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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ㅣ 북로드 세계문학 컬렉션
에밀리 브론테 지음 / 북로드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1847년 영국 소설사상 기념비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궁벽한 시골 마을에서 자란 무명의 작가 세 자매의 소설이 출간되었고, 그중 10월에 출간된 <제인 에어(샬롯 브론테)>와 12월에 출간된 <폭풍의 언덕(에밀리 브론테)>이 후세에 길이 남을 명작이었던 것이다. (p.538)
이 소설은 워더링 하이츠의 언쇼 집안과 드러시크로스의 린튼 집안 사이에 얽힌 비극적인 이야기로, 두 집안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넬리 딘이 현재 시점에서 20년 전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야기는 단순한 구조이지만 가정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또 다른 화자가 등장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구성상으로 조금 복잡하게 전개된다. (p.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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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힌들리한테 복수할까 생각하고 있어. 오래 걸려도 상관없어. 복수할 수만 있다면 말이야. 나보다 먼저 죽지 않기만 바랄 뿐이야."
"히스클리프! 그런 말 하면 못써. 못된 자를 벌하는 건 하느님 몫이야. 우리는 용서하려고 노력해야 해."
"아니, 하느님은 내가 만족할 만큼 할 수 없어.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까? 나를 가만히 내버려둬. 가장 좋은 방법을 생각해낼 거야. 복수할 생각을 하는 동안은 전혀 힘들지 않거든." (p.96)
"집 안에 있는 거미줄은 달갑지 않지만, 감옥살이 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거미줄도 반가운 법이지. 나는 도시 사람들에게는 흥미 없지만 이 고장 사람들은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내 처지 때문만은 아니오. 이곳 사람들은 더 깊은 자기 내면에 몰두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도시 사람들처럼 쓸데없는 껍데기에 매달려 분주하게 살아가는 생활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소. 나는 어떤 연애도 1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믿는데, 여기서는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군. 한쪽은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딱 한 접시만 주어서 온전히 다 맛보게 하고, 다른 한쪽은 프랑스 요리사들이 만든 요리를 늘어놓아 전체적으로 훌륭한 음식이지만 요리 하나하나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지 않는 것과 같지." (p.98)
"천국은 내가 갈 곳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하려고 했어. 나는 지상으로 돌아오고 싶어서 가슴이 터지도록 울어댔지. 그러자 화가 난 천사들이 나를 워더링 하이츠 언덕 꼭대기로 던저버렸어. 들판 한가운데 떨어진 나는 너무 기뻐서 울다가 잠이 깼어. 이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내 비밀을 설명해주는 것이기도 해. 내가 천국에 가지 않아도 되듯이, 에드거 린튼과 결혼할 필요도 없는 거지. 성질 나쁜 오빠가 히스클리프를 저렇게 천박하게 만들지 않았다면 에드거와 결혼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히스클리프의 격이 너무 떨어져서 결혼할 수 없어. 그래서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에게 고백할 수 없어. 히스클리프가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든 그와 나는 같은 영혼이야. 린튼의 영혼과는 달빛과 번개, 서리와 불길처럼 완전히 다르지." (pp.127-128)
"그가 외톨이가 된다고? 우리가 헤어진다고? 누가 우리를 갈라놓는단 말이야? 그런 사람들은 밀로 꼴이 될거야.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나는 절대 그를 버리지 않아, 엘렌. (…) 그런 희생을 치러야 한다면 나는 린튼 부인이 되지 않을 거야! (…) 넬리는 내가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여자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우리 둘이 결혼하면 거지꼴밖에 안 돼. 그러나 에드거하고 결혼하면 히스클리프를 독립시킬 수 있어. 오빠한테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다고."
"남편 돈으로요? 아가씨 생각처럼 그렇게 녹록한 분이 아닐 거예요. 더구나 에드거 도련님하고 결혼하는 이유 중에 그게 가장 나쁘네요."
