와는 달리 문장은 신문을 읽듯 딱딱하고 정보 전달 성격이 강한 편이다.


내가 방문한 미술관 중에서는 빈의 미술사박물관과 피렌체의 우피치, 팔라티나 갤러리가 건물 그 자체 뿐만 아니라 미술관이 지닌 분위기 자체가 상당히 마음에 들어 추천하고 싶다. 빈 미술사 박물관 건물 내부에는 클림트가 그린 벽화가 있으며, 피렌체 팔라티나 갤러리가 있는 피티 궁은 갈색 벽돌로 단순하게 지어진 외부와는 달리 내부는 매우 화려해 반전 매력을 가지고 있는데, 팔라티나 갤러리 천장 곳곳에 메디치 가문 상징물들이 그려져 있어 그림만큼이나 내부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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