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플롯 - 동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연결하는 이야기
박인성 지음 / 나비클럽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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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론가의 언어운용

 

신해철이 생전 모 방송에 나와, 고교 시절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읽었던 경험을 소개한 적이 있다. '철학자의 언어는 잘 훈련된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논리의 심장을 향해 진군해가는, 고도로 조직된 언어다'라고 표현한 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면 문학에서는?

 

문학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글의 종류를 시, 소설, 평론으로 거칠게나마 대별해볼까. 각 장르에서 요구하는 필력의 덕목이 다름은 자명하다.

 

시인의 언어는 섬세하게 포착하고 예민하게 감지해야 한다. 소설가의 언어는 서사의 맥박 속에 만물을 조화롭게 녹여 잘 작동하는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평론가의 언어는 현상 이면의 시대정신을 읽어내면서도 예리하게 벼린 합리의 언어로 독자를 설득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지만, 치밀한 논리로 예술작품 혹은 세계 인식의 새로운 프레임을 빚어낸다는 점에서만큼은 평론만큼 까다로운 작업이 없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평론가 박인성의 글쓰기는 지극히 모범적이다. 가까운 과거부터 동시대에 이르기까지 누적되어온 수많은 문화컨텐츠에 대한 해박한 지식. 그중 각별히 유의미한 현상을 포착하고 선별하는 예리한 안목. 징후적 해석의 일관성까지. 단일한 인간의 정신이 다룰 수 있는 세계의 규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방대하고도 매력적인 지성의 오딧세이랄까.

 

2. 마스터플롯의 전방위적 적용

 

박인성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마스터플롯의 개념을 전면에 내세워 모든 논의를 전개한다. 그에 따르면, 마스터플롯이란 인간들의 공동체가 세계에 각종의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끊임없이 새로운 이해와 재구성을 도모하는 과정에 다름아니다. 마스터플롯은 국가의 역사, 민족성, 지역색 등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동시에 그것은 고정불변의 이데아가 아닌, 공동체 성원들의 참여와 사회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스스로를 갱신하며 변화해가는 대상이기도 하다.

 

1부에서는 고대부터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온 마스터플롯의 사례들을 제시하고 그 역할을 규정함으로써 독자를 서서히 끌어들인다. 2부에서는 한국, 미국, 일본의 대중서사(호러 장르, 재난 서사 등)를 중심으로 마스터플롯의 기능을 추적하고 분석한다. 3부에서는 서브 컬쳐와 장르 서사의 창작물을 중심으로 특히 2000년대 이후 한국과 일본에서 드러난 청년 세대의 인생관과 심리 기제를 살핀다. 4부에서는 한국의 주요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김대중 정부 시절 초고속 인터넷의 전국적 보급 이후 자라난 젊은 세대가 지극히 포스트모던한 오늘날의 세상을 이해하고 그에 맞서는 방식을 고찰한다.

 

드래곤볼, 진격의거인, 원피스등 굵직한 일본 소년만화의 지극한 팬이며, 남초적인 질서와 인터넷 커뮤니티 밈에 어느 정도 익숙한 나로서는, 개인적으로 후반부(3부와 4)의 독해 과정에서 나 자신 및 나를 포함하는 세대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어가는 큰 재미를 느꼈다.

 

3. 평론가 박인성의 미덕

 

가장 먼저 짚고 싶은 그의 장점은 소위 지식인으로 대접받기 원하는 자의식 비대한 평론가들이 이 책과 같은 부류의 교양서를 집필할 때 빠지기 쉬운 두 가지 함정, 즉 정치적 편향성의 노출과 지나친 현학적 언어사용의 유혹을 모두 피해갔다는 점이다. 민감한 동시대의 윤리적 화두와 연결된 문제를 다룰 때조차 그는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담담한 어조로 현상의 진술과 분석에 진력할 뿐이다.

 

다음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접근해올수록 동시대와 적극적으로 호흡하고 공명하며 의미를 읽어내려는 자세에도 감히 찬사를 보낸다. 중위연령이 46세에 도달한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마흔을 전후할 것으로 추정되는 그가 늙은 축에 끼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소년만화와 웹소설, 라노벨, 극히 최근까지의 인터넷 밈 등에 소위 빠싹한모습을 보여주는 그의 글쓰기를 접하며 내릴 수 있는 결론 중 하나는, 그가 우리 사회 및 문화 구석구석에 깊고 꾸준한 관심을 품고 살아가는 성실한 지식인이라는 것이다.

 

숲 속에 있으면서 숲을 조망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 그러나 동시대라는 울창하고 어지러운 숲 안에서도 침착한 거리감과 객관성을 확보하고, 흥미로운 서사 및 해석을 선보이는 그에게서 실로 많은 것을 배우는 독서였다.

 

*이 서평은 나비클럽(@nabiclub) 출판사에서 제공해주신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귀한 책을 선물해주셔서 깊이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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