"아냐, 그게 가장 좋은 이유야. 다른 이유들은 내 변덕과 에드거를 충족하는 것이지만, 이건 에드거와 나 자신에 대한 내 감정을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을 위한 거야. 뭐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자신을 넘어서는 삶이 있고, 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내 자신의 삶뿐이라면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무엇이겠어? 내 불행은 곧 히스클리프의 불행이야. 처음부터 나는 그것을 보고 느꼈어.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히스클리프야. 이 세상 모든 것이 사라져도 그만 있다면 나는 살아갈 수 있어. 하지만 그가 사라진다면 우주 전체가 낯설게 느껴질 거야. 심지어 내가 이 우주의 일부라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거야. 린튼을 향한 내 사랑은 숲속의 나뭇잎처럼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모습도 달라지지. 겨울이 오면 나뭇잎이 떨어지듯이 말이야. 그러나 히스클리프를 향한 내 사랑은 땅속에 묻혀 영원히 변치 않는 바위 같아. 눈앞에서 기쁨을 주지 않는다 해도 결코 없어서는 안 되는 거야. 넬리, 히스클리프는 곧 나야. 그는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어. 내가 스스로에게 반드시 기쁨을 주는 것만은 아니듯이, 그도 기쁨을 주는 존재라기보다 그냥 내 자신인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헤어진다는 말은 두 번 다시 하지 말아줘.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pp.129-130)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결국 인간은 자기 중심적일수밖에 없나 봐요. 착하고 너그러운 사람들은 거만한 사람들보다 조금 덜할 뿐이죠.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상대가 자기를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느끼는 순간 두 사람의 행복이 끝난 거예요. (p.145)
"날이 밝을 무렵 겨우 눈앞이 보이고 귀가 들렸어. 넬리, 그동안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왜 정신이 이상해질 정도로 같은 일만 계속 생각했는지 말해줄게. 나는 탁자 다리에 머리를 기대고 누워 새벽빛이 비치는 네모난 창을 바라보았어. 마치 우리 집의 그 참나무 널빤지로 둘러진 침대에 누워 있는것 같았지. 굉장히 슬펐는데, 이제 막 정신을 차리 눈을 떴을 때라 무엇 때문에 슬픈지 생각나지 않았어. 나는 내가 왜 슬픈지 곰곰이 생각해봤어. 그런데 묘하게도 지난 7년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어. 7년의 세월을 보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어린아이였던 나는 힌들리 오빠가 히스클리프랑 어울리지 말라고 해서 슬펐어. 처음으로 외톨이가 된 나는 밤새 울다가 잠들었어. 그리고 깨어나 손으로 침대 널빤지 문을 밀치려고 하는데 손이 탁자에 부딪친거야. 이상하다 싶어 카펫을 만져보다가 문득 기억이 되살아났고, 슬픔에 겨워 절망에 빠진 나머지 발작을 일으킨 거야. 왜 그렇게 미칠 듯이 슬펐는지 모르겠어. 틀림없이 일시적인 정신착란이었을 거야. 특별한 이유가 없었으니까. 열두 살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워더링 하이츠와 어릴 때 익숙했던 것이며 나한테 없어서는 안 될 히스클리프와 헤어져 린튼 부인이자 드러시크로스 저택 안주인으로서 모르는 사람의 아내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든 거야. 나는 자기 세계에서 쫓겨나 버림받은 거지. 마치 컴컴한 구렁텅이를 기어 다니는 듯한 심정이었어. (…)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 거칠고 자유분방한 여자아이로 돌아가서 어떤 마음의 상처에도 미치지 않고 깔깔깔 웃을 수 있으면 좋겠어. 내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 왜 조금만 뭐라고 해도 피가 끓어오르는 걸까? 저 언덕의 히스 관목 숲에 뛰어들면 분명 정신이 날 거야." (pp.195-196)
