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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북클럽
박현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평점 :
커다란 사고를 친 4명의 고등학생들이 매달 한 번, 수요일에 모여 1년간 북클럽 활동을 하는 수북형을 선고 받는다. 북클럽 장소는 카페 숨. 수북 멤버들은 매달 숨의 주인장이 지정해주는 책을 읽고, 마음에 와 닿은 문장에 밑줄을 긋고, 돌아가면서 자신이 밑줄 친 부분을 소리내어 읽는다. 처음에는 책을 읽는 것이 부끄럽고, 책으로 토론을 나눠야 하는 것은 껄끄럽게만 느껴졌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은 자신이 위안받고 있음을 깨닫는다. 자신들이 읽고 있는 책과, 나와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던 수상한 북클럽 멤버들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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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정된 도서를 읽고 집안환경, 관심사, 성격이 모두 다른 네명의 학생이 토론하는 소설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챕터마다 아이들이 놓친 책 추가 설명을 곁든 주인장의 편지가 있다. 주인장의 편지는 곧 저자, 박현희씨가 독자에게 쓰는 편지가 아닐까. 나는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서평이나 평론, 추천서 읽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이 부분이 와닿았고, 이런 생각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항상 궁금한거다. 누군가가 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문장을 짚어 주면 그 사람도, 책도 다시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 책도 참 재밌게 읽었다.
사실, 처음 책 뒷표지에서 등장인물 소개글을 읽을 때, 이 책은 청소년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닌가 싶었지만, 끝까지 책을 읽고 난 후에 이 책은 나 같은 성인도 충분히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걸 깨달았다. 모모가 결코 어린이 책이 아니라, 어린이도 읽을 수 있는 책인 것처럼. (p.201)
5월,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온 영주와 민석이가 프랑켄슈타인이 여태까지 괴물 이름인 줄 알았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뜨끔, 했다. 나도 프랑켄슈타인이 괴물 이름인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창조한 자의 이름이며, 정작 그 유명한 괴물에게는 이름조차 없단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는 영주와 카페 숨의 주인장이고, 가장 마음에 드는 파트는 주인장의 편지인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 또는 몰랐던 이야기를 나에게 계속 던져주기 때문이다.
6월, [제인 에어]에서 윤정환과 정영주가 밑줄 친 문장이 마음에 들어서, 나도 제인 에어를 읽고 싶어졌다.
"너 버릇없는 못된 자들이 죽은 후 어디로 가는지 아니?"
"지옥으로 갑니다." 내가 쉽게 할 수 있었던 전통적인 답변이었다.
"그렇다면 지옥은 어떤 곳이냐? 나한테 말해줄 수 있겠니?"
"불로 가득찬 구덩이입니다."
"그렇다면 너 그 구덩이에 빠져 영원히 불에 타고 싶니?"
"아닙니다, 선생님."
"그런 일을 피하기 위해선 네가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답이 떠올랐지만 그 내용은 반박의 여지가 있는 것이었다. "건강을 잘 유지해서 죽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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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의무적으로 행해야 할 수많은 일들에 압박받지 않고 그저 마음이 편하기만을 원할 뿐입니다, 주인님. 주인님께서 제게 셀린 바렝에 대해 말씀하셨던 내용이 기억나세요? 그 여자에게 주셨다는 다이아몬드와 캐시미어 옷들이 기억나시지요? 저는 주인님의 영국판 셀린 바렝이 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아델의 가정교사로 계속 일할 거예요. 그 일을 해서 제 숙식비와 추가 연봉 30파운드를 벌겠어요. 그리고 그 돈으로 제 옷장을 채워나갈 거예요. 주인님께서 제게 주실 거라고는 단지……"
"그래, 단지 뭐요?"
"단지 저를 존중해주는 마음뿐입니다. 그리고 저도 그 보답으로 같은 마음을 주인님께 드린다면 둘 사이의 채무가 청산되는 셈이지요."
7월, [자기 앞의 생]는 주인장의 편지에서 읽게 된 작가 로만 카체프와 에밀 아자르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프랑스 최고의 상, 공쿠르상을 타고,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고도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작품 활동을 하려는 작가의 의지와 열정이 나는 백퍼센트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누구나가 꿈꾸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도 멈추지 못하고 계속 새로운 길을 찾고, 멈추지 않고 나아가려는 열정과 열망이 부럽다.
9월, [복스]에서는 "노력하는 것이 가장 큰 재능"이라는 키워드가 가슴에 와 닿았다. 최근에 내가 가장 고민하던 주제였기 때문이다. 영주의 말에 따르면 자그마치 600페이지에, 돋보기가 필요할 정도로 작은 글자 크기라고 하던데, 그래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10월, [모모]. 내 주변의 누군가가 떠오르는 민석이가 한 말. "내가 이 책을 만나서 참 다행이야. 수북이 아니었으면 책 같은 건 읽지 않았을 테고, 그럼 이 책을 만나지도 못했겠지. 이 세상 어딘가에 모모가 있고, 언젠가 나도 모모를 만나게 되면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거다, 생각하니까 참 좋더라고." 나도 수북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과연 이 책에 나와 있는 책들을 읽으리라는 마음을 먹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