"에드거가 사라지면 캐서린이 괴로워하겠소? 나는 캐서린이 괴로워할까 봐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거요. 에드거와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그거요. 우리 둘의 입장이 바뀌었다면 나는 그가 아무리 미워도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을 거요. 당신이 믿지 않아도 상관없소. 캐서린이 원하는데로 그를 못 만나게 하지 않을 거요. 그러나 캐서린만 아무렇지 않다면 나는 지금 당장 그의 심장을 도려내고 그 피를 들이킬 것이오. 내 말을 못 믿겠다면 나를 잘 모르는 거지. 그게 아니라면 그의 머리카락 한 올도 건드리지 않을 거고, 그러느니 차라리 내가 조금씩 말라 죽는게 낫지. (…) 나의 미래는 단 두 단어로 설명할 수 있지. 바로 '죽음'과 '지옥'이오. 캐서린을 잃고 난 뒤의 내 삶은 지옥일 거요. 한때 나는 어리석게도 캐서린이 나보다 에드거의 사랑을 더 소중히 여긴다고 생각했소. 하지만 약해빠진 몸으로 있는 힘껏 사랑해봤자 80년간의 그의 사랑은 단 하루의 내 사랑보다 못할 거요. 캐서린은 나처럼 속 깊은 사람이지. 그런 그녀의 사랑을 독차지한다는 것은 이 세상 바닷물을 몽땅 말구유에 담을 수 있다고 하는 것과 같아." (pp.227-228)
"고통 속에서 눈을 떠야 해! 끝까지 거짓말쟁이였어! 어디로 갔다고? 천국에 갔을 리 없어. 사라진 것도 아냐. 그럼 어디로 간 거지? 당신은 내가 괴로워하든 말든 상관없다고 했지? 그러니 단 하나만 기도하겠어. 내 혀가 굳어질 떄까지 계속하겠어, 캐서린 언쇼! 당신은 내가 살아 있는 한 결코 편히 쉬지 못해! 내가 당신을 죽였다고 했지? 그럼 유령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나란 말야! 죽은 사람은 유령이 되어 자기를 죽인 사람 앞에 나타난다면서? 난 유령이 지상을 떠돌아다닌다고 믿어. 그러니 언제나 내 곁에 있어줘.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어. 차라리 나를 미치게 해줘! 제발 당신을 볼 수 없는 이 지옥 같은 세상에 나 혼자 내버려두지 말란 말이야. 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난 당신 없이 살 수 없어. 당신은 내 영혼이야. 그런데 어떻게 살란 말이야!" (p.256)
"당신과 나는 바깥에 있는 저놈한테 갚아야 할 큰 빚이 있소. 우리 둘다 겁쟁이가 아니라면 합심해서 빚을 갚을 수 있지. 당신도 오빠처럼 나약한 사람이오? 복수 같은 건 할 용기도 없이 끝까지 참고 견딜 텐가?"
"천만에요! 더 이상 못 참겠어요. 다시 보복당하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복수하고 싶어요. 하지만 배신이나 폭력은 양날의 칼처럼 그것을 휘두르는 사람이 상대보다 더 크게 다치는 법이죠."
그러자 언쇼 씨가 소리쳤어.
"배반과 폭력은 배반과 폭력으로 갚게 마련이지!" (p.267)
"어쩜 그런 말을 다 하세요?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아씨가 평생 성경이라고는 펴본 적 없는 여자라고 생각하겠네요. 하느님께서 원수에게 벌을 내리신 것으로 만족해야죠. 아씨까지 가세하는 건 비겁하고 너무한 처사예요."
그러자 아씨가 계속 이야기했어요.
다른 때 같으면 나도 그렇게 생각할 거야. 하지만 내가 보복에 가담하지 않는 한 그가 아무리 비참한 일을 당해도 만족할 수 없어. 차라리 그가 지금보다 덜 괴로워하더라도 내가 그에게 고통을 줄 수 있고 또 그 사실을 그자가 알면 좋겠어. 그 사람한테 갚아줄 게 너무 많거든. 내가 용서할 수 있는 건 이때뿐이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내가 당한 만큼 되갚아주고 그를 나와 같은 처지로 만드는 거야. 먼저 해를 입힌 사람이 용서를 빌게 만드는 거지. 그래야 나도 조금이나마 너그러워질 수 있지 않겠어? 그래도 내 원한은 다 풀리지 않겠지만 말이야. 그러니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거지. (pp.274-275)
교회 쪽으로 돌아오느라 집까지 오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교회 담장 밑에 이르러 보니 7개월 사이에 예배당이 눈에 띄게 헐어 있었다. 유리창은 거의 다 깨져 있었고, 지붕 기왓장도 여기저기 어긋나서 곧 불어닥칠 가을 폭풍에 떨어져나갈 것 같았다. 들판 옆 언덕배기에 세워진 비석 3개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가운데 있는 잿빛 비석은 반쯤 히스에 파묻혀 있었다. 에드거 린튼의 비석만이 밑동에 돋은 이끼와 잔디로 조화로웠고, 히스클리프의 비석은 아직 새것으로 보였다. 따스한 하늘 아래서 무더 주위를 거닐며 히스와 초롱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방들을 바라보고, 풀밭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 소리를 듣고 있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고요한 대지에 잠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쉬지 못하리라고 그 누가 상상하겠는가!' (pp.53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